국내 증시가 29일 이틀 연속 급락한 건 반도체 투자심리가 악화한 영향이다. 피크 아웃(정점 통과)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큰 상태에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 위협은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큰 타격을 입혔고, 국내 반도체 대형주들도 삭풍을 피하지 못했다. 코스피 반등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SK하이닉스의 2분기 실적 발표가 시장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자 시장의 공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다른 업종까지 번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날 각각 5.23%, 9.61% 하락했다. 전날 13∼14% 폭락에 이어 이날도 급락을 피하지 못하면서 이틀 동안 총 1092.51포인트(16%)나 빠졌다.
올해 글로벌 증시 호황을 주도했던 인공지능(AI)·반도체주들의 부진이 좀처럼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심자외선(DUV) 노광장비 생산 착수 소식과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상장은 투자자들의 이탈에 가속도를 붙이는 모양새다. 간밤 미국 뉴욕증시에서는 마이크론(-8.85%), AMD(-8.15%) 등 반도체 업종이 국내 증시의 부진 여파에 큰 폭으로 하락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도 4.49% 급락하며 4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고, 국내 증시가 받은 충격이 증폭됐다.
시장에서는 주도주들의 2분기 호실적 발표가 하락장의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SK하이닉스의 실적은 시장의 기대를 실망으로 바꿨다. SK하이닉스는 2분기 영업이익이 60조542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57.2%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사상 최대 수준이지만 시장의 전망치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콘퍼런스콜에서도 주주환원 등과 관련해 구체적 내용이 나오지 않자 투자자의 실망감이 커지며 투매를 촉발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증권가에선 현재의 낙폭이 과도하다고 입을 모았다. 펀더멘털(기초 체력) 자체는 흔들리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저가 매수의 기회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55만원과 420만원이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목표주가를 이날 각각 37만원과 280만원으로 33%씩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하향 이유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대한 우려다. 김영건 연구원은 “이번 이슈에 따른 업계 전반의 주가 낙폭은 과도해 보이나, 목표가 조정 또한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 연구원은 삼성전자에 대해 “고점 대비 50%가 넘는 급락에도 펀더멘털의 훼손이 추정되지 않는다”며 “배당수익률이 급격히 커진 현 주가 수준에서는 비중확대가 유효하다는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DB증권은 국내 증시가 횡보세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강현기 연구원은 “최근 중국 AI 및 반도체 기업의 부상으로 서사가 긍정에서 부정으로 전환되며 주식시장이 기존 추세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됐다”며 “이제부터 주식시장은 횡보세에 접어들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도 견고한 펀더멘털이 국내 증시의 하방을 지탱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은행은 이날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에서 주식시장과 관련해 “인공지능(AI) 투자 둔화 우려, 대규모 외국인 순매도 등으로 조정을 받는 모습”이라면서도 “반도체 기업의 대규모 영업이익 전망 등 양호한 펀더멘털 여건은 국내 주가의 하방압력을 제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