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상자를 열었는데 상품보다 빈 공간이 더 크다면 과대포장에 해당할까. 그동안에는 제품과 상자의 부피를 직접 측정하고 완충재 종류와 예외 규정까지 따져야 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AI)이 상품과 포장 정보를 분석해 규제 기준을 충족하는지 먼저 가려내는 방식이 물류 현장에 확대될 전망이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한국환경공단과 ‘AI 기반 스마트 적정포장 체계 구축 및 운영’을 위한 업무협약을 지난 27일 체결했다.
협약식은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CJ대한통운 본사에서 열렸다. 문갑생 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이사와 김정희 CJ대한통운 TES물류기술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이번 협약의 중심에는 CJ대한통운이 자체 개발한 적정포장 분석 솔루션 ‘팩체크(PackCheck)’가 있다.
팩체크는 상품의 종류와 규격, 포장 상자와 완충재 정보를 분석해 포장공간비율과 포장 횟수가 규정에 맞는지 판단한다.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고 나오면 상자 규격을 바꾸거나 종이 완충재를 사용하는 등 개선 방향도 제시한다.
CJ대한통운은 팩체크를 계속 고도화하고, 한국환경공단은 분석 결과가 현행 규정에 맞는지 검토한다. 규제 기준 정량화와 현장 점검, ‘스마트 적정포장 인증제’ 도입을 위한 기술 지원도 맡는다.
양측은 산업계와 학계, 전문가, 시민·민간단체가 참여하는 ‘AI 적정포장 검증 운영위원회’도 구성할 예정이다. 운영위원회는 기술 검증과 제도 개선, 현장 의견 수렴을 담당한다.
현행 일회용 수송포장 기준은 소비자에게 택배로 보내는 제품의 포장공간비율을 50% 이하로 유지하고, 포장 횟수는 한 차례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포장공간비율은 상자 전체 부피 가운데 제품이 차지하지 않는 공간의 비율이다. 단순하게 보면 상품을 뺀 빈 공간이 상자의 절반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모든 택배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가로·세로·높이의 합이 50㎝ 이하인 소형 포장은 공간비율 기준에서 제외된다. 적용 대상도 중소기업기본법상 평균 매출액 등이 500억원 이상인 업체다.
유리나 도자기처럼 파손 위험이 큰 제품, 냉장·냉동식품, 포장 자동화 설비를 사용하는 경우 등에는 별도의 예외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
택배 수송포장 규제는 2024년 4월 30일 시행됐다. 정부는 현장 혼란을 줄이기 위해 2년간 계도기간을 운영했고, 올해 4월에는 파손 우려 제품과 자동화 포장, 재사용·재생원료 포장재 등에 관한 세부 측정 기준을 손질했다.
팩체크는 협약 체결과 함께 새로 개발된 기술은 아니다.
CJ대한통운은 지난 9일 팩체크를 전국 26개 물류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풀필먼트센터에 입고된 고객사 상품 정보를 시스템에 연동해 포장 적정성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지난 4월에는 관련 특허와 상표도 출원했다.
현재 과대포장 검사는 상품과 포장재의 크기를 측정하고 포장 횟수와 완충재 재질을 확인하는 등 사람의 작업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제품의 파손 가능성이나 합포장 여부, 자동화 설비 사용 등 예외 조건까지 따져야 해 판정에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AI 검증체계가 자리 잡으면 기업은 상품을 출고하기 전에 포장 규정 위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검증기관도 반복적인 측정 작업을 줄이고, 기업이나 검사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판단 편차를 좁힐 수 있다.
이번 협약은 물류기업이 내부적으로 사용하던 포장 분석 기술의 검증 과정에 환경 관련 공공기관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업의 자가점검 도구에 머물렀던 AI 솔루션을 현행 규제와 연결하고, 향후 인증제 도입까지 검토한다는 것이다.
대형 물류기업과 달리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기 어려운 중소 제조·유통업체의 접근성을 높이는 일도 과제로 남는다. 공공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공통 기준이나 간편한 자가진단 도구를 마련하지 않으면 대기업과 중소업체 사이의 규제 대응 격차가 커질 수 있다.
결국 이번 협약의 성패는 AI가 상자 속 빈 공간을 계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포장재 사용량과 폐기물까지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렸다. 기술의 정확성과 현장 적용성이 확인돼야 ‘과대포장 없는 택배’도 일상에 자리 잡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