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규 전 대한축구협회장과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문체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민과 축구 팬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여야 의원들은 두 사람의 사과를 받은 뒤 감독 선임 과정과 이른바 ‘카르텔’·‘특혜’ 의혹을 비롯해 대한축구협회(KFA)의 행정 난맥상을 집중적으로 따져 물었다.
국회 문체위는 30일 대한축구협회 운영 전반을 점검하기 위한 청문회를 열었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든 가운데 감독 선임 과정과 협회 운영의 공정성·투명성 등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는 자리였다.
이재정 문체위원장은 청문회에 앞서 “대한민국 축구는 오랜 기간 국민께 기쁨과 자부심을 안겨주는 국민 스포츠로 자리매김해왔다”면서도 “최근 감독 선임이나 운영 공정성, 투명성에 대한 여러 의혹 제기가 있었고 운영 전반에 대해서도 국민의 우려와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표팀의 성적 부진만을 따지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라며 “제기된 의혹에 대한 점검뿐만 아니라 향후 축구협회가 어떤 방식으로 운영돼야 할지, 축구 거버넌스 전반에 대한 지혜를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전 회장은 모두발언에서 “재임 기간에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최대한 노력했지만 일련의 논란과 북중미 월드컵의 미흡한 결과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축구협회장으로서 책임감을 통감하고 국민과 축구 팬 여러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축구협회장 사퇴 이후 앞으로 기업인으로서 열심히 경영에 집중하고 사회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홍 전 감독도 “북중미 월드컵에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그동안 대표팀에 보내 주신 기대에 보답하지 못한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은 제가 알고 있는 사실과 제가 져야 할 책임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또 “어려운 상황에도 끝까지 뛰어 준 선수들에게 감독으로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며 “선수들 노력의 결과로 보답하지 못한 점을 무겁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후 여야 의원들은 감독 선임 과정의 공정성부터 이른바 ‘고대 카르텔’, 국고보조금 사업, 정 전 회장의 국제축구계 직책 유지 문제까지 협회 운영 전반을 추궁했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은 정 전 회장에게 “‘현대 축구협회’, ‘고대 카르텔’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나”라며 “회장도, 감독도 고대 출신이 아니면 협회에 발도 못 딛는다는 그 말이 왜 나오나”라고 따져 물었다.
정 전 회장은 “제가 임명한 남자 대표팀 감독 25명 중 고대 출신은 1명이고, 여자 대표팀 감독 20여 명 중 고대 출신은 없다”면서도 “그렇게 이미지가 바뀐 데 대해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국고보조금 사업을 둘러싼 의혹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같은 당 노종면 의원은 천안 코리아 풋볼 파크 내 미니 스타디움 건립과 관련해 국고보조금 77억원이 투입된 사업의 설계와 건축허가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노 의원은 “국고보조금 77억원이 투입된 사업에 협회는 임원실이나 회장실 같은 사무 공간이 없는 도면을 제시했다”며 “특정한 종목 단체의 사무실을 짓는 데 국비를 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건축 허가 당시에는 회장실, 전무실, 임원실, 비서실 등을 건립하는 것으로 허가받았다”며 “사업계획서상 도면과 건축허가를 받을 때의 도면은 구조도, 용도도 다르다”고 비판했다.
정 전 회장의 사퇴 이후에도 국제축구계 주요 직책을 유지하는 문제도 질의 대상이 됐다. 국민의힘 정연욱 의원은 정 전 회장이 회장직에서는 물러났지만 국제축구연맹(FIFA) 상업·마케팅 자문위원회 부위원장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집행위원 및 회원협회 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는 점을 문제 삼았다.
정 의원은 “정 전 회장이 국제 무대에 남는 것이 한국 축구 외교의 자산인지, 미완의 퇴장인지도 말끔히 정리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 전 회장은 “협회 회장을 사퇴한 마당에 자리에 연연할 일은 없다”며 “새롭게 회장이 뽑히고 집행부가 구성되면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홍 전 감독의 선임 과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2024년 홍 전 감독 선임 당시 이임생 전 협회 기술총괄이사가 진행한 면담 과정 등을 문제 삼았다.
배 의원은 “2024년 당시 감독 추천 권한이 없던 이임생 전 이사가 밤 11시에 빵집에서 면접하듯 만난 후 별도의 면접이나 PT 없이 감독으로 선임됐다”며 “관례와 절차를 무시한 특혜 시비가 일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빵집 면접’으로 감독이 될 수 있다는 데 후배나 축구 관계자들 보기에 부끄럽다는 생각은 안 했나”라고 물었다.
홍 전 감독은 “저한테 (감독) 제안이 왔을 때 정상적 절차를 거쳤다고 생각했다”며 “국민께서 ‘불투명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특혜나 이익을 요구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청문회에는 총 15명의 증인이 채택됐다. 정 전 회장과 홍 전 감독을 비롯해 이용수·김병지 축구협회 부회장, 김승희 전무 등이 출석했지만 이임생 전 협회 기술총괄이사와 박항서 전 부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참고인은 애초 13명이 채택됐으나 유승민 대한체육회장과 김대희 혁신위원 등 4명만 출석했다. 박지성 K-축구 혁신위원회 공동위원장과 이영표·박주호 위원 등은 나오지 않았다. 참고인은 법적으로 출석 의무가 없다.
이 위원장은 일부 증인과 참고인의 불출석 및 미흡한 불출석 사유에 대해 “청문회 자리를 외면했다고 해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며 향후 국정감사 등을 통해 다시 불러 세울 가능성을 시사했다.
정 전 회장과 홍 전 감독은 월드컵 성적 부진에 대해서는 거듭 사과했지만 협회 운영 과정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에는 적극적으로 항변했다. 이번 청문회에서 국회가 들여다본 문제는 경기장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감독 선임 논란부터 협회의 의사결정 구조와 행정 시스템, 운영의 공정성과 투명성까지 한국 축구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가 전방위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