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제임스 웨스트 데이비슨/이선주 옮김/한스미디어/2만8700원
올해는 미국 건국 250주년이다. 1776년 7월 4일, 13개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지 250년. 미국은 정치·경제·군사뿐 아니라 과학기술과 인공지능(AI), 문화에 이르기까지 현대 문명의 중심 국가가 됐다. 미국 대선 결과는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고, 실리콘밸리의 혁신은 우리의 일상을 바꾸며, 미국의 외교정책은 국제질서를 좌우한다.
미국사 권위자인 역사학자 제임스 웨스트 데이비슨의 ‘한 권으로 읽는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는 미국이 어떻게 영국의 작은 식민지에서 250년 만에 세계를 이끄는 강국으로 성장했는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예일대 출판부 베스트셀러 ‘A Little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완역한 이 책은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과 갈등, 이상과 현실의 충돌 속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형성되는 과정을 쉽고도 생생하게 들려준다.
책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독립선언이 아니라 1만4000여년 전 북아메리카에 인간이 처음 도착한 시점에서 역사를 시작한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어깨에서 손끝까지를 미국의 역사라고 상상해 보라고 권한다. 그렇다면 250년의 미국은 손톱 끝에 불과하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작성한 ‘메이플라워 서약’은 미국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소개된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스스로 합의한 규칙에 따라 사회를 운영하겠다는 이 약속은 훗날 미국 헌정 질서의 밑거름이 됐다. 거창한 혁명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작은 약속이 민주주의를 키웠다는 저자의 해석이 인상적이다.
미국 독립혁명을 바라보는 시각도 새롭다. 저자는 보스턴 차 사건 자체보다 “대표 없는 곳에 과세도 없다”는 식민지 주민들의 외침에 주목한다. 이는 영국 의회에 자신들을 대표할 의원 한 명 없는데도 세금을 부과한 데 대한 식민지 주민들의 저항이었다. 이어 독립선언서의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문장을 소개하면서도 당시 흑인 노예와 여성은 그 평등에서 제외돼 있었다는 역사적 모순을 숨기지 않는다. 자유를 선언한 나라가 노예제를 유지했던 역설은 이후 미국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큰 모순이자 변화의 동력이 됐다.
흥미로운 역사적 장면도 이어진다. 1803년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해 미국의 영토를 두 배 가까이 넓혔다. 당시에는 대통령에게 헌법상 새로운 영토를 매입할 권한이 있는지를 둘러싸고 위헌 논란이 거셌지만, 이 결단은 미국을 대륙국가로 도약시키는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이어 19세기 중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시대정신 아래 미국은 서부로 급속히 팽창했다. 이는 미국이 신의 뜻에 따라 북아메리카 전역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장해야 한다는 당시의 정치·사회적 이념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원주민 강제 이주와 학살, 멕시코와의 전쟁, 노예제 확산을 둘러싼 갈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책은 미국의 영토 확장을 단순한 성공 신화로 미화하지 않고 국가 성장의 영광과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조명하며 미국 역사의 빛과 그림자를 균형 있게 보여준다.
남북전쟁은 이 책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자유와 노예제, 건국 이념과 현실이 충돌한 역사적 순간으로 해석한다. 특히 게티즈버그 전투보다 전후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연설을 더욱 중요하게 다룬다. 미국은 이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다. 대륙횡단철도와 자동차, 전화기, 전구 같은 혁신은 미국을 ‘발명의 나라’로 만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거대한 빈부 격차와 노동 착취도 심화됐다.
1929년 대공황과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제를 책임지는 새로운 국가 모델을 제시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설명된다.
책에서 특히 돋보이는 부분은 시민권운동이다. 독립선언 이후에도 흑인들은 오랫동안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
저자는 미국의 주요 역사를 소개하면서도 일방적으로 찬양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균형감각을 유지한다.
자유를 외치면서도 노예제를 유지했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면서도 끊임없이 갈등을 반복했던 미국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역사의 주인공을 대통령이나 영웅에서 청교도와 이민자, 노동자와 여성, 흑인과 시민운동가 등 평범한 시민으로 돌려놓는다. 미국은 위대한 지도자 몇 명이 만든 나라가 아니라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 온 공동체였음을 설득력 있게 전한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여운을 남긴다. “역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우리가 만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250년은 끝난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쓰이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설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