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27년 1월1일 임기를 시작할 차기 유엔 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예비 투표에서 1∼3위에 오른 후보들이 예외 없이 1장 이상의 반대표에 직면했다. 안보리는 거부권(veto power)을 가진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5개 상임이사국과 유엔 총회에서 선출된 2년 임기의 10개 비상임이사국을 더한 15개 이사국으로 구성된다. 반대표를 던진 나라가 비상임이사국이라면 계속 선거전에 임할 만하지만, 상임이사국인 경우에는 도전을 멈춰야 한다.
30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날 안보리는 등록한 유엔 사무총장 후보 7명을 대상으로 제1차 예비 투표를 실시했다. 유엔 사무총장 선출은 안보리에서 정한 단일 후보를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추대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안보리의 권한이 절대적인 셈이다.
비밀 투표로 실시된 이번 예비 투표에서 1위는 코스타리카 출신의 레베카 그린스판(70)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사무총장에게 돌아갔다. 그린스판은 안보리 15개 이사국 가운데 찬성 10표, 반대 1표, 무(無)의견 4표를 얻었다. 2위는 찬성 9표, 반대 2표, 무의견 4표가 나온 캐럴린 로드리게스-버케트(52) 주(駐)유엔 가이아나 대사가 차지했다.
그간 유엔 외교가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평가를 받아 온 라파엘 그로시(65·아르헨티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뜻밖에도 찬성 7표, 반대 2표, 무의견 6표로 3위에 머물렀다. 이어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 마키 살 전 세네갈 대통령(이상 찬성 6표), 마리아 페르난다 에스피노사 전 에콰도르 외교부 장관(찬성 5표), 올라라 오투누 전 우간다 외교부 장관(찬성 2표) 순서로 집계됐다.
나란히 1, 2위에 오른 그린스판, 로드리게스-버케트 후보는 둘 다 여성이다. 이에 따라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창립된 유엔 80여년 역사상 처음 여성 사무총장이 탄생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앞서 유엔 총회는 회원국들에게 “출범 후 80년을 넘긴 유엔이 이제 최초의 여성 사무총장을 배출될 때가 되었다”며 여성 후보에게 힘을 실어줄 것을 당부한 바 있다.
다만 이번 예비 투표는 비밀 투표라는 점에서 지금의 1, 2위 후보가 계속 도전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안보리 15개 이사국 대표가 똑같은 투표 용지를 사용한 만큼 반대표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반대표를 던진 나라가 비상임이사국이라면 상관이 없겠으나,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5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상임이사국은 아무리 유력한 유엔 사무총장 후보라도 선출을 가로막을 수 있는 거부권을 지니고 있다.
안보리는 앞으로도 예비 투표를 추가로 실시함으로써 사무총장 후보를 추려 나갈 계획이다. 어느 순간이 되면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이 서로 다른 색깔의 투표 용지를 사용하는 결정적 투표의 시간이 온다. 만약 상임이사국이 특정 후보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그는 스스로 물러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다. 유엔 안팎에선 “차기 유엔 사무총장의 윤곽은 이르면 가을에나 드러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