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이 미국 그래미 어워즈의 ‘베스트 아시안 팝’ 부문 신설을 ‘인종차별’로 인식해 보이콧을 선언한 가운데, 과거 논란이 됐던 미국 문화계의 인종차별적 행태가 재조명되고 있다.
그래미뿐만 아니라 영화·스포츠·문학 등 문화 예술과 체육계 전반에서도 특정 인종이나 비서구권 주체를 ‘별도 범주’로 격리해 주류 무대 진입을 막아온 역사는 뿌리가 깊다. 표면적으로는 ‘다양성 존중’과 ‘특이성 인정’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백인 중심의 기득권 무대를 보호하기 위한 ‘변종 게토화(주류와 분리돼 별도 범주로 분리)’라는 지적이다.
◆서구 문화계 ‘인종차별’…BTS부터 미나리까지
올해 6월 그래미 어워즈가 돌연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권 음악을 구분해 ‘베스트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K팝을 비롯한 아시아 음악을 ‘주류’인 본상에서 분리해 별도 카테고리에 가두려는 시도라는 지적이 일었고, BTS 멤버들은 불참을 선언하며 “음악이 국적이나 언어라는 틀에 갇히기보다 작품 자체로 평가받고 사랑받기를 희망한다”고 밝히며 지역과 언어로 아티스트를 구분 짓는 시상식 구조에 명확한 거부 의사를 전했다.
이같은 서구권 문화계의 인종차별적 행태는 대중음악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20년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영화 ‘미나리(Minari)’를 둘러싼 거센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미나리는 미국 영화사(플랜B)가 제작하고, 미국인 감독(정이삭)이 연출했으며, 미국 오클라호마를 배경으로 한 엄연한 ‘미국 영화’였다.
그러나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는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니다”라는 규정을 내세워 미나리를 작품상(Best Picture) 후보에서 배제하고 ‘외국어영화상’ 부문에만 넣었다. 영화의 주제나 국적이 아닌 ‘언어’를 핑계로 비영미권 인종이 주류상에 진입하는 것을 차단한 전형적인 사례였다.
◆미국 골프, ‘백인 전용 조항’ 도입, ‘영어 구술시험’ 추진 등
스포츠계 역시 ‘체력적·인종적 차이’를 핑계로 성별과 인종을 격리해온 역사가 길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의 ‘백인 전용 조항(Caucasian-only clause)’이다. PGA는 1934년부터 정관에 “백인에 한해 회원 자격을 부여한다”는 조항을 명시해 흑인과 아시아인의 참가를 제도적으로 막았고 해당 정관은 1961년까지 유지됐다.
2008년 8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는 스포츠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황당한 규정 신설을 추진하기도 했다. 투어에서 2년 이상 활동한 외국인 선수가 기초적인 영어 구술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선수 자격을 정지하겠다는 방침이다. 명목상으로는 ‘후원사 및 팬과의 소통’을 내세웠으나, 실상은 박세리 이후 신지애, 최나연 등 한국 및 아시아계 선수들이 LPGA 투어 상위권을 독식하자 미국 백인 중심 기업 스폰서들과 주류 기득권이 아시아 선수들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언어 장벽’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언론과 정치권, 인권단체는 물론 메인 스폰서들까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자 LPGA 사무국은 발표 불과 한 달 만인 2008년 9월 해당 규정을 전면 철회했다.
◆‘퓰리처’ 수상자 80% 이상이 백인…“주류 기득권 방어기제”
문학계에서도 비서구권 작가나 유색인종 작가의 작품을 주류 ‘소수자 문학’, ‘이주민 문학’ 또는 ‘포스트콜로니얼(탈식민지) 문학’이라는 카테고리에 따로 가두는 방식이 오래 지속되어 왔다. 백인 작가의 글은 인간 보편의 삶과 철학을 다룬 ‘일반 문학’으로 여겨지는 반면, 유색인종 작가의 글은 ‘자신의 인종적·문화적 특수성을 증언하는 기록물’ 정도로 치부해 미국의 퓰리처상 본상 논의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1988년 미국 문학계는 ‘사랑받은 자’를 쓴 흑인 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이 퓰리처상 수상에서 배제된 것을 두고 이를 비판하는 집단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토니 모리슨을 포함 유색인종 퓰리처상 수상자가 늘어나긴 했으나 여전히 주류는 백인(총 수상자의 80% 이상)이다.
전문가들은 영화, 스포츠, 문학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이 같은 현상을 ‘주류 기득권의 방어기제’로 해석한다. 특정 인종이나 비서구권 세력이 주류 무대를 위협할 때마다 ‘별도 부문’을 신설해 생색을 내면서도 핵심 상 진입은 차단하는 것이 체육·문화계의 오래된 관행이라는 것이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래미가 (K팝 스타들에게) 본상을 주기 싫은 거다. K팝을 아시안 팝으로 묶어버리면, 라틴팝이라고 묶어서 라틴 내 다양한 음악들이 하나의 하위 장르가 되는 것처럼 하위 장르로 만들고 싶은것”이라며 “그래미가 서구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고, BTS는 그 의도를 파악하고 대응하면서 시장에서 생존해야 하고 성취해내야 하는 상황인데, 이번 보이콧 선택은 지켜봐야겠지만 현재로써는 적절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