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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전 왜 졌냐”…국회는 아나?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한국 축구 대표팀이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며 축구 팬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그런데 축구 때문에 한국보다 더 시끄러운 나라가 있다. 월드컵 4회 우승에 빛나는 전통의 강호 이탈리아다. 한국은 토너먼트 32강에 못 든 것이 억울하고 원통한데, 이탈리아는 2014년을 끝으로 아예 월드컵 본선 무대조차 밟지 못하고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은 물론 이번 대회마저 유럽 지역 예선에서 탈락한 탓이다. 그러는 사이 이탈리아의 국제축구연맹(FIFA·피파) 랭킹은 15위까지 추락했다. “우리 아이들이 대체 언제까지 이탈리아가 빠진 월드컵을 방송으로만 지켜봐야 하느냐”는 축구 팬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지난 7월3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연 이른바 ‘월드컵 청문회’에 출석한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전 회장(왼쪽)이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홍명보 전 축구 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지난 7월3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연 이른바 ‘월드컵 청문회’에 출석한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전 회장(왼쪽)이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오른쪽은 홍명보 전 축구 대표팀 감독. 연합뉴스

올해 4월 이탈리아가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에게 져 월드컵 본선 진출이 좌절된 뒤 젠나로 가투소 감독이 사퇴했다. 이탈리아축구협회(FIGC)는 7월 왕년의 스타 파올로 말디니 전 AC밀란 단장을 협회 기술이사로 임명하고 새 감독 물색에 나섰다. 하지만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세계적 명장(名將)을 영입해 이탈리아 축구를 재건하겠다’는 FIGC의 다짐과 달리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감독 선발 작업이 지지부진하자 말디니가 FIGC 기술이사 취임 16일 만에 사퇴하는 불상사가 빚어졌다. 결국 돌고 돌아 이미 한 차례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을 재선임했다. 2018∼2023년 대표팀을 이끈 만치니는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바 있다.

 

7월 30일 국회에서 사상 초유의 ‘월드컵 청문회’가 열렸다. 여야 의원들은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역대급 선수들이 포진한 한국 대표팀이 조별 리그에서 떨어진 원인을 규명하겠고 벼렀다. 이미 이재명 대통령도 “월드컵 본선(토너먼트) 진출 실패는 조직과 인사의 실패”라며 “무능한 사람을 지휘관으로 선발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고 비판한 터였다. 청문회장에 나온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전 회장과 홍명보 전 대표팀 감독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하나 의원들의 파상 공세를 통해 축협의 주먹구구식 운영과 대표팀의 리더십 붕괴 등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리란 기대는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지난 7월3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연 이른바 ‘월드컵 청문회’ 도중 국민의힘 윤용근 의원이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전 회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의 답장을 확인하고 있다. 서울신문 제공
지난 7월3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연 이른바 ‘월드컵 청문회’ 도중 국민의힘 윤용근 의원이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전 회장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의 답장을 확인하고 있다. 서울신문 제공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경기를 거론하며 “왜 남아공전(戰)에서 졌느냐”고 물었다. 홍 전 감독을 비롯해 운동 선수나 지도자들 중 지고 싶어 지는 이는 없을 것이다. 국민의힘 윤용근 의원은 정 전 회장에게 “더 잘 배려해드려야 하는데 송구합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들통났다. 정 전 회장은 전직 축구협회장 이전에 HDC현대산업개발 현 회장이다. 청문회가 재벌 총수 ‘배려’를 위한 행사는 아니지 않은가. “남아공을 상대로 벌인 졸전만도 못한 엉터리 저질 청문회”라는 국민의 질책에 정치인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