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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선박 수로 판단하겠다는 러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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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조선협력 ‘결과 중심 모델’
동맹 향한 거침없는 발언 주목
韓 대미투자는 美 전략적 선택
예의·존중으로 대할 책임 있어

“우리는 이 센터를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자본을 투입했는지, 얼마나 많은 시설을 현대화했는지,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훈련시켰는지, 얼마나 많은 공급망을 구축했는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미국과 한국이 함께 얼마나 많은 선박을 미국 내에서 생산했는지라는 단순한 숫자로 판단(judge)할 것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지난달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메이플라워호텔에서 열린 한·미조선협력센터 개소식에서 한 말이다. 그는 “우리는 이 센터를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회의를 열었는지, 얼마나 많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지, 얼마나 많은 칵테일 파티를 열었는지로 평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것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하는 기준이다. 이것은 과정 중심 모델이 아니라 결과 중심 모델이다. 약속이 아니라 생산이다”라고도 했다.

홍주형 워싱턴 특파원
홍주형 워싱턴 특파원

이 말을 현장에서 들을 때 솔직히 거북했다. ‘칵테일 파티’라는 말은 특히 거슬렸다. 한국이 한·미 조선협력을 통해 미국의 조선업을 현대화하는 데 기여하겠다며 1500억달러(약 214조원) 투자를 약속한 시점에 미 상무장관이 굳이 이런 압박성 표현을 써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러트닉 장관이 평소에도 공격적인 어조를 쓰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동맹국을 향한 공개 발언으로는 거칠었다. 러트닉 장관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한국에 미국의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려 했다면 성공적인 전략이었다는 생각은 든다. 이날 개소식을 다룬 대부분의 기사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조선협력센터 출범 자체보다 러트닉 장관의 발언이었다.

사실 한·미 조선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 가운데 상당수는 미국 제도에 있다. 미 군함과 주요 선체 구조물의 해외 건조를 제한하는 톨레프슨-번스 수정안과 관련 연방법 조항 등이다. 미국 현지 조선소를 확보하더라도 공급망과 숙련인력이 충분히 갖춰지기 전에는 초기 선박이나 선체 블록의 일부를 한국에서 제작하는 혼합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미 의회 내에서는 자국 조선업 보호를 이유로 이에 회의적이다. 결국 러트닉 장관이 강조한 숫자로 증명되는 성과는 한국 기업의 투자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알려진 사실을 반복하려고 러트닉 장관의 발언을 다시 꺼낸 것은 아니다. 다만 미국 상무장관이 한국 정부와 기업, 언론이 함께한 공개 행사에서 이런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무감각해질 필요는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비공개 협상에서는 양국 고위 관계자들이 얼마든지 강한 표현을 주고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자리는 양국 국민이 지켜보는 공적인 자리다. 센터 개소식이지만 양국 약속을 확인하는 외교행사의 성격도 있었다. 한국에 미국은 가장 중요한 안보·경제 동맹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무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인을 포함해 워싱턴에서 만난 다수의 사람들이 “경제안보의 비중 확대와 함께 한국은 미국에 더 중요한 동맹이 됐다”는 말을 한다. 북한 억제를 위한 안보협력에 더해 반도체 공급망과 첨단 제조업, 조선산업까지 협력 범위가 크게 넓어지면서 양국의 동맹 관계가 더욱 복합적으로 엮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조선산업 재건을 추진하면서 중국에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다. 결국 한국과 일본 같은 동맹국이 핵심 파트너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대미 투자는 미국에도 필요한 전략적 선택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이 대미투자를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한 일이고, 관세 인하에 대한 반대급부의 성격이 아니더라도 양국 관계 심화를 위해 어느 정도 투자의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 기업도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모든 것은 상호 존중하는 관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동맹은 ‘거래적(transactional) 관계’라는 말을 흔히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들을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일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려는 동맹한테는 그에 맞는 예의와 존중으로 대할 책임이 있다. 거래 역시 책임과 상호 존중을 전제로 할 때 지속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