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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땅에 풀 한 포기 안 남았다”… 추미애, ‘경기도 재정 비상’ 선언

전임 道政 ‘9개월 치 쪼개기 편성’ 주장…4분기 복지·민생 예산 집행 차질
지방채 한도 99.6% 충당·기금 5588억 전용…7700억 규모 ‘감액 추경’
취득세 중심 세입 구조 한계…고위직 경비 감액·강도 높은 구조조정 착수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취임 한 달 만에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했다. 경기도의 심각한 재정 난국을 공개하며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른 세입 급감과 전임 도정의 예산 운용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1420만 도민을 대상으로 한 필수 민생 사업마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5일 기자회견에서 도의 재정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5일 기자회견에서 도의 재정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추 지사는 5일 도청 브리핑룸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도는 새로운 공약 사업을 추진하기는커녕 이미 진행 중인 기존 사업조차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힘든 지경”이라며 “마른 땅에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엄혹한 재정 실상을 도민께 솔직히 보고드리고 재정 개혁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도 재정상황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두고 과장이나 명분 쌓기 아니냐는 오해가 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심각한 건 공직사회 내부에서조차 재정상황에 대한 공유가 없고, 심각성마저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5일 경기도 광교 청사에서 열린 추미애 지사의 긴급 기자회견. 경기도 제공
5일 경기도 광교 청사에서 열린 추미애 지사의 긴급 기자회견. 경기도 제공

◆ 사실상 ‘모라토리엄’ 선언…4분기 민생 예산 구멍

 

이날 추 지사가 밝힌 도 재정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민선 8기 당시 이뤄진 미봉책 성격의 예산 편성이다. 당시 도는 세입 부족을 이유로 노인장기요양, 친환경 학교 급식 지원 등 도민 삶과 직결된 주요 민생·필수 사업의 올해 예산을 12개월분이 아닌 9개월분만 편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로 인해 당장 오는 10월부터 12월까지 4분기에 집행돼야 할 노인장기요양 예산 1234억원을 비롯해 도교육청 급식비 지원 584억원, 산후조리비 지원 80억원, 친환경 농축산물 학교 급식 지원 34억원, 가족돌봄수당 14억원, 소아응급 책임의료기관 육성 10억원 등이 미편성 상태로 남아 있다. 이를 두고 전임 도 집행부가 예산을 미완성 상태로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경기도 광교 청사
경기도 광교 청사

◆20년 만의 지방채 발행과 기금 바닥…7700억 ‘감액 추경’ 불가피

 

재정 착시를 일으킨 주된 원인은 임시 재원의 무리한 동원이었다. 도는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총 943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이는 지방채 발행 한도액(9460억원)의 99.6%에 달하는 수치로, 도에서 지방채를 발행한 건 2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뿐만 아니라 남북협력기금 등 각종 기금의 조례를 개정해 5588억원을 일반회계로 전입해 썼다. 남북협력기금의 경우 조성액 384억원 중 340억원이 전입돼 잔액은 44억원에 불과하다. 이에 도는 올해 약 7700억원 규모의 세입 감소를 반영하는 ‘감액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불가피해졌다.

 

추 지사는 “시간이 흐른다고 경기도 재정 상황이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불과 2~3년 뒤에는 기존 채무를 갚기 위해 또다시 지방채를 발행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며 ‘결단’을 강조했다. 

 

◆취득세 의존 구조 한계와 폭증하는 복지 수요

 

추 지사는 현 재정 위기를 단순한 세수 감소가 아닌 구조적 불균형의 결과로 진단했다. 도의 전체 예산은 약 41조7000억원에 달하지만, 도가 자체적으로 재량을 갖고 활용할 수 있는 가용 재원은 3조5000억원(8.4%)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복지비, 국비 매칭 사업, 시·군 조정교부금 등 법정 의무 지출에 묶여 있다.

 

세입 기반 역시 취약하다. 도는 광역 지자체 중 지방소득세가 없고 보통교부세를 받지 못하는 불교부단체다. 전체 도세의 절반 이상을 부동산 거래량에 좌우되는 취득세에 의존하는 구조다. 부동산 침체 여파로 2022년 11조원에 달했던 취득세 수입은 올해 8조원 수준으로 30% 급감했다.

 

3기 신도시 개발에 따른 취득세 예상 수입 역시 당초 6500억원에서 2300억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반면 고령화 심화로 전체 예산의 49%를 차지하는 복지비 비중은 조만간 60%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5일 기자회견에서 도의 재정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5일 기자회견에서 도의 재정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고위직 경비 감액·조직 개혁…“민생 예산은 끝까지 사수”

 

추 지사는 재정 정상화를 위한 비상 대책을 즉각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도지사 및 고위 공직자의 업무추진비와 실행 경비를 감액하고, 낭비·선심성 행사와 불요불급한 사업을 중단한다. 관행적 연구용역과 민간 위탁 사업도 원점에서 재평가하며, 참모 조직과 공공기관 인력을 재배치하는 등 체질 개선을 추진한다.

 

아울러 정부와 국회를 향해 지방소비세 확대, 기업 유치 세수의 합리적 배분, 국고보조사업의 지방비 부담 비율 완화 등 세입 구조 정상화를 위한 법·제도 개혁을 강력히 요구하기로 했다.

 

추 지사는 “재정 위기의 부담을 사회적 약자에게 전가하지 않고 도민의 생명과 안전, 취약계층 보호 예산은 끝까지 지키겠다”며 “경기도의회와 31개 시·군, 1420만 도민이 원팀이 돼 위기를 극복해 나가자”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