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選民)이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하면, 자칫 배타적 민족주의로 왜곡될 수 있다. 하늘부모님의 심정 속에서 선민의 위상은 혈통적 가계도 혹은 특정 민족에 고정된 유전적 의미는 아니기 때문이다. 선민은 하늘의 뜻을 먼저 알고, 나보다 상대를 더욱 위하여 사는 삶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겠다는 자발적 자각을 전제로 한다. 한민족 선민사상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특정 민족의 특권적 지위를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핵심은 국경과 인종의 경계를 넘어 하늘의 참사랑을 인류 공동체 속에 실현할 보편적 평화의 길을 모색하는 데 있다.
특히 8월은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에게 역사적 기억과 상처의 굴곡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달이다. 이러한 시기에 참된 사명감은 과거의 대립 구도를 넘어 양국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섭리적 지평을 제시한다. 최근 일본 교회의 시련 속에서 깊은 실의와 상실감을 겪고 있는 일본 통일교 신도들에게, 선민의 확장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거대한 역사적 희망의 불씨가 된다. 섭리의 중심에서 참부모님을 모시고 시련을 딛고 일어선 그들의 헌신이야말로, 혈통의 경계를 넘어선 본질적 섭리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양국의 신도들이 함께 아픔을 치유하고 하나로 결속할 때, 역사는 국경을 초월한 인류사적 차원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한일 양국의 연대와 섭리적 확장은 가정연합의 대표적 사회철학인 공생공영공의주의(共生共榮公義主義)와 통일사상의 수수법이라는 강력한 이론적 틀 위에서 비로소 그 실천적 완성을 이룬다. 공생은 경제적 차원에서 자원과 삶의 기반을 함께 나누어 상생을 실현하는 원리이고, 공영은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모든 구성원이 공동체의 책임과 운영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원리이며, 공의는 공동윤리를 바탕으로 도덕적 사회통합을 이루어내는 원리이다. 이 세 가지 실천 원리는 서로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주체와 대상이 공통목적을 중심으로 상호작용하여 새로운 합성체를 형성하는 수수법에 의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목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발전적 수수작용’은 한국과 일본의 신도들이 국경을 넘어 더 높은 차원의 평화이상세계를 창출하는 ‘발전적 사위기대’로 구체화된다. 고통 속에서도 서로의 짐을 지고 위하여 사는 삶을 실천하는 한일 양국 신도들의 발걸음은, 공생공영공의의 섭리를 지상에 실체화하는 구체적인 실천이다.
◆ 한일교류와 참부모 섭리의 문화사적 의미
한일 관계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고대 한반도가 일본에 영향을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를 일방적인 문화 전달이나 우월성의 논리로 해석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문화인류학의 관점에서 문명은 언제나 상호 교류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가령 고대 한일 간의 교류와 기술 전파의 흐름은 『일본서기』와 같은 역사적 기술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으며, 대표적으로 오사카성 등 일본의 거점 건축과 도시 인프라 형성 과정에는 백제시대부터 일본에 전수 된 선진 토목과 건축 기술이 깊이 체화되어 있었다. 이처럼 문명의 성취는 일방적 전수가 아니라, 양 지역의 상호 작용과 끊임없는 노력 속에서 함께 성장해 온 결실이었다.
이 같은 역사적 연관성은 일본 각지에 남아 있는 신사와 전승을 통해 지금도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예를 들어 일본 사이타마현에는 고구려 왕족을 모시는 고려신사(高麗神社)가 존재하는 데, 이곳은 8세기 고구려 유민들의 정착과 함께 형성된 함께 형성된 대표적인 도래인 신사이다. 또한 가고시마 지역의 옥산신궁은 16세기 조선의 도공들이 단군을 조상신으로 모시며 세운 신사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규슈의 히코산 일대에서는 환웅과 연결되는 전승이 확인되는 등 한반도 고유의 삼신 신앙 형태가 발견된다. 이처럼 일본의 신토 전통 속에는 한반도의 천신 신앙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신앙과 제의가 단순히 오래된 전통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기다려 온 역사적 기억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무나카타 대사의 여신 신앙과 이즈모 대사의 신맞이 의례를 비롯한 일본의 해양 및 여성신 관련 전통에는 바다 건너에서 찾아올 존재를 맞이하려는 상징적 의미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고대 일본의 여성신 신앙과 제의문화의 형성 과정에는 한반도에서 전해진 문화와 천신 신앙의 영향이 스며들어 있다는 여러 연구와 학설도 존재한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적어도 한일 양국이 오랜 세월 문화적 교류를 통해 상호 간 깊이 연결되어 왔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 사회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기다림’의 전통은 종교적 관습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향한 문화적 열망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통일교 신학의 관점에서는 참부모를 맞이하기 위한 섭리적 준비 과정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오랜 기다림은 마침내 독생녀의 현현을 통해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실체를 갖게 되었고, 독생자와 독생녀가 하나 되어 참부모를 이루심으로써 하늘부모님의 참사랑이 인류 가운데 실현되는 새로운 섭리 시대를 열게 되었다.
◆ 한류와 풍류정신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탐구한 여러 연구는 한국인의 정신세계 깊은 곳에 풍류정신이라는 고유한 문화적 전통이 자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신라 말 학자 최치원은 『난랑비서』에서 풍류를 유·불·선을 아우르면서도 그 이전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민족 고유의 도(道)라고 설명하였다. 풍류정신은 단순히 예술적 감성이나 미학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그리고 하늘을 하나의 생명 질서로 이해하는 한국 고유의 정신문화였다. 이러한 풍류정신의 근저에는 태고부터 이어져 온 자연친화적 신앙과 하늘을 공경하는 문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는 자연을 그저 삶의 환경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그리고 하늘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관이었다. 이러한 정신문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보이지 않는 하늘의 뜻을 마음으로 헤아리고, 생명의 소중함과 공동체의 조화를 중시하는 심정문화로 발전하였다.
통일교 신학에서 심정은 인간의 감정이 아니라 하늘부모님과 인간을 이어 주는 가장 근원적인 내면의 능력이다. 인간은 타락으로 인해 하늘부모님의 심정을 온전히 체휼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양심과 심정을 통해 하늘의 사랑과 슬픔을 부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존재로 남아 있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풍류정신은 하늘을 향한 인간의 본래적 심정이 오랜 세월 한국 문화 속에 축적되어 온 정신적 유산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전 세계가 K-팝, 드라마, 영화 등 한류 문화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 역시 단순히 뛰어난 한국의 문화산업의 경쟁력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문화와 언어는 서로 다르지만, 인간 안에는 양심과 심정이라는 보편적 내면이 존재한다. 한국 문화가 지닌 따뜻한 정(情), 공동체의식, 배려와 공감의 정서는 바로 이러한 보편적 심정과 만나면서 국경과 인종을 넘어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시말해, 풍류는 한민족의 심정문화이고, 한류는 그 심정문화가 현대 문명을 통해 세계와 만나는 새로운 문화적 언어라 할 수 있다.
◆ 한(韓)민족 선민(選民)의 새로운 의미 : 열린 민족주의
이러한 관점에서 한민족의 선민성은 특정 민족의 우월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늘을 향한 심정을 먼저 간직하고, 이를 세계와 나누는 문화적 책임을 의미한다. 통일교 신학이 강조하는 하늘부모님의 참사랑 역시 이러한 심정을 인류 보편의 가치로 확장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 따라서 오늘날 한류의 세계적 확산은 한국 문화의 성공을 넘어, 하늘을 향한 심정문화가 세계와 공명하며 인류 한 가족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새로운 세계 문화사적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체성을 상징하는 ‘한(韓)’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총체적 사상의 시원이다. ‘한’이라는 한 글자 안에는 ‘크다, 전체, 밝다’라는 외적 확장성과 더불어 ‘하나님, 한뜻’이라는 내적 근원성이 공존한다. 이는 어둠과 죄악이 물러간 아침 태양의 광명한 세계를 의미하며, 맑고 깨끗한 본연의 성품으로 전체와 하나 되어 어우러지는 화합과 자유, 평등과 평화의 가치를 담고 있다.
즉, ‘한’은 하늘부모님의 속성을 닮은 인류 본연의 청사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한민족’은 단순히 한반도라는 지리적 경계나 단일 혈통이라는 생물학적 개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러한 편협한 시각은 ‘한’이 가진 포용과 통합의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한민족은 하늘부모님을 중심삼고 참사랑을 공유하며 실천하는 인류애에 있다. 피부색과 국경을 초월하여, 하늘 심정을 체휼하고 그 뜻을 위해 함께 호흡하는 모든 사람이 곧 ‘한민족’이라는 거대한 심정의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늘이 선택한 민족’을 뜻하는 ‘선민(選民)’의 개념 역시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선민은 타민족 위에 군림하는 특권적 지위가 아니라, 오히려 인류를 위해 먼저 십자가를 지고 헌신해야 하는 책임 있는 사명의 자리이다. 하늘이 한 민족을 먼저 택하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 참사랑의 모델을 세우고 전 세계로 그 사랑을 확산시키기 위함이다. 따라서 선민이란 하늘의 큰 사랑을 먼저 받은 만큼, 그 사랑을 온누리에 돌려주어야 할 참사랑 실천의 의무가 배양된 존재들이다. 독생녀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섭리적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한’의 정신을 실체화하여 전 인류를 하나의 심정공동체로 묶으시려는 하늘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이제 우리는 혈통적 민족주의의 좁은 틀을 벗어나야 한다. 전세계 인류가 하늘부모님 아래 한 가족이 되어 참사랑을 나누는 ‘글로벌 한민족’으로 거듭날 때 선민의 사명은 완성될 것이다.
◆ 한일 축복가정과 선민의 확장
우리는 흔히 고대 한일 관계를 국가 간의 딱딱한 외교나 갈등의 역사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일본서기(日本書記)』 「계체기」는 1,500년 전 한반도 남부와 일본 열도 사람들이 얼마나 살갑게 섞여 살았는지를 놀라운 비유로 증언한다.
“이 사현은 백제와 가깝게 이웃해 있어, 아침저녁으로 통행하기 쉽고, 닭과 개의 주인도 누가 주인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此四縣近連百濟, 旦暮易通 雞犬難別)”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조차 누구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가깝게 지냈다는 이 묘사는, 당시 한일 양국의 국경이라는 인위적 장벽을 넘어, ‘심정과 문화가 하나로 흐르는 단일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이처럼 고대 백제와 일본의 관계는 단순한 국가 간의 외교가 아니라 문명적 공동체를 형성했던 이웃이었다. 실제로 일본 고대 사회에는 많은 백제계 이주민 집단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들은 정치와 문화 네트워크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백제 문화는 일본 고대 문명의 형성에 영향을 줬고, 대표적인 게 불교문화이다.
일본 고대사를 연구한 후쿠오카대학 모모사키 유스케 교수는 “고대 일본의 호족 세력들은 중국과 직접 교류하던 백제와 가야의 문화·정보·자원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1990년대부터 일본 각지에서 한반도계 유물이 대규모로 발견되고 있으며, 일본 나라현립박물관에서는 이러한 자료들을 정리한 ‘한반도계 유물’이 편찬되기도 했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들은 고대 일본 사회에서 백제 문화의 영향력이 상당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평가된다. 이 같은 관계는 일본에 남아 있는 여러 유적과 신사에서도 확인된다. 일본 와카야마현의 스다하치만 신사(隅田八幡神社)에 전해 내려오는 청동거울이다. 이 거울에는 48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그 가운데 사마(斯麻)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학계에서는 이 사마가 백제 제25대 왕 무령왕의 이름으로 보는 게 정설이다. 실제로 공주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지석에서도 그의 이름이 사마(斯麻)로 기록되어 있어 동일 인물임이 확인된다. 일본에서 국보 2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동거울은 고대 한일 교류의 깊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랜 세월 대륙과 대서양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세계 문명사의 흐름이 이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통일교 『평화경』 강연문은 “인류 문명의 발전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대서양 문명권에서 태평양 문명권으로 이동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태평양은 단순한 바다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과 민족을 연결하는 거대한 교차로”라 밝힌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 속에서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문화적 차원에서 태평양 문명권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양국이 근현대사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고 인류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협력한다면, 단순한 경제 블록을 넘어 새로운 평화 문명의 원형을 전 세계에 제시하는 주역이 될 것이다.
문명사적 전환 속에서 등장한 존재는 바로 한일 축복가정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다문화가정 공동체이다.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가 가정을 통해 결합하는 축복가정은 단순한 국제결혼이 아니라, 인류가 하나의 가족으로 연결되는 미래 문명의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때 그 중심을 이루는 정신이 바로 효정(孝情) 사상이다. 효정은 하늘과 부모를 향한 수직적 사랑인 ‘효’와 형제와 이웃을 향한 수평적 사랑인 ‘정’이 결합된 심정 세계를 의미한다. 효가 종적 질서를 세우는 사랑이라면, 정은 인간 공동체를 확장하는 횡적 사랑이다. 효가 하늘을 경외하고 모시는 경천애인이라면, 정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철학인 것이다. 이 두 사랑이 균형을 이룰 때 인간은 가정을 넘어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인류 전체를 하나의 가족으로 바라보게 된다.
따라서 한일 축복가정은 단지 두 나라의 관계를 개선하는 사회적 현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효정의 사랑을 기반으로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는 인류 가족 공동체의 씨앗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민족의 선민 사명은 특정 민족의 선택이나 특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을 연결하고 확장하는 책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한일 축복가정은 바로 그 책임이 구체적인 삶의 형태로 나타난 사례이며, 태평양 문명권 시대에 인류가 하나의 가족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는 작은 시작이다.
◆ 환태평양문명권 시대, 한민족의 인류 가족
인류 역사는 언제나 바다를 따라 이동해 왔다. 고대의 지중해가 그러했고, 근대의 대서양이 그러했듯이 이제 세계사의 중심축은 태평양으로 옮겨가고 있다. 태평양은 단순한 해양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과 민족이 만나는 거대한 역사적 무대이다. 동쪽의 아메리카와 서쪽의 아시아가 마주하는 이 바다는, 인류가 갈등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공존의 질서를 모색하는 미래 문명의 바다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환의 시기에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태평양 문명의 동쪽 문을 여는 두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변화의 흐름 속에서 이미 조용히 역사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하늘을 숭상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해 온 한일 축복가정들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민족과 문화를 가정 안에서 화해시키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때로는 역사와 정치의 갈등이 양국 관계가 흔들릴 때에도 그들은 가정이라는 가장 작은 공동체 속에서 화해와 이해의 길을 보여주었다. 한일 축복가정들은 자연스럽게 한일 양국의 민간 외교관이 되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양국의 평화사절단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 왔다.
결국 태평양 문명권 시대에 한민족이 감당해야 할 사명은 분명하다. 그것은 특정 민족의 번영을 넘어 인류를 하나의 가족으로 묶는 심정의 문명을 여는 일이다. 하늘을 공경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경천애인의 정신, 그리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철학은 바로 그 길을 가리키고 있다. 한일 축복가정들이 보여 준 삶의 이야기는 그 가능성을 이미 증명하고 있다. 태평양의 거대한 물결 위에서 이제 한민족의 선민 사명은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것은 한 민족의 선택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한 가족으로 이끄는 책임의 역사이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