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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 이제원의 30년 된 외장하드] 1998년 4월 수요일에도, 폭염 속 오늘도 열린 “수요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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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dak 필름 한 롤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며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카메라에 표시된 필름 카운터가 25 정도가 되면 고민이 시작됐다. 필름을 새걸로 갈아야 하나 남은 거로 찍어도 될까? 제한된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신중함과 긴장감, 설렘은 지금의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는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다.

 

사진기자는 본인이 취재했던 사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관한다.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사진의 중요도를 떠나 보관을 많이 하는 사진기자이다. 역사의 중요했던 순간도 있었고, 상황이 기억도 없는 시답지 않은 사진도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담은 기념사진도 있고 취재와 출장 중에 보이는 나의 모습도 있다.

 

아주 먼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열어본 나의 외장하드를 독자들과 같이 꺼내보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1998년 4월 15일  정신대협의회, 경실련 등 시민단체 주최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신대 보상 촉구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다.
1998년 4월 15일  정신대협의회, 경실련 등 시민단체 주최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신대 보상 촉구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다.
1998년 4월 15일  정신대협의회, 경실련 등 시민단체 주최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신대 보상 촉구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다.
1998년 4월 15일  정신대협의회, 경실련 등 시민단체 주최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신대 보상 촉구 수요시위가 열리고 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되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에 대한 진상 규명과 법적 책임 이행 등 문제해결, 그리고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요구해 왔다.

 

수요시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매주 수요일 12시에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되는 시위로 지난 2011년 12월 14일 제1000차 정기 수요시위를 맞아 시위 장소에 '평화의 소녀상'이 처음 세워진 이후에는 소녀상 앞에서 정기 수요시위가 진행돼 왔다.

 

사진이 취재된 1998년 4월은 김대중 정부 당시 국무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배상이 미뤄지는 가운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예비비를 통해 1인당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정부 지원안이 논의되는 등 국내적 대책 마련과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에 피해 할머니들과 지원 단체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일본에 국가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일본 재판소에서는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전후 보상 청구 소송 등이 진행 중이었으며 이를 지원하기 위한 국내외 연대 집회가 이어졌다.

 

서울 전역에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되는 등 전국에 역대급 폭염이 이어진 수요일인 오늘 땡볕이 내리 쬐는 낮 12시 정각에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1764번째 수요시위’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