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극작가인 가브리엘 마르셀은 ‘쇼윈도 부부’의 내면을 이처럼 표현했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배우자를 도구화하지만, 정작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부는 그 어떤 존재보다도 불행하다는 의미다.
최근 국내 이혼 소송 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액(9440억원) 판결로 화제를 모은 최태원 SK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부부도 그럴 듯하다. 대법원 상고시한(15일)을 앞두고 있지만, 21년 동안 남남처럼 지내 온 두 사람의 쇼윈도 부부 생활도 곧 마침표를 찍게 될 것으로 보인다. 5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1988년 9월 청와대에서 ‘세기의 결혼식’으로 대중의 이목을 끈 두 사람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악화일로의 관계를 걷게 됐다. 그 첫 시작은 최 회장의 모친인 박계희 여사와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의 잇따른 별세였다.
최 회장은 박 여사와 최 선대회장이 각각 1997년과 1998년 세상을 등지면서 삶의 커다란 기둥이 무너지는 듯한 상실감을 느꼈다. 최 회장은 이혼소송 당시 법원에 제출한 상고이유서에서 “부모의 잇따른 사망에 슬픔과 충격을 겪었지만, 노 관장에게 기대했던 충분한 위로와 지지를 얻지 못해 큰 상실감을 느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최 회장은 2003년 3월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또 한 번의 위기를 겪는다. 최 회장은 이혼소장을 통해 “슬픔과 공황 상태에 빠졌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배우자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인데 가치관 차이 등으로 관계를 회복하기 어렵게 됐다”며 토로했다. 가장 가까워야 할 배우자로부터 어떠한 위안도 얻지 못한 것이 관계 소멸의 결정타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2005년 ‘사실상’ 종지부를 찍는다. 이때부터 최 회장과 노 관장은 자택 내에서 침실과 생활 동선을 완전히 분리하는 ‘한 지붕 별거’에 들어갔다. ‘법적 부부’라는 꼬리표만 달렸을 뿐 관계는 소멸했던 셈이다.
최 회장은 노 관장이 2011년 SK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청와대에 청탁한 정황 등 부부간의 최소한의 신뢰마저 깨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노 관장 측은 수사 청탁 의혹 자체를 부인했고, 오히려 노 관장이 옥바라지를 하며 가족을 추슬렀다고 반박했다.
특히, 2015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을 앞두고 노 관장이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게 최 회장의 사면을 반대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보낸 사실이 알려지는 등 서로의 불신과 갈등은 극에 달했다. 다만 사면 반대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최 회장은 광복절 특사로 나왔다. 최 회장은 작심한 듯, 그해 12월 본지에 보낸 친필 편지로 혼외자의 존재와 이혼 의사를 대중에 공개하며 결별을 공식화했다.
이후 2017년 최 회장의 이혼 조정 신청으로 시작된 재판은 2019년 12월 노 관장이 맞소송을 내고 절반에 달하는 SK의 주식 분할을 요구하면서 재산분할 싸움으로 확전됐다.
결국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이혼 청구와 위자료 부분을 확정하면서 두 사람의 혼인 관계는 실질적 파탄 이후 21년 만에 끝이 났다.
남은 것은 재산분할이다. 지난달 24일 서울고법은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현금으로 944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상고시한까지 양측이 상고하지 않으면 그대로 확정된다.
법조계에서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과정에서 불거진 ‘실체 없는 혼인 관계’를 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유익한지에 대한 질문이 나온다. 대법원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유책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