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이용한 ‘딥페이크(허위영상물)’ 성범죄에 대해 검찰이 형량이 높은 성폭력처벌법이나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가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허위영상물을 시청하거나 소지하는 행위도 처벌하도록 관련 법이 강화됐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법의 사각지대 탓에 처벌망을 빠져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5일 판결문 검색 서비스 엘박스(LBox)를 통해 분석한 결과 지난해 선고된 성적 허위영상물 관련 1심 사건 중 일부 혹은 전부 무죄가 선고된 건은 최소 14건으로 집계됐다.
구체적인 무죄 판단 이유를 살펴보면 허위영상물을 소지하거나 배포한 것은 맞지만 등장하는 실존 인물을 특정하지 못하거나, 얼굴은 아동이지만 합성한 몸은 성인이라 청소년성보호법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 등 법률상 처벌 대상에 포섭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경우가 42.9%(6건)였다. 이어 ‘기타 범죄 증명 부족’ 35.7%(5건), ‘구법 적용 사건에서 반포·제공 목적 미입증’ 14.3%(2건), ‘위법수집증거로 인한 증거능력 부정’ 7.1%(1건) 순으로 뒤를 이었다.
현행 성폭력처벌법은 ‘사람의 얼굴·신체 또는 음성’을 이용한 허위영상물로 처벌 대상을 한정한다. 청소년성보호법은 실제 아동·청소년이거나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히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이 등장하는 경우로 정하고 있다. 수사기관이 영상 속 인물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임을 밝히지 못하거나,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이라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 셈이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지난해 7월 텔레그램 채널에 허위영상물을 올려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실제 사람의 얼굴에 여성의 나체를 합성했는지, 가상 인물의 얼굴에 실제 여성의 나체를 합성했는지 알 수 없다”며 “공소사실에 기재된 ‘불상의 피해자’가 실제 존재한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검사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이 사건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9월 미성년자 걸그룹 멤버의 얼굴을 나체 사진과 합성해 텔레그램방에 게시한 사건에서 일부 공소사실에 대한 원심의 유죄 판단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허위영상물 속 인물이 피해자의 얼굴은 맞지만 성인의 몸과 합성한 것이라며 “사회 평균인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봐 명백하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미성년자임을 명백히 알 수 있는 표현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성폭력처벌법이나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적용이 어려울 때는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을 제재할 수 있는 건 유포할 때에 국한되고 단순 소지는 처벌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법적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실존 인물 여부와 관계없이 가상 인물에 대한 성적 영상물 제작·유통 및 단순 소지까지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 대표발의)이 지난해 9월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다만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를 전제로 하는 성폭력처벌법에 피해자가 실존하지 않는 가상 인물까지 포함하는 것은 법 체계상 정합하지 않을 수 있다”며 “정보통신망법의 형량을 강화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란 신중 입장을 밝혔다.
한편 경찰청이 집계한 성적 허위영상물 관련 신고 건수는 2021년 156건에서 2024년 10월 기준 964건으로 약 3년 만에 6.2배 급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