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618∼907년)는 건국 초기 부병제를 기반으로 동아시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755년 시작된 ‘안사의 난’ 이후 지방 절도사들이 군권을 장악하면서 황제의 통치력은 급속히 약화됐다. 중앙의 지휘체계는 흔들렸고, 군대는 국가가 아닌 지방 권력의 사병으로 변질됐다. 군 기강은 해이해지고 훈련은 형식화됐다. 통제력을 잃은 군대는 당나라 쇠망의 결정적 원인 중 하나가 됐다. ‘당나라 군대’. 흔히 군기가 빠지고 규율이 무너진 ‘오합지졸(烏合之卒)’을 빗대 쓰는 표현이 등장한 배경이다.
한때 유럽과 지중해를 지배했던 서로마제국도 같은 길을 걸었다. 제국 말기 시민들의 병역 기피가 심해지자 국방을 게르만 용병과 동맹 부족에 의존했다. 군은 국가를 지키는 조직이 아니라 황제를 옹립하고 폐위시키는 정치 세력으로 변질됐다. 자연 충성심과 규율은 무너졌다. 결국 제국은 476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후세 자중지란에 의한 멸망으로 기록됐다.
2024년 12월3일 대한민국 군이 비상계엄에 가담했다. 1980년 5월 이후 40여년 만에 군이 국내 정치 한복판에 등장한 장면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국회에 난입해 “의원들 끌어내라” “싹 다 잡아들여”라는 대통령 지시에 군 수뇌부 누구 하나 토를 달거나 제동을 걸지 않았다는 사실은 더욱 뼈아팠다. 계엄 이후는 더 가관이었다. 군의 명예와 책임을 보여주기보다 개인의 신변과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으로 비쳤다. 비굴하고 옹색했다. 국민 신뢰를 잃은 군은 지리멸렬(支離滅裂)했다.
후폭풍은 지금도 계속된다. 정부는 ‘내란의 잔불이 꺼지지 않았다’며 적폐 청산의 칼을 마구 휘둘러댄다. 계엄 연루 의혹에 휩싸인 장성과 고위 장교들이 추풍낙엽처럼 스러진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조직은 극도로 위축되고, 그 어디에도 무장(武將)의 기개를 찾기 힘들다. 군인이 샐러리맨처럼 됐다는 자조는 일상이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군 기강 해이를 보여주는 사건들이 잇따르는 것은 결코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최근 서부전선 최전방 군단에서 드러난 K6 중기관총 ‘빈총 경계’가 대표적 사례다. 총기에 실탄을 장전하지 않고 탄통만 옆에 둔 채 경계근무를 서 왔다는 사실은 유사시 최전방 경계의 기본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다. 총기는 폼으로 두는 장식품이 아니다.
지난달 30일 한·미 연합훈련(KMEP)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 또한 놀랍다. 주한미군이 드론(무인기) 운용 계획을 사전에 우리 군에 통보하고 공식 공문까지 보냈지만, 해당 정보는 차단됐다. 그 결과 우리 군이 훈련 중인 미군 드론을 격추할 뻔한 상황까지 발생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한·미 연합작전 체계와 정보 공유 시스템, 지휘통제 전반에 허점을 드러낸 위험천만한 사건이다. 평소 동맹 간의 촘촘한 정보 공유와 긴밀한 신뢰를 호언장담해온 군이 아닌가. 단순한 행정 착오로 치부하며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난 3일에는 해병대 간부가 총기 사고로 숨진 데 이어, K1 기관단총과 실탄을 60시간 넘게 부대 밖으로 반출했던 사실까지 드러났다. 총기와 탄약 관리라는 군의 가장 기본적인 통제 시스템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기가 찰 노릇이다.
여기에다 정부는 국군방첩사령부를 해체해 방첩·보안·수사 기능을 여러 조직으로 분산시키는 개편을 단행했다. 물론 비상계엄의 결과로 자업자득이랄 수 있다. 하지만 방첩 기능은 전문성과 독립성이 생명이다. 기능이 지나치게 분산되면 책임 소재는 흐려지고 정보 역량은 약화할 수 있다. 간과해선 안 된다. 극심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 기존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없애고 대전 자운대에 새로운 통합 사관학교 설립을 밀어붙이는 것도 군 내부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유래가 어찌 됐든 당나라 군대라는 비유는 동서고금 특정 국가를 넘어선다. 군의 지휘체계 시스템이 무너지고 내부 기강이 해이해졌을 때 한 국가가 얼마나 쉽게 무력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를 담고 있다. 묻고 싶다. 과연 우리 군은 그 경고 앞에서 자유롭다고 자신할 수 있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