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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김광현이 떠난 자리… 양현종이 홀로 마운드를 지킨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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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들이 지나간 자리, 마운드를 끝까지 지킨 타이거즈의 심장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 잠실야구장에서 9회말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팀의 통산 11번째 우승을 확정 지은 후 환호하는 양현종. 2차전 완봉승과 5차전 세이브를 연이어 거두며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쥐었다. 연합뉴스
2017년 한국시리즈 5차전, 잠실야구장에서 9회말 마무리 투수로 등판해 팀의 통산 11번째 우승을 확정 지은 후 환호하는 양현종. 2차전 완봉승과 5차전 세이브를 연이어 거두며 한국시리즈 MVP를 거머쥐었다. 연합뉴스

 

2007년 광주. 붉은 유니폼을 입은 열아홉 사내아이의 첫걸음은 위태로웠다. 제구가 흔들릴 때마다 마운드 위에서 고개를 숙였고, 팬들의 시선은 온통 동기였던 김광현과 류현진이라는 ‘세기의 천재’들에게 쏠려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가 훗날 선동열과 최동원의 이름을 넘어서며 한국 프로야구 마운드의 가장 깊은 역사 자체가 될 것이라 쉽게 단언하지 못했다.

 

KIA 타이거즈의 ‘대투수’, 양현종의 이야기다.

 

‘괴물’의 그늘에서 시작된 시련

‘대투수’의 첫걸음. 2007년 열아홉의 나이로 KIA 타이거즈 유니폼(등번호 37번)을 입고 역투하는 루키 양현종. 제구가 흔들리며 시련을 겪던 이 앳된 소년은 훗날 KBO 마운드의 역사가 되었다. 기아타이거즈 제공
‘대투수’의 첫걸음. 2007년 열아홉의 나이로 KIA 타이거즈 유니폼(등번호 37번)을 입고 역투하는 루키 양현종. 제구가 흔들리며 시련을 겪던 이 앳된 소년은 훗날 KBO 마운드의 역사가 되었다. 기아타이거즈 제공

 

어린 시절 난시가 심해 빨간 뿔테 안경을 쓰고 마운드에 오르던 동네 야구 소년. 데뷔 초 체구가 작아 “스태미나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들을 때마다, 그는 어머니가 끓여준 사골 국물을 마시며 하루에 다섯 끼를 먹는 악바리 근성을 발휘했다. 마운드 밖에서는 그저 웃음 많은 순박한 광주 소년이었지만, 야구공을 잡을 때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지독한 깡다구를 품고 있었다.

 

‘빨간 안경 소년’의 성장기. 기아 타이거즈 제공
‘빨간 안경 소년’의 성장기. 기아 타이거즈 제공

 

시작부터 최고였던 적은 없었다. 류현진이 데뷔 첫해 신인왕과 MVP를 휩쓸고, 김광현이 삼진쇼를 펼치며 한국 시리즈를 지배할 때 양현종은 들쑥날쑥한 제구와 싸워야 했다. 데뷔 첫해 성적은 1승 2패, 평균자책점 4.17.

 

그러나 그에겐 한눈팔지 않는 묵묵함이 있었다. 매년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고 또 던졌다. 제구를 잡기 위해 투구 폼을 고쳤고, 체력을 기르기 위해 누구보다 일찍 운동장에 나왔다.

 

시련을 자양분 삼아 자란 왼쪽 어깨는 점차 매서워졌다. 2009년 팀의 10번째 우승 현장에서 13승을 거두며 에이스의 싹을 틔웠고, 2014년에는 마침내 16승을 올리며 KBO 리그를 대표하는 좌완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2019년 프로야구 시상식 현장에서 포착된 동료들.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으로 이어지는 KBO 대표 좌완 에이스 삼총사 중 양현종은 묵묵히 마운드를 지키며 자신만의 고유한 역사를 써 내려갔다.
2019년 프로야구 시상식 현장에서 포착된 동료들.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으로 이어지는 KBO 대표 좌완 에이스 삼총사 중 양현종은 묵묵히 마운드를 지키며 자신만의 고유한 역사를 써 내려갔다.

2017년 가을, 광주를 울린 완성의 순간

 

양현종이라는 이름 석 자가 한국 야구 역사에 완벽히 각인된 건 2017년이었다.

 

정규시즌 20승을 달성하며 팀을 1위로 이끈 그는,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1-0 완봉승이라는 전설적인 투구전을 펼쳤다. 그리고 팀의 8년 만의 통합 우승을 확정 짓던 5차전, 9회말 마지막 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정규시즌 MVP와 한국시리즈 MVP를 동시에 싹쓸이한 그 순간, 그는 마운드 위에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포효했다. 광주 무등산의 기운을 받아 자란 소년이 팀의 완벽한 수호신으로 거듭난 결정적 장면이었다.

 

숫자가 증명하는 묵묵한 위대함

 

메이저리그라는 꿈을 향해 텍사스 레인저스의 유니폼을 입고 외로운 도전을 이어갔던 2021년을 제외하면, 그의 삶은 온전히 KIA 타이거즈, 그리고 KBO 리그의 마운드와 함께였다.

 

2000탈삼진 돌파, 통산 170승 달성, 최다 이닝 투구 기록. 선동열의 통산 다승을 넘어서고 송진우의 기록을 향해 달리는 그의 기록지는 화려한 순간의 폭발력이 아닌, ‘매년 170이닝 이상을 던져낸 지독한 꾸준함’으로 만들어졌다.

 

투수의 어깨는 소모품이라 불린다. 수많은 에이스들이 부상과 혹사의 여파로 마운드를 떠나거나 2선발로 물러설 때, 양현종은 단 한 번도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고 가장 먼저 공을 받아 들었다.

 

여전히 마운드 위에 서 있는 이유

스러지지 않는 대투수의 현재. 열아홉 루키 시절부터 세월이 흘러 어느덧 서른여덟의 베테랑이 된 양현종.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그가 마운드 위에서 공을 뿌리는 묵묵한 열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스러지지 않는 대투수의 현재. 열아홉 루키 시절부터 세월이 흘러 어느덧 서른여덟의 베테랑이 된 양현종. 1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그가 마운드 위에서 공을 뿌리는 묵묵한 열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연합뉴스

 

그는 이제 서른여덟의 베테랑이다. 전성기 시절의 150km/h에 육박하던 직구 구속은 조금 줄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체인지업과 쌓여온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한 경기 운영은 그를 여전히 KBO 리그 최고의 선발 투수 자리에 묶어두고 있다.

 

류현진이 미국으로 떠나고, 김광현이 시련을 겪는 동안에도 그는 가장 오래 광주의 마운드를 지켰다.

 

1등의 화려함보다 더 무서운 것은 스러지지 않는 꾸준함이다. 열아홉의 나이에 붉은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올랐던 소년은, 이제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굳건한 마운드의 아이콘이 되었다. 양현종의 투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