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서 ‘은둔의 경영자’로 불렸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배구연맹 총재로 취임하며 적극적인 대외 행보를 펼치고 있다. 성공적인 M&A(기업인수합병)로 태광그룹이 사업체질 개선을 본격화하면서 이 전 회장의 대외 행보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지난달 3일 있었던 제9대 한국배구연맹(KOVO) 총재 취임식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당시 한국 배구의 혁신과 소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는데, 그간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이 전 회장이 이례적으로 취임 첫날 공식 기자회견에 나서면서 언론 및 배구팬들과의 쌍방향 소통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전 회장은 “변화는 혼자 만들 수 없으며 연맹, 선수, 지도자, 팬 모두의 지혜와 힘이 필요하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소통과 신뢰의 리더십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전 회장이 배구연맹 총재로 한국 배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재미와 지속성장, 교류를 제시했다.
“결국 배구가 재미있고 사랑을 받아야 팬 베이스가 확장된다”는 게 이 전 회장의 생각이다. 특히 그간 고질적인 문제로 평가받던 배구의 판정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인공지능) 기반 판정 시스템 도입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현재 배구계의 가장 큰 난제인 학생 선수 감소 문제를 정조준해 학원 스포츠와 실업, 아마추어 배구와의 연계를 강화해 지속 가능한 배구 생태계를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김연경 선수와 이다현 선수 등의 사례를 들며 국내 선수들의 적극적인 해외 리그 진출 및 외인·외국인 지도자 영입을 통한 국제 경쟁력 강화를 강조했다.
당장 배구계는 이 전 회장의 등장을 반기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구단주 출신인 이 전 회장은 재계에서 대표적인 배구 전문가로 통한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월 흥국생명 배구단 구단주를 맡았으며, 흥국금융그룹을 통해 2026~2027시즌부터 3년간 V리그 타이틀 스폰서 계약을 체결해 연맹의 재정을 든든히 뒷받침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오너 구단주 출신 총재로서 장기적이고 과감한 투자와 리그 발전 계획을 주도할 것으로 배구계는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이 전 회장의 이런 행보는 전임 배구연맹 총재였던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조 회장은 임기 중 공식 대면 기자회견이나 간담회를 거의 진행하지 않은 비대면 소통 중심의 행보를 보였다. 취임 초기인 2017년 7월 제6대 총재 취임식 당시 공식 기자회견을 가져 포부를 밝힌 적은 있지만 이후 9년간의 재임 기간에는 대면 기자회견을 극도로 자제한 바 있다. 조 회장은 연임이나 주요 현안이 있을 때 대면 기자회견이나 간담회를 여는 대신, 연맹을 통한 서면 인터뷰나 보도자료, 이취임식 이임사 등의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번 퇴임식에서도 출입기자단과의 소통을 서면 인터뷰로 대신하며 한국 배구의 상생을 당부한 바 있다.
이같은 이 전 회장의 대외행보에는 최근 성공한 M&A가 발판이 됐다는 분석이다. 태광그룹은 애경산업과 동성제약 등 최근 전략적 M&A를 통해 기존 화학·섬유·금융에 뷰티·헬스케어, 첨단소재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세웠다. 태광그룹은 태광산업과 애경산업, 동성제약 실무진이 참여하는 시너지 TF(태스크포스)를 출범해 생산·구매 영역의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생산물량은 동성제약이, 뷰티 및 벨류체인은 애경산업과 동성제약이, 경영정상화는 태광산업과 유암코 컨소시엄이 맡으며 그룹 계열사 간 시너지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소비자 신뢰확보가 생명인 리테일 사업을 고려할 때 이 전 회장이 배구연맹 총재 등 전면에 나서면서 긍정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태광이 체질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M&A에 나선 상황에서 신사업으로 세운 뷰티와 헬스케어 산업의 경우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하다”며 “결국 이 전 회장이 배구연맹 총재로 취임하는 등 대외행보를 늘리는 것이 신사업 성장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