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 러시아와의 군사협력과 사이버 범죄 등을 통해 막대한 외화를 확보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어느 때보다 경제적 운신의 폭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6일(현지시간) 북한 김정은 정권이 2022∼2025년 동안 최대 약 220억달러(약 31조원)에 달하는 ‘횡재성 수입’을 확보한 것으로 추산된다며 이는 김 위원장의 약 15년 집권 기간 중 가장 강력한 재정적 여력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외화 수입 확대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급속도로 밀착한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북한이 2023년 8월부터 2025년 말까지 러시아 파병과 군수물자 수출로 얻은 직접 수익의 경제적 가치를 76억7000만∼144억달러로 추정했다. 다만 이는 실제 현금 수취액이 아니라 파병과 수출된 군수물자의 가치를 달러로 환산한 수치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포탄과 미사일 등 무기 수출에서 발생했고 병력 파견에 따른 수입은 약 6억2000만달러로 추산됐다.
북한의 사이버 범죄 역시 주요 외화 조달원이다. 북한과 연계된 해킹 조직들은 가상자산 거래소와 금융기관 등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면서 최근 수년간 수십억달러 상당의 가상자산을 탈취한 것으로 분석돼왔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TRM랩스 관련 집계에서는 북한 연계 조직의 가상자산 범죄 수익이 2017년 이후 누적으로 6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됐다.
러시아 및 중국과의 경제관계 확대도 북한 경제에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북한의 2025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년보다 3.5% 증가한 것으로 추산했다. 북한 경제는 2023년 3.1%, 2024년 3.7%에 이어 3년 연속 3%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은은 러시아와의 경제협력 확대와 무기 수출에 따른 관련 제조업 생산 증가 등이 성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했다.
중국과의 교역도 코로나19 대유행 당시의 국경봉쇄에서 벗어나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이와 함께 텅스텐 가격 급등에 따른 광물 수출 증가도 올해 북한의 외화 수입 확대에 일부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김 위원장은 늘어난 자금 가운데 상당 부분을 핵·미사일과 재래식 전력 고도화에 쏟아붓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블룸버그는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북한의 핵탄두 보유량이 향후 10년 안에 프랑스 수준에 근접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재래식 전력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북한은 최근 2년 사이 5000t급 구축함 2척을 공개했다. 북한이 보유한 역대 최대 규모 군함으로, 불과 수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기술적 도약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가운데 적어도 한 척에는 러시아제 판치르-M 함정용 방공체계로 추정되는 무기가 탑재됐다. 해당 체계는 약 2000만달러 상당으로 북한이 자체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진 단거리 방공체계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김정은 정권에 가하는 경제적 압박이 과거보다 약화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겸 코리아리스크그룹 이사는 “북한은 지난 35년 중 어느 때보다 강한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판매해 얻은 수익을 “복권에 당첨된 것”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원을 안정적인 “연금”에 각각 비유했다.
다만 북한 경제가 구조적으로 정상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쌀과 연료 등 시장 물가가 크게 상승하는 등 내부의 통화 불안은 계속되고 있으며, 최근의 외화 수입 역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사이버 범죄,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외부 요인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올해 상반기 북한 원화의 달러 대비 시장 환율이 한때 연초보다 약 90% 급등했다며 외화 수입 확대가 국내 경제의 불안정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