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역내에서 독일, 프랑스 다음으로 3위 그리고 4위 경제력을 각각 자랑하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이민 문제를 놓고 정면 충돌했다. 두 나라 모두 여름철 성수기에 여행객들이 몰리는 세계적인 관광 대국이기도 하다.
7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이날 이탈리아를 겨냥한 국경 통제 방침을 밝혔다. 이탈리아 정부가 이른바 ‘스페인령 세우타(Ceuta) 이주민 사태’를 계기로 스페인에 국경 통제 조치를 부과하는 데 따른 보복인 셈이다. EU 회원국인 양국은 ‘솅겐 협정’(1985)에 따라 평상시에는 여권 심사 등 검문 절차 없이 주민들의 자유로운 상호 이동을 보장하고 있다.
스페인은 먼저 이탈리아가 현재 취하고 있는 국경 통제를 9일 이전에 전면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9일 0시를 기해 오는 9월7일까지 약 1개월 동안 이탈리아에서 오는 이들을 상대로 국경 통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두 나라는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은 만큼 이번 조치는 이탈리아를 출발해 스페인에 도착하는 항공기 및 선박 탑승객들을 대상으로 삼게 된다.
이탈리아는 세우타 사태 직후인 이달 초부터 스페인에 대해 국경 통제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날 보복을 다짐한 스페인 정부의 발표를 ‘최후통첩’, ‘강요’ 등에 비유하며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소 오는 15일까지는 이탈리아로 입국하는 스페인 주민들에 대한 국경 통제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 7월30일 북아프리카 모코로에서 출발한 이주민 무려 7만2000명이 한꺼번에 세우타로 진입하는 최악의 집단 월경(越境) 사태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바다를 건너던 이주민들 가운데 익사자가 속출하며 100명가량이 목숨을 잃는 참사도 빚어졌다.
인구 8만5000명의 작은 도시 세우타는 모로코와 인접해 있으나 엄연히 스페인령이다. 솅겐 협정에 따라 일단 스페인 영토에 발을 내디딘 이주민들은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 이른바 ‘솅겐 구역’에 속한 다른 유럽 국가로 이동할 수 있다. 아비규환을 연상케 하는 세우타의 모습을 담은 영상과 사진은 유럽 주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강력한 반(反)이민 정책을 펴 온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제일 먼저 행동에 나섰다. 이탈리아의 강성 우파 연립정부는 EU 지도부에 “스페인을 상대로 솅겐 협정 적용을 잠정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이탈리아를 겨냥해 “이기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을 쏟아냈다. 좌파 연립정부가 이끄는 스페인은 EU 회원국 중에서 가장 이민 친화적이다.
스페인과 모로코의 협상을 통해 7만2000명의 월경자 거의 대부분이 모로코로 돌아갔으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정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강경한 반이민 공약을 앞세우는 EU 내 극우 정당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