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사위를 (칠레 수도) 산티아고 주재 대사로 파견했다. 또한 서울(한국) 정부는 여러 차례 칠레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싶다는 뜻을 표명했다.”
1975년 2월24일 당시 칠레 외교부 차관 엔리케 발데스 푸가가 주한 칠레대사에게 보낸 외교문서에 담긴 내용이다. 문서에 등장하는 ‘박 대통령의 사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 박재옥씨의 남편인 고 한병기(1931∼2017) 당시 주칠레대사다.
칠레 외교부 역사문서보관소의 해당 문서를 인용한 칠레 학술지 ‘레비스타 디베르헨시아’의 2022년 논문에 따르면, 칠레 군사정부는 한 대사의 부임을 한국 정부가 보낸 ‘우호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특히 대통령의 사위가 대사로 부임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 대사는 1974년 4월 주칠레대사로 부임했다.
사실 한국과 칠레의 인연은 이보다 훨씬 앞서 시작됐다. 칠레는 1949년 5월27일 남미 국가 가운데 최초로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했고, 양국은 1962년 4월18일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냉전 초기부터 이어져 온 양국 관계는 1970년대 들어 정치·외교적 교류가 확대되면서 한층 가까워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위인 한 대사의 부임은 당시 양국 관계의 정치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최근 신간 ‘왜 지금 칠레인가’를 펴낸 황정한 전 주칠레 공사참사관은 한국과 칠레의 관계를 외교·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조명한다. 황 전 공사참사관은 “당시 칠레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의 사위를 대사로 보낸 사실 자체를 한국 정부의 특별한 우호와 신뢰의 표시로 받아들였다는 점이 흥미롭다”며 “단순한 외교관 인사를 넘어 당시 양국 관계의 정치적 중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한다.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두 나라가 서로에게 관심을 보인 배경에는 당시 두 나라가 처한 상황이 묘하게 닮아 있었던 점도 있었다. 1970년대 한국과 칠레의 권위주의 정부는 모두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해 있었다. 한국에서는 박정희 정권이 1972년 유신체제를 선포하며 권력을 강화했고, 칠레에서는 1973년 9월11일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정권이 인권 탄압으로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황 전 공사참사관은 “정도와 양상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1970년대 두 정부 모두 권위주의적 통치와 인권 문제 등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해 있었다”며 “이러한 국제환경 속에서 양국은 서로에게 새로운 협력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설명한다. 당시 칠레 군사정부 내부에서는 정치적 권위주의 아래 국가 주도의 수출산업화를 추진하던 한국의 발전 경험도 하나의 참고 모델로 검토됐다.
그러나 이후 두 나라가 선택한 경제개발의 길은 달랐다. 피노체트 정권은 미국 시카고대에서 수학한 경제학자 집단인 이른바 ‘시카고 보이즈(Chicago Boys)’를 앞세워 민영화와 규제 완화, 무역 자유화를 골자로 한 시장 중심의 개혁을 택했다.
피노체트 정권은 살바도르 아옌데 사회주의 정부의 국유화 정책을 되돌리며 시장경제로 빠르게 방향을 틀었다. 황 전 공사참사관은 “아옌데의 507개 국유 기업은 피노체트에게 있어 타도해야 할 비효율의 상징이었다”며 “피노체트는 집권 직후 200개가 넘는 기업을 단숨에 원주인에게 돌려주며 시장경제로의 회귀를 선언했다”고 설명한다.
이후 국영기업 매각이 이어졌고 1980년대에는 연금부터 전력·통신에 이르기까지 시장 원리가 광범위하게 도입됐다. 이 과정에서 칠레는 중남미를 대표하는 개방경제로 변모했지만 경제력 집중과 사회적 불평등이라는 그늘도 뒤따랐다. 황 전 공사참사관은 “다만 시장 중심 경제체제가 정착되는 한편, 민영화 과정에서 경제력이 소수 기업집단에 집중됐다는 비판도 제기됐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두 나라의 닮은 점은 권위주의 시대에만 머물지 않았다. 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과 방식 속에서도 한국과 칠레는 이후 민주화와 대외개방이라는 공통의 길을 걸었다. 황 전 공사참사관은 책에서 “한국과 칠레의 관계가 특별한 것은 1970년대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며 “두 나라는 권위주의 시대를 지나 민주화를 이루고, 대외개방과 자유무역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켜 왔다는 공통의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어 “지리적으로는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현대사의 궤적이 닮아 서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나라”라고 평가한다.
한국이 정부 주도의 수출산업화에 무게를 두었다면 칠레는 보다 급진적인 시장개방을 선택했다. 출발점과 방식은 달랐지만 두 나라는 세계시장과의 연결을 성장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다시 만났다. 이 시기 구축된 세계화와 개방경제 체제는 훗날 한국과 칠레를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연결하는 고리가 됐다.
◆한국 첫 FTA 상대국 된 칠레
한국과 칠레의 경제적 협력 관계는 2000년대 들어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이어졌다. 한국이 첫 FTA 상대국으로 칠레를 선택한 배경에는 1997년 외환위기의 경험이 자리한다. 시장 개방과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했던 한국에 칠레는 국내 산업에 미칠 충격을 상대적으로 줄이면서 FTA의 효과를 시험하고, 중남미 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을 수 있는 상대였다.
황 전 공사참사관은 “칠레는 우리와 지리적으로 멀고 산업구조가 보완적이었기에 국내 산업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고, 농업 부문에서도 칠레가 남반구에 위치하여 계절적으로 상품별 경쟁이 적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한다. 칠레 역시 한국을 아시아·태평양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봤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양국은 1999년 12월 FTA 협상을 시작해 2002년 10월 타결했고, 2003년 2월15일 정식 서명한 뒤 2004년 4월1일 발효했다. 이는 한국이 체결한 최초의 FTA였다. 2003년 약 5억달러였던 한국의 대칠레 수출은 이후 공산품을 중심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선점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칠레가 중국과 2006년, 일본과 2007년 각각 FTA를 발효하면서 한국이 누리던 관세 측면의 비교우위도 줄었다.
황 전 공사참사관은 이후 한국의 대칠레 수출이 주춤한 배경으로 중국·일본과의 경쟁 심화를 꼽는다. 다만 대칠레 수출액 감소를 한국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멕시코·베트남 등으로 해외 생산거점을 확대하면서 과거 한국에서 직접 수출하던 물량 상당 부분이 제3국 생산·수출로 전환된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FTA 발효 22년이 지난 지금 양국은 협정의 ‘2막’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칠레를 공식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 칠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광물자원 파트너십’ 양해각서(MOU) 등 5건의 MOU를 체결했다. 한국 대통령의 칠레 방문은 11년 만이다. 이 대통령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새로운 현실을 반영하도록 진화해야 한다”며 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국은 2018년부터 FTA 개선 협상을 진행해왔다. 상품시장 접근을 확대하고 새로운 통상규범을 반영하는 것이 핵심이다. 동시에 구리와 리튬 등 핵심광물 공급망과 재생에너지, 수소 등으로 경제협력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황 전 공사참사관은 “20년 전 체결한 상품 무역 위주의 협정을 현재 상황과 필요를 반영할 수 있도록 다각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2004년 발효한 한·칠레 FTA가 한국의 중남미 진출을 위한 교두보였다면, 이제 협력의 무게중심은 핵심광물과 공급망, 에너지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이다.
◆핵심광물 넘어 AI까지…넓어지는 협력 지평
핵심광물과 에너지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칠레의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칠레는 국립인공지능센터(CENIA)가 유엔 중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ECLAC)와 함께 작성하는 중남미 인공지능지수(ILIA)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역내 AI 선도국이다.
칠레 국립인공지능센터(CENIA)가 주도하고 중남미 각국의 기관과 연구진이 참여해 개발한 대형언어모델(LLM) ‘라탐(Latam)-GPT’가 대표적이다. 생성형 AI가 영어권 등 특정 지역에서 생산된 데이터에 크게 의존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중남미의 언어와 문화, 사회적 맥락을 반영한 자체 언어모델을 개발했다. 외부에서 개발된 AI 모델을 단순히 스페인어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남미의 데이터와 지식을 학습 과정에 직접 반영한 것이다. 스페인어뿐 아니라 원주민 언어의 보존과 활용도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다.
황 전 공사참사관은 책에서 “한국의 소버린 AI가 자체 기술과 데이터, 컴퓨팅 역량을 바탕으로 AI에 대한 자율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라면, 칠레가 주도하는 Latam-GPT는 여기에 중남미의 언어와 문화, 역사적 맥락을 담으려는 지역 차원의 디지털 주권 실험”이라고 평가한다.
70년을 훌쩍 넘어선 한·칠레 관계는 이제 새로운 갈림길에 서 있다. 과거 두 나라를 연결한 고리가 정치·외교적 교류와 자유무역이었다면, 앞으로의 협력은 핵심광물과 공급망, 재생에너지, AI로 확장되고 있다. ‘왜 지금 칠레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두 나라가 함께 지나온 역사와 앞으로 만들어갈 관계 속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