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남정훈 기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하 AT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의 2026 쿠팡플레이 시리즈 2경기가 열린 9일 서울월드컵경기장. 킥오프 시간은 오후 8시였지만, 3~4시간 전부터 경기장 주변은 AT마드리드의 상징인 빨강-흰색 세로 스트라이프 유니폼과 맨시티의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팬들의 물결로 붐볐다. 지난 5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팀 K리그와 맨시티의 쿠팡플레이 시리즈 1경기에는 6만6000여석 규모의 상암벌을 절반도 채우지 못한 2만8036명의 관중만 들어찬 것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이날 공식 집계된 관중 수는 5만78명으로 나흘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 5일엔 킥오프 시간에 섭씨 33도를 웃도는 폭염과 80%를 훌쩍 넘기는 습도로 축구를 보기에 힘든 환경이었지만, 입추(7일)가 지나자 한반도를 덮친 폭염이 한풀 꺾였다. 이날 킥오프 시간의 기온은 29도로 떨어졌고, 부는 바람도 제법 가을 느낌이 났다.
이날 관중 물결이 나흘 전에 비해 눈에 띄게 달랐던 건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을 통해 명실상부 한국 축구 대표팀 에이스 바통을 손흥민(로스앤젤레스FC)으로부터 이어받은 ‘골든 보이’ 이강인의 AT마드리드 데뷔전이 이날 치러진 게 더 큰 이유였다. 경기 안양에서 온 회사원 김세현(41)씨는 “이강인의 이적 후 첫 데뷔전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파리 생제르맹(PSG) 때보다는 훨씬 많은 경기에 출전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응원을 보냈다. 다섯 살 난 아들의 AT마드리드 유니폼을 사기 위해 이날 한 시간여를 기다렸다는 김미혜(40)씨는 “요즘 시간 날 때마다 아들, 남편과 축구장 투어를 다니고 있다. 아들이 오늘 이강인의 모습을 훗날 기억했으면 좋겠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경기 전 몸을 풀던 이강인의 얼굴이 전광판에 비출 때마다 상암벌의 2/3 가량을 채운 빨강-흰색 스트라이프 유니폼 차림의 팬들은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이강인은 이날 경기를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에서 시작했다. 지난달 25일 PSG에서 AT마드리드로의 이적을 공식 발표했지만, 이강인은 병역법상의 이유로 국내에서 개인 훈련을 이어왔다. AT마드리드가 지난 6일 입국하면서 선수단에 합류한 이강인이 아직 동료들과 손발 맞출 시간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은 이강인을 벤치에서 시작하게 했다.
전반 내내 맨시티의 공세에 밀리던 AT마드리드는 전반 43분 짜릿한 선제골을 터뜨렸다. 2009년생의 호르헤 도밍게스가 코너킥 이후 혼전 상황에서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후반전 시작 때도 이강인은 벤치를 떠나지 않은 가운데, 전반을 0-1로 마친 맨시티가 후반 들어 힘을 냈다. 경기 내내 위협적인 돌파로 AT마드리드 수비진을 흔들던 앙투안 세메뇨와 오마르 마르무시 콤비가 2분 사이에 연달아 골을 합작했다. 후반 12분엔 사이드라인으로 나가던 공을 태클로 살려낸 세메뇨가 개인기로 상대 수비를 벗겨낸 뒤 엔드라인까지 파고들어 문전으로 컷백을 보냈고, 쇄도하던 마르무시가 이를 밀어 넣었다. 14분에도 왼쪽 측면을 파고든 세메뇨가 문전 앞의 마르무시에게 ‘꿀 패스’를 건넸고, 마르무시는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역전을 허용하자 시메오네감독은 후반 19분, 로드리고 멘도자를 빼고 AT마드리드의 새로운 ‘NO.7’ 이강인을 교체 투입시켰다. 그 순간 상암벌은 이날 가장 큰 함성이 울려퍼졌다. 이강인은 투입되자마자 전매특허인 왼발 감아차기 프리킥 슈팅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처진 스트라이커로서 ‘프리롤’을 부여받은 이강인은 전방과 양측면, 공격 2선을 넘나들며 공격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모습이었다. 오랜 기간 이강인을 지켜본 시메오네 감독은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나 오른쪽 측면에 배치되던 이강인의 공격적 재능을 살리기 더욱 살리기 위해 처진 스트라이커로서의 가능성을 시험했다. 이강인은 후반 30분엔 왼쪽 측면에서 아르나우 솔라가 보내온 컷백 패스를 받아 문전 앞에서 노마크 상태에서 왼발 슈팅을 시도했지만, 골대를 벗어났다. 경기 종료까지 그라운드를 누빈 이강인은 골이나 도움을 기록하지 못했고, 후반 89분 라얀 아이트 누리가 쐐기골을 터뜨린 맨시티가 3-1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 종료 후 이강인은 5만여 고국 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AT마드리드 입단식을 치렀다. 아틀레티코의 홈구장인 ‘리야드 에어 메트로폴리타노’에 입성하기 전 한국 팬들을 위해 가장 먼저 진행되는 이례적인 이벤트였다. 스페인 축구의 전설이자 AT마드리드의 이사를 맡고 있는 다비드 비야와 함께 팬들 앞에 선 이강인은 “안녕하세요”라고 입을 뗀 뒤 “더운 날씨에 찾아주셔서 감사드린다. 제 선수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좋은 구단에 오게 됐다. 저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국가대표팀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한다. 선수로서 항상 발전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