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숨은 보석’ 오스트리아 와인 매력탐구 ①역사>
4000년 넘는 포도 재배 역사 지녀
20세기초 세계 3대 와인 생산국 성장
1980년대 초 단맛 내려 부동액 성분 사용
이후 가장 까다롭고 엄격한 와인법 제정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행지를 꼽으라면 단연코 잘츠부르크(Salzburg)입니다. 모차르트의 고향이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으로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와 볼프강제(Wolfgangsee)로 들어서면 호수와 알프스가 어우러지는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또 빈(Vienna)에는 쇤브룬 궁전, 호프부르크 궁전, 벨베데레 궁전, 슈테판 대성당 등 역사적인 명소가 몰려있고 길거리마다 클래식 음악이 넘쳐납니다. 이런 여행 천국 오스트리아를 유명하게 만드는 또 하나가 와인입니다. 오스트리아는 국토 면적에 비해 와인 생산량이 그리 많지 않은 나라입니다. 하지만 국제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며 ‘작지만 강한 와인 산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켈트족의 무덤에서 나온 포도씨
다뉴브강을 따라 펼쳐진 오스트리아의 포도밭. 이 땅에서 사람들이 포도를 재배해온 역사는 무려 4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와인의 진짜 이야기는 오래된 전통이 아니라,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반전의 드라마에 있습니다. 1985년 터진 희대의 스캔들 하나가 이 나라 와인을 완전히 다른 와인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700년경, 켈트족 문화권이었던 사거스도르프(Zagersdorf) 지역의 무덤 항아리에서 포도씨가 발견됐습니다. 철기 시대부터 이미 이 땅에서 조직적인 포도 재배가 이뤄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본격적인 와인 산업이 시작된 건 로마 제국이 들어선 뒤였습니다. 이전에는 도미티아누스(Domitian) 황제가 알프스 이북에서의 포도 재배를 금지했었는데, 뒤이은 프로부스(Probus, 재위 276~282년) 황제가 이 금지령을 철회하면서 다뉴브강 유역의 포도밭이 비로소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오스트리아 와인 산지의 뼈대가 이때 세워진 셈입니다. 시간이 흘러 12~13세기, 프랑스 부르고뉴(Burgundy)에서 건너온 시토회(Cistercian) 수도사들이 선진 양조 기술을 이 땅에 전했습니다. 땅의 성격에 따라 포도밭을 나누는 테루아(Terroir) 개념을 적용해 좋은 밭을 가려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입니다.
◆‘부동액 와인’ 대참사
제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지면서 와인 산업은 완전히 다른 길로 흘러갑니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는 한동안 세계 3위 와인 생산국으로 성장했는데, 그 비결은 독일 등 주변국에 실어 보내는 저가 벌크 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양’을 향한 질주가 결국 나라 전체를 뒤흔든 대참사로 이어집니다.
1980년대 초 오스트리아 와인의 최대 시장이던 독일은 달콤하고 바디감 있는 저가 와인을 원했습니다. 그런데 흉작이 이어지면서 정작 만들어지는 와인은 그만큼 달지도, 묵직하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서 일부 부도덕한 중개업자들이 손을 댔습니다. 부동액의 일부 성분으로 알려진 화학 물질 ‘디에틸렌 글리콜(Diethylene Glycol)’을 몰래 넣어 와인의 당도와 바디감을 억지로 끌어올린 겁니다.
이 사기극이 세상에 드러난 계기는 뜻밖에도 세금 문제였습니다. 작은 트랙터 한 대만 갖고 있던 한 농부가 세금 공제를 신청하면서, 그 트랙터로는 도무지 쓸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부동액 구매 비용을 올린 것이 당국의 의심을 샀습니다. 비슷한 시기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실험실에서도 시판 중인 오스트리아산 와인에서 같은 물질이 검출되면서, 사태는 순식간에 국제적 파문으로 번졌습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오스트리아 와인의 신뢰도는 그야말로 바닥까지 떨어졌고, 전 세계가 일제히 수입을 금지하면서 수출 시장은 그대로 무너졌습니다.
◆위기 속에서 태어난 세계 최고의 와인법
여기서 오스트리아는 그냥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위기를 완전한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스캔들 직후인 1985년 8월 29일 오스트리아 정부는 유럽은 물론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까다롭고 엄격한 와인법을 전격 제정했습니다.
핵심은 ‘국가 공인 검사 번호(Prüfnummer)’ 제도입니다. 크발리테츠바인(Qualitätswein) 이상 등급의 와인은 예외 없이 국가 화학 분석실의 검사와 블라인드 시음 평가를 모두 통과해야 합니다. 이 관문을 넘은 와인에만 국가가 보증하는 공인 검사 번호가 부여되고, 이 번호가 없으면 원산지나 포도밭 이름 자체를 레이블에 쓸 수 없습니다.
위조와 불법 유통을 막기 위한 장치도 함께 마련됐는데, 검사를 통과한 병마다 고유 번호가 찍힌 국기 모양의 둥근 캡슐 띠, ‘반데롤(Banderole)’을 의무적으로 붙이게 했습니다. ‘적-백-적’ 오스트리아 국기 문양이 그려진 이 작은 띠 하나가 ‘국가의 검증을 거쳤다’는 일종의 신분증인 셈입니다.
생산 과정에 대한 통제도 촘촘해졌습니다. 헥타르(ha)당 수확 가능한 포도 무게와 최종 생산 가능한 와인 양(최대 포도 1만kg 또는 와인 7500리터)을 법으로 못 박았고, 이를 넘기면 등급이 강등됩니다. 수확한 포도의 무게와 실제 병입된 와인의 부피를 정밀하게 대조해 물이나 불법 첨가물이 섞여 들어갈 여지를 원천 차단했고, 고급 등급인 프레디카츠바인(Prädikatswein)에는 인위적으로 당분을 보태는 가당(Chaptalization) 자체를 전면 금지하거나 극도로 제한했습니다.
유통 구조도 손질해, 스캔들의 발단이 된 대형 와인 브로커와 기업형 블렌딩 유통업체에 대한 감사를 대폭 강화하는 한편, 포도를 직접 키운 생산자가 자기 와이너리에서 직접 병입해 파는 ‘에스테이트 보틀링’ 체계가 자리 잡을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같은 해 마케팅 조직인 오스트리아 와인 마케팅 이사회(Austrian Wine Marketing Board, AWMB)를 세우고 이미지 쇄신에도 나섰습니다. 벌크 와인 수출은 전면 중단했습니다. 대신 토착 품종인 그뤼너 펠트리너(Grüner Veltliner)와 츠바이겔트(Zweigelt)를 앞세운 프리미엄 화이트 와인 생산국으로 완전히 다시 태어났습니다.
품질 관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의 AOC, 이탈리아의 DOC처럼 지역 테루아를 보증하는 원산지 통제 명칭 ‘DAC(Districtus Austriae Controllatus)’의 법적 체계가 2001년 확립됩니다. 또 첫 지정 지역인 ‘바인피어텔(Weinviertel)’이 2002년 빈티지부터 이 이름을 달고 나오면서 지역별 품질 관리는 한층 더 세밀해졌습니다.
이처럼 피눈물 나는 노력 끝에 부동액 스캔들로 나락에 떨어졌던 오스트리아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와인법을 가진 프리미엄 와인 생산국으로 거듭났습니다. 오스트리아 와인의 역사는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한 나라가 얼마나 극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사례입니다. <‘알프스 숨은 보석’ 오스트리아 와인 매력탐구 ②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