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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손님 끊기면 보험금”…전통시장까지 파고든 ‘날씨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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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손보, 강수량·기온만으로 보험금 산정…전통시장 지수형 보험 첫선

폭염과 폭우, 한파가 반복되면서 날씨가 기업과 소상공인의 ‘보험사고’로 들어오고 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리거나 기온이 지나치게 오르면 전통시장 방문객이 줄고, 매출이 떨어진다.

 

KB손해보험 제공
KB손해보험 제공    

과거에는 이런 손실이 발생해도 날씨 때문에 매출이 얼마나 줄었는지를 점포가 직접 입증하기 어려웠다. 보험업계가 찾은 해법은 날씨 자체를 숫자로 바꾸는 것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KB손해보험은 전통시장 상인의 기상 악화에 따른 영업손실을 보장하는 ‘KB 전통시장 날씨피해 보상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강수량과 최고기온, 최저기온 등 세 가지 기상지수가 미리 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약정된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보험금 지급의 기준이 ‘실제 얼마를 손해 봤느냐’에서 ‘날씨가 어느 수준까지 악화됐느냐’로 바뀐 셈이다. KB손보 상품의 가장 큰 특징은 별도의 손해액 산정 절차를 크게 줄였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영업손실 보험은 사고 전후 매출이나 비용 자료를 확인하고 실제 손해액을 산출해야 한다. 반면 지수형 보험은 사전에 약속한 객관적인 지표가 지급 조건을 충족했는지가 핵심이다.

 

KB손보는 2년여 동안 기상청 기상관측 데이터와 전통시장 매출 빅데이터를 분석해 상품을 설계했다. 전통시장 상인회나 지방자치단체가 계약자가 되고 시장 내 전체 점포의 3분의 1 이상이 함께 가입하는 단체보험 형태다.

 

보험업계 최초로 전통시장 휴업손실에 기상지수를 적용했다는 점도 인정받았다.

 

손해보험협회는 지난해 11월 이 상품에 1년6개월의 배타적사용권을 부여했다. 협회가 배타적사용권의 최대 보호기간을 기존 1년에서 1년6개월로 늘린 뒤 처음 나온 최장기간 사례다. 배타적사용권은 2025년 11월12일부터 2027년 5월11일까지다. 올해에는 금융감독원의 ‘2025 상생·협력 금융신상품 우수사례’에도 선정됐다.

 

삼성화재는 오래전부터 기상이변에 따른 기업의 매출 감소나 비용 증가를 보장하는 날씨보험을 운영하고 있다. 2010년대 초반에는 현대해상도 일사량 부족에 따른 태양광발전소 매출 손실 등을 담보하는 날씨보험 계약을 판매한 사례가 있다.

 

KB손보가 처음인 것은 날씨보험이라는 상품군 자체가 아니라 전통시장 영업손실을 기상지수와 직접 연결한 지수형 상품이다.

 

지수형 보험은 이미 여행보험에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삼성화재는 지난해 2월 국내 출국 항공편을 대상으로 ‘항공기 지연·결항 보상 지수형 특약’을 출시했다. 비행기가 2시간 이상 지연되면 실제 식사비나 숙박비가 얼마 들었는지를 일일이 증명하는 대신 지연 시간을 기준으로 약정된 보험금을 지급하는 구조다.

 

올해 3월에는 보장 대상을 귀국편과 해외 경유편까지 확대했다.

 

2시간 이상 지연부터 정액 보험금이 지급되고 6시간 이상 지연되거나 결항될 경우 가입금액 한도에서 최대 20만원까지 보장한다. 삼성화재는 현재 출국편뿐 아니라 귀국·경유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연까지 지수형으로 보장하고 있다.

 

두 상품의 대상은 전통시장과 여행객으로 전혀 다르지만 원리는 같다.

 

보험사 직원이 현장에 나가 손해 규모를 하나씩 따지는 대신 기온이나 강수량, 항공기 지연시간과 같이 제3자가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를 보험금 지급 기준으로 삼는다. 보험업계에서는 이를 ‘파라메트릭 보험’이라고 부른다.

 

기후 위험을 보장하는 보험의 범위는 이미 농업 분야에서는 훨씬 넓다.

 

NH농협손해보험이 올해 판매 중인 농작물재해보험은 사과·배·단감·떫은감의 경우 태풍과 우박, 집중호우, 가을 동상해뿐 아니라 강한 햇볕으로 과실이 손상되는 일소피해도 보장한다.

 

올해는 개인별 손해율에 따른 할인·할증 구간을 기존 15개에서 35개로 세분화하고 가을 동상해 보장기간도 연장했다. 보험료의 50%는 정부, 약 35%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한다.

 

농작물재해보험은 실제 농작물 피해를 확인해 보상하는 전통적인 재해보험이라는 점에서 KB손보의 지수형 날씨보험과는 구조가 다르다.

 

앞으로는 지수형 기후보험이 건설현장으로도 확산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와 보험업계는 경남·경북·광주·전남·제주·충북 등 6개 지방자치단체와 소상공인·취약계층을 위한 ‘상생보험’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3분기부터 20억원 규모의 보험 가입이 시작될 예정이며 지역 특성에 따라 건설현장 기후보험 등이 포함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제주에서 추진하는 모델은 폭염경보로 작업이 중지될 경우 건설근로자의 소득 손실을 약정 보험금으로 보전하는 지수형 방식이다.

 

전통시장에서는 기온이, 공항에서는 지연시간이, 건설현장에서는 폭염경보가 보험금을 결정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지수형 보험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기존 보험만으로 보상하기 어려운 기후 피해가 있다.

 

태풍으로 건물이 무너지거나 침수되면 물리적인 손해가 눈에 보인다. 반면 폭염 때문에 시장 방문객이 줄거나, 날씨가 나빠 공사를 멈춰 일당을 받지 못한 손실은 피해 규모를 정확하게 증명하기가 어렵다.

 

지수형 보험은 이 사각지대를 노린다.

 

손해조사 과정이 짧아 보험금 지급 속도를 높일 수 있고 계약자 입장에서는 매출 감소가 날씨 때문이라는 사실을 별도로 입증해야 하는 부담도 줄어든다.

 

반대로 한계도 있다. 실제 손해액과 사전에 정한 지수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매출이 크게 줄었지만 기온이나 강수량이 지급 기준에 조금 미달하면 보험금을 받지 못할 수 있고, 실제 손실이 작아도 지수가 기준을 넘으면 약정 보험금이 지급되는 이른바 ‘베이시스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보험개발원과 보험업계가 정확한 기상·매출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기후변화로 과거에는 예외적인 것으로 여겼던 폭염과 집중호우가 반복되면서 날씨 자체가 하나의 경영 위험이 됐다”며 “실제 손해를 사후에 계산하는 보험에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이용해 신속하게 보상하는 보험으로 상품 영역이 점차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