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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응축한 표상… 삶의 근원에 산을 품다 [신리사의 사랑으로 물든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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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미술 거장 유영국의 ‘산’ 톺아보기

1935년 도쿄 유학시절 전위적인 실험
말년인 1990년대 순수한 빛으로 해체
서울시립미술관, 60여년 여정 아울러

상승이자 하강인 모순의 세계 보듬고
삼각형 하나에 생성·소멸 모두 깃들어
세계가 생성하고 변화하는 방식 표출

산은 모든 것이다.

산은 늘 한자리에 있지만 한순간도 같은 적이 없다. 가늠할 수 없이 긴 시간을 간직하면서도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난다.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김상태 제공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김상태 제공

산은 태양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동시에 서늘한 달빛을 머금는다. 거대한 덩어리이면서 한 줄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집합이다.

산에는 만물이 있다. 산은 모든 것이다.

◆세계의 원형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유영국(1916∼2002)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산을 주요 모티프로 삼았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2026.5.19∼10.25)는 제목이 암시하듯 ‘산’이 어떻게 그에게 하나의 조형언어이자 세계관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조명한다. 1935년 도쿄 유학 시절의 전위적 실험부터 말년의 심상 추상에 이르기까지, 60여년의 작업세계를 총체적으로 아우른다.

처음부터 ‘산’이라는 형상이 또렷하게 등장한 것은 아니다. 초기작에서는 선들의 병렬과 덩어리진 구조, 원시적 꿈틀거림과 폭발적인 에너지가 두드러진다. 천지개벽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화면은 훗날 그가 구축할 ‘산’이라는 세계의 우주적 전조처럼 느껴진다.

태초의 이 에너지는 점차 구체적인 형상을 얻게 된다. ‘산’의 윤곽이 화면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점차 기하학적으로 변모한다. 중첩되거나 반복적인 구성으로 나타나며 군상을 이루기도 한다. 산의 세상으로 꽉 찬 화면은 초기작 속 비정형적 에너지가 치밀한 조형적 질서를 만나 응축된 형태로 탈바꿈한 모습이다.

◆구도자의 그림

왜 산이 그토록 그의 마음을 울렸을까. 산과 물이 풍부한 경상북도 울진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 시절 산 너머로 뜨고 지는 해를 바라보며 세계의 원리를 체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산을 바라보며 익힌 감각이 곧바로 순탄한 화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도쿄 문화학원에서 추상미술을 깊이 탐구하며 조형적 실험을 거듭한 그는 귀국 후 해방과 한국전쟁이라는 격변을 지나며 붓을 내려놓아야 했다. 생계를 위해 어업과 양조장 운영에 매진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았고, 10여년의 공백 이후 다시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유영국에게 그림은 삶과 분리된 일이 아니었다. 그림으로부터 멀어진 시간조차 결국 산으로 돌아가는 과정의 일부가 되었다.

산을 향한 탐구에는 삶의 정수를 향해 오르는 ‘등산’, 그리고 실존적 근원으로 깊이 내려가는 ‘하산’이 동반되었다. 그는 산이라는 조형언어를 완전하게 정복하면 자연과 우주의 질서까지 담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 유영국에게 산은 하나의 소재라기보다 세계를 응축한 표상이었다. 산속에서 진리를 구하는 구도자처럼, 그는 산이라는 명제를 단일한 답으로 규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전시장에는 유영국이 직접 촬영한 흑백사진들도 함께 전시된다. 오래된 사찰과 석탑, 불상 등을 기록한 사진은 그가 전통적 양식으로부터 자연을 읽어내기 위해 치밀한 관찰을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산을 단순히 사생(寫生)하려 한 것이 아니라 산을 이루는 원리를 탐구함으로써 세계를 관찰했다. 그래서 단단하지만 유려한 곡선을 지닌 기와나 여린 나뭇가지에서도 산을 발견해 냈다.

유영국, ‘작품(Work)’, 1999, 캔버스에 유채, 105×105㎝.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 ‘작품(Work)’, 1999, 캔버스에 유채, 105×105㎝. ⓒ유영국미술문화재단

◆모순을 끌어안는 산

일출과 석양을 모두 품은 산은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바람처럼 매 순간 변화한다. 유영국의 회화에서 산은 이러한 역동의 리듬으로 제시된다. 산은 하강하는 선이자 상승하는 선이다. 하늘을 향해 솟구치면서도 자기 안의 것들을 감싸안는다. 인간의 시간 밖에 존재하는 아득한 자연이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숨을 내뿜는다. 그래서 유영국의 산은 위압적이거나 지배적이지 않다. 산의 능선은 여전히 뾰족하지만 결코 공격적이지 않다.

산은 오랜 세월 우주의 작용과 지각의 운동, 생명의 순환을 거쳐 형성된 결정체다. 인간이 어떠한 목적을 위해 애써 만든 것이 아니라 시간이 스스로 쌓아 올린 존재다. 태양 아래서는 가장 또렷한 형상이 되고, 달빛 아래서는 가장 깊은 그림자가 된다. 강렬한 원색과 보색이 조화를 이루는 화면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산이라는 하나의 세계 안에서 공존하는 상태를 떠올린다.

유영국의 산에는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연상시키는 형상이 담겨 있기도 하다. 산은 거대한 총체인 동시에 미시적 존재들의 집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산 안에는 모든 것이 있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묵직한 질량의 덩어리인 동시에 바람을 따라 떠도는 잎의 움직임이기도 하다.

말년에 이르러 유영국의 산은 순수한 ‘빛’으로 해체된다. 1990년대 작품 속 산은 마치 프리즘을 통과한 빛의 결정처럼 다가온다. 모든 빛 속의 산. 산은 찰나에 존재한다.

픽셀처럼 분절된 면들이나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짜인 삼각, 사각의 구조는 산이 단순한 지형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열린 ‘관계의 장’임을 보여준다. 유영국의 회화에서 꼭짓점은 언제든 새로운 선이 시작될 수 있는 출발점이자 또 다른 선과 만나는 교차점이다. 닫혀 있는 동시에 열려 있다. 그래서 유영국의 산은 고립된 산이 아니라 항상 다른 산과 만나고, 하늘과, 빛과, 색과 끊임없이 대화한다.

유영국, ‘산-Blue’, 1994, 캔버스에 유채, 260×200㎝.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 ‘산-Blue’, 1994, 캔버스에 유채, 260×200㎝.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산으로 돌아오는 길

기하학적 형태의 산을 보며 누군가는 유영국이 ‘산을 단순화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은 그 반대일지 모른다. 그는 산이라는 형상 안에 복잡한 세계를 압축해 넣었다. 그리고 그 형상을 통해 다시 세계를 펼쳐 보였다. 삼각형 하나에 지질의 시간과 계절, 빛과 생명, 상승과 하강, 생성과 소멸이 모두 깃들어 있다. 따라서 유영국의 산은 세계가 생성되고 변화하고 관계 맺는 방식의 원형이다.

유영국에게 삶을 살아가는 일은 곧 산을 탐구하는 일이었고, 산을 탐구하는 일은 다시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외부의 자연물이었던 산은 그렇게 ‘내 안의 산’이 되었다. 그래서 삶 속에서 길을 잃어도, 굽이굽이 돌아 내면에 언제나 굳건하게 자리한 산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의 대상을 치열하게 파고들며 그 안에서 세계의 원리를 찾았던 예술가. 유영국의 산 앞에서 우리도 각자의 가슴속에서 숨 쉬는 저마다의 산을 발견한다.

신리사 미술사·학고재 기획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