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9월 평북 선천에서 태어난 소설가 계용묵이 1961년 8월 9일 장암으로 별세했다. 아무개 일간지는 그의 부음을 보도하면서 1925년 단편소설 ‘상환(相換)’으로 데뷔한 뒤 이른바 경향파 작품을 수 편 발표하였다가 1935년 ‘백치 아다다’ 발표를 계기로 순예술파로 전향했음을 덧붙였다. 이러한 소개는 그가 데뷔 초기에는 리얼리즘 소설을 통해 약자의 고통과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다가 ‘백치 아다다’를 통해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하며 인간의 순수성을 옹호하였음을 가리킨다.
또 일각에서는 그의 초기 소설조차 현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고 사회변혁 의지를 담지 못하였다고 언급하면서 경향파 소설의 범주에 넣기를 주저한다. 심지어 특정 집단을 단순화하여 미화하는 천사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이런 비판이 본격화되지 않은 시절이어서 그러한지 필자는 그의 ‘백치 아다다’를 중학생 필독 소설로 여기고 이 소설을 접하였다. 이러한 독서 성향은 훗날 김동인의 ‘감자’,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채만식의 ‘탁류’ 열독으로 이어졌다. 여성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안쓰러움이었는지 자본주의 물질문명에 대한 반감이었는지 그 이유는 잘 떠오르지 않지만, 물질적 욕망과 가부장주의의 절묘한 결합으로 여성의 운명이 어떻게 곤두박질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필자의 이러한 관심은 1980년 신군부의 집권을 계기로 최인훈과 이청준의 지식인 소설이나 황석영의 리얼리즘 소설로 경사하면서 계용묵의 작품 같은 인생파 소설에서 멀어져 갔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선가 인생파 소설이 현실과 결코 떨어져 있지 않음을 느끼곤 하였다. 계용묵의 경우만 해도 그러하다. 그는 경향파에서 인생파로 전향했다고 하지만 그의 소설에는 늘 장애인, 소작인, 실직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따뜻한 연민이 깔려 있다.
또 그는 지식인 특유의 거창한 담론을 제시하기보다는 자신이 겪은 현실을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가 월남한 직후인 1946년에 발표한 ‘별을 헨다’는 어떠한가. 주인공은 만주에서 살다가 해방이 되자 아버지의 유골을 파서 어머니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1년이 넘도록 방 한 칸 구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른다. 그나마 두 사람의 보금자리였던 초막(草幕)마저 비워주어야 할 형편이다. 비록 그들 모자에게 집을 구할 기회가 주어졌으나 자신과 같은 처지의 서민을 내쫓는다고 여겨 이런 기회를 고사하고 고향인 이북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모자의 이런 시도는 서울역 앞에 늘어선 월남민 대열을 바라보며 절망으로 바뀐다.
필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해방 직후 귀환민과 월남민들의 삶을 이처럼 그린 소설이 황순원의 ‘두꺼비’를 빼고는 없다고 감히 말한다. 그는 분단의 고통과 이데올로기 갈등을 강조하기보다는 서민들이 겪었던 주택난을 통해 경제난과 양심적 지식인의 무력감을 드러내었다. 그의 소설 ‘짐’, ‘이불’, ‘수업료’, ‘설수집’ 등에서도 우리 조부모, 부모 세대의 생활난을 느낀다.
요즘에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나 정치적 문제 대신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과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른바 생활소설이 그리워지는 것은 골방 속에서 공상의 나래를 펼치거나 신변잡기로 흐르는 관념 소설이 난무하는 세태에 대한 염증 때문일까? 폭염 속에서도 이런 생활소설을 읽고 싶다.
김태웅 서울대 교수·역사교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