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노역 열외 老죄수… 수형자 절반 넘게 작업 못해 [탐사기획-노인과 교도소]

<2회> 요양원이 된 교도소

교정 없는 교정시설

징역형, 노동이 전제지만
질병·고령 수용자는 배제
일감마저 부족해
‘노동 없는 노역’이 된 현실

2동 거실 복도에는 창문마다 난(蘭)이 두세 개씩 놓여 있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난을 환하게 비췄다.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화분은 신발장 위에 올려뒀다. 노인들이 식물 돌보는 것을 좋아해 실내에서 키우기 쉬운 난을 골랐다고 했다. 창문 밑에는 안전바가 설치됐고, 복도 한가운데 탁자 위에는 혈압 측정기가 놓였다. 그 옆에는 휠체어가 접힌 채로 세워져 있었다.

6월26일 취재팀이 찾은 서울남부교도소의 작업장 모습. 유희태 기자
6월26일 취재팀이 찾은 서울남부교도소의 작업장 모습. 유희태 기자

6월26일, 취재팀이 찾은 이곳은 복지시설이 아니라 서울남부교도소 작업장이다. 창살과 옥색 수의에 적힌 수인번호가 교도소라는 사실을 겨우 짐작하게 했다. 12개 방에서 36명의 수형자(유죄 판결이 확정된 기결수)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쇼핑백을 만든다. 한 달 내내 부지런히 작업하면 적게는 2000장, 많게는 3000장까지 접을 수 있다. 장당 10원. 손에 쥐는 돈은 한 달 2만∼3만원이다. 

 

작업장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 같은 교도소에서 작업장에 배치되지 않은 미지정 사동 수용자는 400∼500명에 이른다. 전체 수용자의 30% 이상이 작업하지 않는 셈이다. 작업장은 경쟁을 거쳐 들어가는 공간이 됐다. 생활 태도가 모범적이고 자활 의지가 있는 수형자가 우선 배치된다.

 

교도소 안에서의 작업은 특혜가 아닌 의무다. 신체 자유를 빼앗고 교도소에 가두는 자유형은 징역과 금고로 나뉜다. 징역은 ‘노역(奴役)’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노동을 해야 된다는 점에서 갇혀 있기만 하는 금고와는 다르다. 하지만 실제 교정 현장에서는 노역을 해야 하는 이들이 노역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2026 교정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수형자 4만1916명 가운데 작업이 불가능한 인원은 2만369명(48.6%)이었다. 작업이 가능한데도 일하지 못한 인원 1401명(3.3%)까지 합하면 절반이 넘는다. 10년 전보다 수형자는 7500여명 늘었지만, 실제 작업에 나간 사람은 오히려 2000명 가까이 줄었다. 작업하지 않는 수형자가 점점 늘고 있다는 의미다.

 

가장 먼저 작업에서 밀려나는 사람은 노인이다. 취재팀이 만난 60대 이상 재소·출소자 6명 가운데 5명이 수감 중 작업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성수 법무부 교정본부 사무관은 “고령 수형자는 움직임이 둔하고 사고 위험이 있어 교도관 부담이 크다”며 “대부분 봉투 접기 같은 단순 작업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서울남부교도소 수용팀 인재현 계장도 “80세 가까운 노인은 작업을 하다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젊은 노인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질병도 작업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병사동에 수용된 적이 있는 이모(61)씨는 “작업을 나가는 사람들은 사지 멀쩡하고 약 안 먹는 분들”이라며 자신에게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교정본부는 작업이 불가능한 사유를 ‘건강 등의 이유’로만 집계할 뿐이다.

 

일할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킬 일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성묵 경북 경주교도소 보안행정주임은 “원래는 색연필 끼우기, 샤프심 넣기 같은 작업을 했는데 지금은 물량이 없다”고 말했다. 쇼핑백 만들기도 거래처와 계약 기간이 끝나며 중단됐다. 경기 안양교도소 역시 작업을 기다리는 수형자가 적지 않다고 했다. 법은 작업을 의무로 규정하지만 현장에는 일감 자체가 부족하다.

 

이 같은 현실은 벌금을 대신해 노역장에 유치된 노역수형자에게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노역수형자는 말 그대로 노동으로 벌금을 갚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난해 노역수형자 1310명 가운데 실제 작업에 나간 사람은 234명(17.9%)뿐이었다. 취업이 불가능한 사람이 1007명(76.9%), 작업이 가능한데도 일하지 못한 사람이 69명(5.2%)이었다. 10명 가운데 8명이 노역을 하지 않는다.

 

취재팀이 만난 노역 출소자들도 대부분 비슷했다. 술에 취해 음식값 2만원을 내지 못해 6일간 노역을 산 60대 남성, 음주운전 벌금을 내지 못해 넉 달을 복역한 김모(67)씨, 벌금 10만원 가운데 절반을 경찰서 유치로 대신한 또 다른 김모(67)씨까지 대부분 고령이거나 몸이 성치 않았다. 이들은 “노역을 하고 싶어도 시켜주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도 지난해 12월 발표한 ‘노역장 유치 제도의 운영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연구진은 교정직원들과의 심층 면접을 통해 노역수형자는 형기가 짧아 작업 배정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고령과 질병으로 작업 담당자들이 배치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한 교정직원은 “나이가 많거나 건강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담당자 입장에서는 (작업자로) 선정하기가 까다롭다”고 말했다. 다른 교정직원은 “우리 기관의 경우 최소 3∼4개월은 잔여 형기가 있어야 작업 지정을 해서 노역을 시킬 수 있다”며 “노역수는 형기가 짧은 경우가 많아 담당자들이 작업 지정을 잘 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노역 기간은 징역에 비해 대체로 짧다. 지난해 노역수형자 가운데 30일 미만으로 유치됐던 사람이 29.3%로 가장 많았다. 반년 넘게 머문 사람은 다섯 중 한 명꼴에 그쳤다. 최소 3∼4개월의 잔여 형기가 있어야 작업을 배정하는 교도소 현실에서 대다수 노역수형자는 그 문턱을 넘기 전에 출소한다.

 

보고서에는 노역수형자가 노역을 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비판도 담겼다. “이름은 노역이지만 일을 하지 않아 금고형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의견과 “며칠만 앉아 있다 가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처벌의 강도나 위하력(형벌이 실제로 가해질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불법 행위를 하지 않도록 억제하는 힘) 측면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지적도 있었다. 

 

결국 노역수형자의 하루는 노동 대신 시간으로 채워진다. 지난해 노역수형자의 82.9%는 하루를 보내면 벌금 10만원 이상 100만원 미만이 차감됐다. 벌금은 줄어드는데 노동은 없다.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시간을 보낸 대가로 벌금이 깎이는 구조다. 

 

법조계에서는 징역형과 노역장 유치 제도가 실제 어떻게 집행되고 있는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형법 전문가인 신민영 변호사(법무법인 호암)는 “사람들은 형량에만 관심을 갖지 실제 징역이 어떻게 집행되는지는 잘 보지 않는다”며 치료감호소 신설과 교정 인력 확충 등 형벌 집행 전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병원에 가야 할 인원이 교정시설로 오는 경우가 많고, 일거리가 늘어도 이들을 감독할 수 있는 계호·의료 인력도 현저히 부족하다는 의미다.

 

교도작업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교정본부도 교도작업을 ‘교정교화 활동의 일환’으로 규정한다.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성실성을 인정받아 더 나은 작업장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노동 습관과 사회 적응력을 기른다는 취지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교정은 작업에서 시작된다는 확신이 있다”며 “돈을 더 벌기 위해 노력하고 규율을 배우는 과정 자체가 교정”이라고 말했다.

 

작업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구금뿐이다. 벌금을 미납해 35일을 복역한 이모(64)씨는 오전 6시20분 기상, 오전 9시30분 운동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운동은 30분 남짓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 비 오는 날에는 그마저 없었다. 그는 이때를 “감금”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탐사보도2팀=백준무·이예림·최우석 기자

사진:유희태 기자, 편집:김효순 기자, 미술:손성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