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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같은 산미부터 화산 미네랄까지...오스트리아 테루아의 모든 것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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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숨은 보석’ 오스트리아 와인 매력탐구 ②기후·토양>

상파뉴·부르고뉴 본과 같은 위도

대륙성 기후 등 다양한 4가지 기후

와인 생산지는 작지만 토양은 다양

지역마다 개성 뚜렷한 와인 생산

 

바하우 니히더뢰스타라이히. 오스트리아 와인 마케팅 보드
바하우 니히더뢰스타라이히. 오스트리아 와인 마케팅 보드

오스트리아 와인의 개성을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지리적 위치입니다. 오스트리아는 프랑스 부르고뉴와 비슷한 위도에 있지만 유럽 대륙 한복판에 훨씬 가깝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서쪽의 온화하고 습한 대서양 기후와 일교차가 훨씬 큰 동쪽의 대륙성 판노니아(Pannonian) 기후가 만나는 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여름과 가을에는 낮 동안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다가 밤이 되면 북쪽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 극적인 일교차가 신선함, 볼륨감, 섬세한 캐릭터를 동시에 지닌 오스트리아 와인의 비결로 꼽힙니다. 낮 동안 축적한 과실 풍미와 바디감을, 서늘한 밤이 산도와 아로마의 형태로 다시 붙잡아두는 셈입니다.

 

랭스, 본과 같은 위도에 있는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와인마케팅보드
랭스, 본과 같은 위도에 있는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와인마케팅보드

◆랭스·본과 나란히…위도가 증명하는 기후의 힘

 

오스트리아 와인 지도를 펼쳐놓고 위도선을 그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프랑스 샹파뉴의 중심 도시 랭스가 북위 48도, 부르고뉴의 심장 본이 북위 47도에 자리하는데, 이 두 선을 그대로 동쪽으로 연장하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정확히 관통합니다. 세계 최고의 와인의 대명사로 꼽히는 두 곳과 오스트리아가 지구본 위에서 거의 같은 위도대에 나란히 놓여 있다는 뜻입니다. 위도가 같다고 기후까지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스트리아가 왜 신선한 산미와 섬세한 아로마를 지닌 화이트 와인의 산지로 명성을 쌓아왔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실제로 오스트리아는 대서양의 온화한 기후와 대륙 깊숙한 곳의 서늘한 밤공기가 함께 작용하는 지리적 조건 덕분에 낮 동안 무르익은 과실 풍미를 밤 사이 신선한 산도로 다시 붙잡아두며 뛰어난 밸런스를 완성해왔습니다.

 

오스트리아 4가지 기후. 오스트리아 와인 마케팅 보드
오스트리아 4가지 기후. 오스트리아 와인 마케팅 보드

◆4가지 기후 영향권

 

▶대륙성 판노니아 기후/지도 1

 

‘판노니아(Pannonia)’는 지금의 헝가리 대부분과 오스트리아 동부에 걸쳐 있던 고대 로마 속주의 이름입니다. 카르파티아산맥 등에 둘러싸인 이 거대한 저지대 평원은 바다의 영향을 거의 받지 못해 여름은 덥고 건조하며 겨울은 추운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띠는데, 이 기후가 지금도 ‘판노니아 기후’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헝가리 국경과 맞닿은 동부, 부르겐란트(Burgenland)를 중심으로 이 영향을 받습니다. 이곳은 연중 300일 넘게 해가 뜨는 날씨에, 여름철 뜨거운 날이 연간 60일가량 이어지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따뜻한 산지이기도 합니다. 이 산지의 개성을 완성하는 결정적 요소가 노이지들러 호수(Neusiedlersee)입니다. 평균 수심이 1m 남짓, 가장 깊은 곳도 1.5~1.8m에 불과할 만큼 얕은 이 호수는 여름에는 열기를 흡수했다가 가을이 되면 서서히 내뿜는 거대한 열 저장고 역할을 합니다. 특히 가을철 호숫가에 자욱하게 내려앉는 물안개는 포도 표면에 귀부균(보트리티스 시네레아)이 피어나기 딱 좋은 습한 환경을 만들어, 세계적 수준의 귀부 스위트 와인이 태어나는 배경이 됩니다. 반면 호수에서 살짝 떨어진 완만한 구릉지에서는 이 온기가 오히려 포도를 힘 있게 여물게 해, 블라우프랜키쉬·츠바이겔트 같은 진하고 파워풀한 레드 와인의 산지로도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와인 산지. 오스트리아와인마케팅보드
오스트리아 와인 산지. 오스트리아와인마케팅보드

▶온화한 대서양 기후/지도2

 

서쪽에서 불어오는 이 온화한 기후는 니더외스터라이히(Niederösterreich) 전역에 신선한 산도를 불어넣는 배경입니다. 특히 니더외스터라이히에서도 오스트리아 최대 산지인 바인피어텔(Weinviertel)에서 그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이 지역은 연 강수량이 500㎜ 남짓으로 적고, 서쪽 발트피어텔(Waldviertel) 숲에서 내려오는 서늘한 밤공기와 동쪽 판노니아 평원의 따뜻한 낮 공기가 부딪히며 일교차를 15~20도까지 벌려놓습니다. 이 큰 일교차가 그뤼너 펠트리너 특유의 ‘페퍼를(Pfefferl)’이라 불리는 알싸한 후추 향과 산뜻한 산미를 지켜주는 핵심 요인입니다. 바인피어텔은 이런 기후·토양 조건 덕분에 전 세계 그뤼너 펠트리너 생산량의 거의 절반을 책임지는 산지로 성장했고, 2002년 오스트리아 최초의 DAC 지정 산지라는 타이틀까지 얻었습니다.

 

캄프탈. 오스트리아와인마케팅보드
캄프탈. 오스트리아와인마케팅보드

▶북쪽에서 내려오는 서늘한 공기/지도3

 

빈 주변, 도나우강 유역에 영향을 미치며 리슬링과 그뤼너 펠트리너 같은 섬세하고 구조감 있는 화이트 와인을 빚어냅니다. 이 서늘한 바람은 현지에서 ‘노르트슈타우(Nordstau)’라 불리는데, 북쪽에서 정체·누적된다는 뜻 그대로 발트피어텔(Waldviertel) 고원의 찬 공기가 도나우강 유역으로 흘러 내려오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발트피어텔은 지질학적으로 보헤미안 산악지대의 남쪽 자락에 해당하는 고원 지대입니다. 바인피어텔의 스파이시한 후추 향 역시 이 노르트슈타우와 대서양 기후가 겹쳐 만들어지는 특징입니다.

 

캄프탈(Kamptal)의 명물 산지 하일리겐슈타인(Heiligenstein)도 이 원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힙니다. 남향의 가파른 경사지가 낮 동안 동쪽 판노니아 분지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을 그대로 받아 뜨겁게 달궈지지만, 해가 지면 노르트슈타우가 기온을 급격히 떨어뜨립니다. 이 하루 안의 극단적인 온도차가 하일리겐슈타인 리슬링 특유의 응축된 힘과 팽팽한 산미를 동시에 만들어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슈타이어마르크.  오스트리아와인마케팅보드
슈타이어마르크.  오스트리아와인마케팅보드

▶일리리아 지중해성 기후/지도4

 

일리리아(Illyrian) 기후는 아드리아해 쪽에서 발칸반도를 타고 올라오는 온화하고 습한 지중해성 기후를 뜻합니다. 슬로베니아와 국경을 맞댄 남쪽 산지 슈타이어마르크(Steiermark)에 영향을 줍니다. 정확히는 지중해성 기후 하나가 아니라, 아드리아해에서 올라오는 습기 많은 남유럽 기후와 판노니아 평원의 따뜻하고 건조한 대륙성 기후, 그리고 알프스에서 내려오는 서늘한 밤공기까지 세 갈래가 동시에 맞물리는 독특한 기후대입니다. 낮에는 따뜻하고 습해 포도가 충분히 익을 시간을 벌지만, 언덕 지형 특유의 냉기 덕분에 밤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산도가 그대로 보존됩니다.

 

강수량도 니더외스터라이히나 부르겐란트의 거의 두 배에 달할 만큼 많은 편인데, 이 습윤한 기후가 오히려 신선하고 아로마가 풍부한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배경이 됩니다. 특히 슈타이어마르크에서 남쪽 쥐트슈타이어마르크(Südsteiermark)는 포도밭의 4분의 3 이상이 경사도 26%를 넘는 급경사지라, 기계 작업이 불가능해 전량 손으로 수확해야 합니다. 이런 척박하고 배수 좋은 조개껍질 석회암(셸-라임스톤) 토양과 극단적인 일교차가 맞물려 이 지역 소비뇽 블랑에 세계적 수준의 아로마 응집력과 팽팽한 산미를 부여합니다. 소비뇽 블랑 외에도 이곳에서는 ‘모리용’이라 부르는 샤르도네, 알싸한 무슈카텔러, 리슬링 등이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드러냅니다.

 

오스트리아 와인산지 토양. 오스트리아와인마케팅보드
오스트리아 와인산지 토양. 오스트리아와인마케팅보드

◆토양이 만드는 오스트리아 와인의 개성

 

오스트리아의 포도밭은 전체 약 4만4210ha 규모로, 크게 네 가지 토양이 지역별 개성을 결정짓습니다. 작은 와인 생산국임에도 다양한 토양이 얽혀 있는 덕분에, 오스트리아는 지역마다 뚜렷하게 다른 개성의 와인을 만들어내면서도, 잘 익은 풍미와 신선함이 동시에 살아있는 특유의 균형감을 공통분모로 지니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와인 산지 토양. 오스트리아와인마케팅보드
오스트리아 와인 산지 토양. 오스트리아와인마케팅보드

▶황토(Loess)

 

빙하기 무렵 바람에 날려 쌓인 미세한 점토질 흙이 두꺼운 층을 이룬 토양으로, 니더외스터라이히 전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합니다. 수분 보유력이 뛰어나 그뤼너 펠트리너와 특히 궁합이 좋으며, 이 토양에서 자란 와인은 둥근 질감과 풍부한 바디감, 특유의 스파이시한 풍미를 보여줍니다. 카르눈툼의 중심지 괴틀레스브룬 일대도 이런 황토·점토질 토양의 대표 사례로, 크리미한 질감의 풍성한 레드 와인을 만들어냅니다.

 

▶원시암·결정암(Primary Rock)

 

편마암·화강암 등으로 이뤄진 단단한 고대 암반 토양으로, 바하우와 캄프탈의 가파른 계단식 포도밭에서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척박하고 배수가 좋아 뿌리가 깊이 뻗는데, 리슬링 품종과 특히 잘 어울려 강렬한 미네랄리티와 칼날 같은 산미, 뛰어난 숙성 잠재력을 만들어냅니다.

 

오스트리아 와인 산지 토양. 오스트리아와인마케팅보드
오스트리아 와인 산지 토양. 오스트리아와인마케팅보드
석회암·편암 포도밭.
석회암·편암 포도밭. 

▶석회질(Calcareous)

 

고대 해양 퇴적물에서 유래한 석회질 토양으로, 부르겐란트 북부와 쥐트슈타이어마르크에 많습니다. 카르눈툼의 슈피처베르크는 이런 석회질 토양이 만드는 개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으로 꼽힙니다. 로마 제국 시대부터 포도가 자라던 이 언덕은 오랫동안 잊혔다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 얕은 석회질 토양에서 자란 블라우프랜키쉬가 파워보다는 섬세함과 미네랄리티, 긴 숙성 잠재력으로 오스트리아 최고 수준의 블라우프랜키쉬 산지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테르멘레기온 일대에서도 이런 석회질·자갈 토양이 발견되는데, 토양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성질 덕분에 우아한 구조감과 단단한 타닌을 지닌 레드 와인, 그리고 피노 누아 같은 부르고뉴 품종에 좋은 조건을 제공합니다.

 

바하우의 다양한 토양.
바하우의 다양한 토양. 

▶화산 물질이 섞인 토양(Volcanic-influenced)

 

캄프탈과 볼칸란트 슈타이어마르크(이름 자체가 '화산의 땅'이라는 뜻)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토양입니다. 캄프탈의 명물 단일 포도밭 하일리겐슈타인이 대표적인 사례로, 약 2억7000만 년 전 페름기 사막에서 쌓인 사암층에 화산 물질과 당시 식생의 탄화 흔적까지 섞여 든 희귀한 지질입니다. 이런 척박하고 배수 좋은 토양은 뿌리를 깊이 뻗게 만들어, 리슬링에 독특한 스파이시함과 미네랄리티, 뛰어난 숙성력을 부여합니다. 볼칸란트 슈타이어마르크는 이름 그대로 사화산 지대에 흩어진 포도밭에서 벨쉬리슬링·바이스부르군더·소비뇽 블랑이 뚜렷한 화산토 개성을 드러냅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부르고뉴와인 마스터 프로그램,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1&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2018년부터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xelles) 심사위원,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펙사 코리아 한국소믈리에대회 심사위원도 역임했습니다. 독일 ProWein, 이탈리아 Vinitaly 등 다양한 와인 엑스포를 취재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아르메니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