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본명 안하영·33)의 KBS 예능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 발언을 계기로 100여년 전 만들어진 ‘대정친목회’의 성격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앞서 하영은 지난 7일 방송에서 “증조할아버지는 양의학을 일본에서 배워오시고 한국에서 개원하신 첫 의사셨다고 들었다”며 “할아버지, 아빠, 언니도 의사”라고 말해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증조부의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방송 이후 하영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에 의사로 활동한 안상호로 알려지면서 그의 행적을 두고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제기됐다.
‘사실 무근’이라며 부인했던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11일 공식입장에서 “증조부 안상호 선생이 1916년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했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이어 “역사적 사실관계를 정확히 확인하지 못한 채 발언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운영하는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안상호(1872~1927)는 1902년 일본 동경자혜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해 한국인으로는 처음 일본 의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한국의사학회지 제24권 2호에는 안상호가 전의 촉탁으로 고종의 건강을 돌봤다는 내용, 조선왕조실록에는 촉탁의로 순종의 건강을 돌봤다는 기록이 나온다.
안상호가 평의원으로 참여한 대정친목회는 당시 경성의 경제인과 관료, 언론인, 교육자, 법조인, 의료인 등 각계 인사로 구성된 단체였다. 대정친목회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역사문제연구소 장신 상임연구위원이 2007년 발표한 논문 ‘대정친목회와 내선융화운동’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논문에 따르면 대정친목회는 ‘대정실업친목회’라는 이름으로 알려지면서 경제단체나 경제인들의 친목단체로 인식됐지만, 1916년 창립 때부터 1940년 무렵까지 정식 명칭은 대정친목회였다. 경제인뿐 아니라 관료, 귀족, 종교인, 교육자, 언론인, 법조인, 의료인 등 경성의 각계 유지들이 참여했다. 회원 가운데는 일본인 사회의 관리와 언론사 고위 간부, 국책은행 대표 등도 있었다.
일본인과 조선인의 융화를 핵심 목적으로 내세운 이 단체는 사교기관을 표방했다. 조선인의 잘못된 풍습을 바로잡고 조선총독부의 시책에 협조하면서 일본인과 조선인 상류 인사들이 교류해 서로의 오해를 풀어야 진정한 융화를 이룰 수 있다는 취지였다. 초기에는 일본인 고위관리와의 연회, 풍속개량 등의 활동이 주요 사업이었다.
대정친목회 활동은 식민통치 협력으로 이어졌다. 일본의 국가기념일 행사에 적극 참여했고 조선총독부 관리들의 환영·환송연을 열었다고 논문은 설명했다.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1927년 ‘치안상황’에서 총독정치를 인정하고 일본과 조선의 공존공영을 내세우며 양측의 융화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 설명해 평가도 명확해 보였다.
다만,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이었다는 사실만으로 안상호를 친일파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논문은 대정친목회가 일제의 식민통치와 주요 정책에 협력한 친일단체였다는 점을 분명하게 설명하면서도, 안상호가 평의원으로 참여했다는 사실과 그의 직업·활동을 기록할 뿐 그 자체로 안상호를 친일파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도 안상호의 이름은 등재되어 있지 않다.
하영의 소속사는 “하영은 질문에 응하는 과정에서, 집안의 4대 의료가업 이력을 언급한 바 있다”며 “이로 인해 의도치 않게 논란이 빚어진 데 대해 배우 본인은 마음이 매우 무거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역사적 사실과 한 인물의 이력을 대중에 전하는 일에 얼마나 신중한 검증이 필요한지 이번 일을 통해 깊이 깨달았다”며 “하영 역시 이번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깊이 새기고, 앞으로 더욱 신중하고 겸허한 자세로 임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영의 부친은 한 매체 인터뷰에서 “많은 분들께 불편함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가족 구성원 모두 이번 논란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