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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의어느날] 부서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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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점심 약속이 있던 날이었다. 함께 나온 조카에게 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근황을 물었더니 오늘은 원래 드럼 학원에 가는 날이었는데요, 하며 말끝을 늘였다. “왜 과거형이야? 학원 안 갔어?” “못 갔어요.” 조카는 반쯤 재미있어하는 얼굴로, 하지만 절반쯤은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선생님이 학원 출입구를 찍어 보내준 것이라 했다.

사진은 뭐랄까, 이걸 문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싶게 변해 버린 무엇이었다. 과거엔 문이었겠지만 지금은 그냥 뻥 뚫린 구멍에 가까웠다. 학원은 전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밖에서 내부가 환히 들여다보이는 형태였다. 검은색 철골로 구획이 나누어져 출입구에는 투명한 유리 끝에 단조로운 생김새의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쩐 일인지 뼈대만 간신히 남았다. 유리에 금이 가거나 일부만 동그랗게 깨진 것이 아니라 일거에 주저앉은 듯 유리 파편이 작은 언덕을 이루며 바닥에 쌓여 있었다. 대체로 둥그스름하고 두꺼운 조각들로 얼핏 보면 푸른 조약돌 무더기로 보일 정도였다.

“누가 그런 거래? 경찰에 신고는 했대?” 나는 머릿속으로 취객을 떠올리며 물었다. 드럼 학원이 있는 곳은 ㅁ자 형태의 상가 2층으로, 학원 바로 옆에 외부로 나갈 수 있는 계단이 놓여 있었다. 누가 그랬든 범인을 잡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출근해 보니 이렇게 되어 있었대요. 유리 새로 끼울 때까지 사흘 정도 쉰다던데요.” 조카는 연이어 두꺼운 비닐로 출입문을 막은 뒤 황색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여 고정해 둔 사진을 보여주었다. 학원에는 방음시설이 갖춰진 레슨실과 두 개의 일반연습실, 학원 홀 중앙에까지 총 네 대의 드럼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 걸 고작 비닐문 하나로 괜찮으려나? 문을 부순 사람은 학원 내의 물건이나 악기에 손을 대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굳이 힘들게 유리를 깰 필요가 있었나. 역시 취객의 난동이었던 모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며칠 뒤 조카는 ‘범인 없음’에 대해 내게 얘기해 주었다. 유리가 깨진 건 사실이지만 그것을 깬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안이랑 밖이랑 기온차가 크면 가끔 그런 경우가 있대요.” 그러니까 계속된 폭염 때문에 바깥은 지나치게 뜨겁고, 에어컨을 줄곧 가동해 안쪽은 너무 차가워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었다. 강화유리가 저 혼자, 와작와작 깨질 정도의 폭염이라니 새삼 등골이 서늘해졌다.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뉴스가 떠오른 건 그래서였다. 일을 하는 동안 실컷 달구어진 몸 안쪽에서 벌어졌을 일들이 단단한 유리 가장자리에서부터 금이 가고 갈라지고 터져 기어코 산산조각나는 순간과 겹쳐졌다. 강화유리도 버티지 못하는 날씨를 연한 피부와 쉽게 끓어오르는 장기를 가진 사람이 무슨 수로 버틸 수 있을까.

그러니 하필 이런 날씨에 노숙자들을 퇴거시키려는 인천공항의 조치가 못내 아쉬워지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위하는 일이니 조금 더 차근하게 지원책부터 마련한 뒤 시행해도 늦지 않을 텐데. 뭐가 어찌 되었든 강화유리조차 와작와작 부서지는 한여름 폭염 속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안보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