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 차림의 경매 진행자가 오른손으로 작은 망치를 경쾌하게 내려치며 낙찰됐음을 선포한다. 작품 이름은 빨간 하트 모양 풍선을 향해 손을 뻗는 소녀를 담은 뱅크시(Banksy)의 2006년 작 ‘풍선과 소녀’이다. 낙찰가는 무려 104만파운드(한화 19억여원)에 이른다. 2018년 10월5일, 미국 뉴욕 소더비스 경매장에서 낙찰 결과에 박수를 치던 경매 참여자들의 표정은 곧 심하게 일그러진다. 낙찰 직후 액자 속 작품이 밑으로 흘러내리는가 싶더니 작품 절반이 파쇄기에 의해 순식간에 훼손돼 버렸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내 밝혀졌다. “간다, 간다, 가버렸다….” 뱅크시의 인스타그램에 이 같은 글과 함께 경매 직후 ‘풍선과 소녀’가 파쇄되는 장면이 게시됐기 때문이다. 예고된 퍼포먼스였다. 그는 아울러 그림이 경매에 나올 경우를 대비해 파쇄기가 액자에 어떻게 설치됐는지를 담은 비디오도 공개했다. 작품은 3년 뒤 ‘사랑은 쓰레기통 속에’라는 새 이름으로 재경매가 실시됐고, 첫 낙찰가보다 18배 이상 폭등한 1800만파운드(한화 344억여원)에 팔렸다.
‘얼굴 없는 그라피티 예술가’ 뱅크시는 1990년대부터 영국을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거리 미술가다. 그림이나 글자 모양으로 오려낸 판을 벽면에 대고 스프레이를 뿌리는 이른바 ‘스텐실 그라피티 기법’의 거리 미술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줘왔다. 그의 실체를 둘러싸고 수많은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이름과 얼굴이 분명히 특정되지 않은 ‘얼굴 없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최근 BBC의 정보공개 청구 결과, 뱅크시의 작품 3점을 철거하고 관리하는 데만 약 15만파운드(한화 약 2억8673만원)의 비용이 투입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새로운 논쟁이 일고 있다. 2년 전에도 런던 시 경찰 초소에 그려진 그의 벽화를 제거하느라 예산이 소요되기도 했다. 당국은 공공시설 훼손에 따른 비용을 납세자가 더 이상 부담해선 안 된다며 뱅크시의 행위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반면, 예술가들은 “사람들에게 갤러리 입장료 없이 예술을 접하게 한다”고 그의 활동을 옹호한다. 만약 그의 작품 활동에 대해 사법적 판단을 해야 한다면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