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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DMZ 국경선화 작업 ‘속도’… 다음은 NLL 무력화 노리나 [심층기획-신국제질서, 한반도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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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년 남북 완충지대’ 흔들

‘적대적 두 국가’ 관계 내세운 北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선언 후
MDL 코앞 지뢰 매설·철책 설치
일대엔 신형 자주·방사포 등 배치

DMZ 요새화 작업 완료 이후엔
해상경계선 재획정 시도 가능성
정전협정 실효성 우려 목소리도
“소통 채널 확보 등 대응책 필요”

1953년 정전협정 이후 70여년간 남북 완충지대로 남아있던 비무장지대(DMZ)가 흔들리고 있다.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재정립한 북한은 DMZ에서 지뢰 매설 등을 하며 대대적인 국경선화 작업을 벌이는 모양새다. 북한이 상호 협의 및 합의로 갈등을 해소하는 기존 정전협정을 자국의 일방적 규범으로 대체해 DMZ 완충 효과를 무력화하고, 군사력에 기반한 국경관리 방식을 앞세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굳히려 한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024년 10월 북한이 남북 연결도로를 차단하기 위해 폭파 작업을 하면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024년 10월 북한이 남북 연결도로를 차단하기 위해 폭파 작업을 하면서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DMZ 요새화 앞세우는 북한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완충지대였던 DMZ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2024년부터다. 2023년 11월 북한은 9·19 남북군사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하면서 군사분계선(MDL) 지역에서의 전력 증강 방침을 밝혔다. 같은 해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선언과 2024년 1월 ‘남쪽국경선’ 발언이 뒤따랐다. 이때부터 DMZ에서 군사적 차원의 요새화·국경선화가 이뤄졌다.

북한군은 DMZ 곳곳에 병력과 장비를 투입, 공사를 진행했다. 불모지를 조성해 감시병들의 시야를 최대한 넓혔으며, 지뢰를 매설하고 방벽을 세우며 전술도로를 개설했다. 이 과정에서 지뢰폭발과 온열질환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나, 북한군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휴일 없이 작업을 지속하는 강행군을 벌였다.

북한군의 DMZ 내 작업이 활발해지면서 MDL 침범도 잦아졌다. MDL은 1953년 정전협정 당시 일정 간격을 두고 표지를 설치해서 경계를 표시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표지가 사라지거나 풀숲에 가려져 식별이 불가능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과거에는 DMZ에서 활동하는 북한군이 소수였으므로 탈북 등을 제외하면 큰 문제가 없었지만, 요새화·국경선화 작업 과정에서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면서 MDL을 넘는 사례가 증가했다. 실제로 2024년 6월 중부전선 일대에서 북한군들이 MDL을 침범했다가 우리 군의 경고사격을 받고 북상하는 등의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북한은 DMZ 국경선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같은 해 10월 경의선·동해선을 폭파해 남북 철도·도로를 단절한 데 이어 인근에 참호 등을 건설했다.

2025년부터는 ‘명분쌓기’ 작업이 두드러졌다. 북한군은 같은 해 6∼7월 유엔군사령부에 차단물 공사를 사전 통보했다. 고정철 북한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은 공사를 ‘정상적인 국경강화사업’으로 규정했다. 올해 2월 노동당 제9차 대회에선 “남부국경선을 가급적 빠른 기간 내에 요새화하고 경계체계와 화력체계들을 보강할 데 대한 당의 군사전략적 방침”을 명문화했다. 같은 해 6월 노동당 제9기 2차 전원회의에선 ‘남부국경요새화공사’ 질적 완결을 지시했다. 지난해 북한군이 10여차례 MDL을 넘었다가 우리 측 경고방송·경고사격을 받고 퇴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현재 북한군이 DMZ에 설치한 철책은 MDL 80∼90m까지 근접했으며, 지뢰 매설 지역은 MDL 5∼10m까지 이르렀다. 이를 두고 국방부는 정전협정 위반으로 판단했으나, 유엔사는 “중화기 반입이 없는 한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다”는 대조적인 입장을 밝혔다.

 

2025년 8월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에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다. 뉴시스
2025년 8월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바라본 북한군 초소에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다. 뉴시스

◆휴전선 화력 강화도 추진

DMZ 요새화의 또 다른 특징은 휴전선 일대 화력 증강이다. 김 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 및 DMZ 국경선화 작업이 맞물리면서 휴전선 일대 북한군 장사정 화력 강화가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은 기존 무기체계를 신형 무기로 바꾸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선 신형 155㎜ 자주포는 김정일 체제에서 사용됐던 구식 장사정포를 대체하는 전력으로 평가된다. 휴전선 일대 장거리 포병부대에 배치될 신형 자주포에 대해 북한 측은 사거리가 60㎞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과장이 섞였을 가능성을 감안해도, 기존 장사정포보다 성능이 향상된 것은 분명하다.

기존 방사포를 개량한 240㎜ 방사포는 군단급 부대에 배치되는 화력체계다. 방사포는 화력은 강하지만 정밀도는 상대적으로 낮은데, 신형 240㎜ 방사포는 이를 개선하면서 사거리도 9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화성-11라 전술탄도미사일은 수도권 내 주요 군사 표적을 정밀타격할 수 있는 것으로, 김정일 체제에서 운용했던 KN-02 ‘독사’ 미사일을 대체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4월 화성-11라를 쏜 것을 공개하면서 미사일 5기가 136㎞ 거리에 있는 섬 12.5~13㏊ 면적을 매우 높은 밀도로 강타했다고 주장했다. 미사일 5기로 축구장 18개에 달하는 면적을 초토화했다는 주장이다. 서울과 더불어 수원·성남 공군기지와 오산 주한미공군 기지 등이 사정권에 들어간다.

북한이 지난 5월에 공개한 다연장전술순항미사일은 인공지능(AI) 유도 기술 등을 적용해 수도권 일대를 정밀타격하고자 개발한 무기다. 수년 전부터 운용되면서 개량이 이뤄진 600㎜ 초대형방사포까지 추가되면, 휴전선 이남부터 한반도 남부에 이르는 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화력체계가 구성된다. 한반도 유사시 선제공격을 통해 한국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점을 과시, 한·미 연합군의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공세적 억제’를 진행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4년 11월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임진강변에서 북한군이 철책 설치 등을 포함한 진지 공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024년 11월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임진강변에서 북한군이 철책 설치 등을 포함한 진지 공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대화냐 도발이냐… 불확실성 증대

북한은 DMZ 관련 작업을 완료하면, 기존에 남북 군대가 DMZ 내 주도권 장악을 위해 DMZ에서 소리 없이 벌였던 기싸움은 북한 측의 우위로 바뀔 위험이 있다. 요새화 작업을 통해 남측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려는 북한의 전략은 DMZ 내 한국군의 활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군 소식통은 “일선 장병들 입장에서 볼 때, 눈앞에 북한 장애물이 있다면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은 요새화 및 국경선화 공사 완료 선언과 더불어 그들이 주장하는 ‘남부국경선’과 관련한 제도적 입장 또는 군사적 조치를 추가로 밝힐 가능성이 있다. 전방 사·군단급 부대 연합훈련이나 화력시범 등을 통한 무력과시가 한층 강화될 수도 있다.

또 북한이 DMZ 내 요새화 작업 완료를 계기로 해상경계선 재획정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동·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력화하고 영해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한 뒤 해상 무력시위에 나서는 시나리오다. 과거부터 NLL을 인정하지 않았던 북한은 최현호·강건호를 비롯한 구축함을 건조하는 한편 순양함을 만들려는 계획과 더불어 해군 기지 신설도 추진 중이다. 북한이 해군력 증강을 기반으로 서북도서 등을 포함하는 영해선을 선포, NLL 무력화에 나설 경우 서해에서 남북 간 긴장 고조 및 충돌 위험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정전협정의 향후 효력에 대해서는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우선 정전협정의 실효성이 과거보다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북한이 9·19 남북군사합의를 파기한 상황에서 MDL과 DMZ 일대를 ‘남부국경선’으로 주장하면, 정전협정에 명시된 DMZ 관련 사안에 대한 남북한 및 유엔군사령부의 협의 대신 국제법에서 규정하는 영토 주권의 의미가 두드러진다. 수십여년 동안 한반도에서 통용됐던 한반도의 특수관계를 반영한 남북 간 협의 및 합의의 틀이 무력화되고, 국제법에 의한 주권의 의미가 강조되는 셈이다.

 

2025년 8월 북한 임진강변 초소에 대남 확성기가 설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2025년 8월 북한 임진강변 초소에 대남 확성기가 설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반면 정전협정의 위상 자체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전협정은 1953년 7월 유엔군·북한군·중국군이 체결했다. 유엔사를 주도하는 미국, 중국이 정전협정에 관여하는 모양새다. 북한도 미·중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므로 정전협정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대목이다. 북한은 DMZ 공사와 관련, 유엔사에 사전 통보를 한 바 있다.

일각에선 휴전선 일대에서 우리 측 영향력이 축소될 수 있다고 걱정한다. 현재 남북은 소통 채널이 단절된 상태다. 국방부가 지난해 11월 MDL 기준선을 명확히 하기 위한 군사회담을 제안했으나 북한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이 우리 측의 의중에 호응하지 않는 국면이 길어지고, 그 과정에서 과거 사례처럼 유엔사를 대화 상대로 여기는 모습이 지속된다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우리 측의 영향력은 줄어들 수 있다. 북한 화력체계 강화에 맞선 대화력전 능력 향상 등의 군사적 대응 카드와 더불어 소통 채널 확보 및 DMZ와 정전협정 관련 법적·제도적 논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간한 ‘북한의 남부국경화 군사적 조치: 국경 화력체계와 북한식 국경모델’ 보고서에서 “북한이 유일하게 활용하고 있는 유엔사 통보선을 역활용해 상호 통보 관행의 제도화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 화력 대응력 강화와 더불어 NLL 일대 감시·대응 태세, 실효적 관할의 법적 논리를 선제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