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양(78·사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초대 해양특별교구장은 충남 대전 출생으로, 1965년 소년 시절 통일교회에 입교했다. 1966년 충남 당진 송산교회 개척을 시작으로 47년간 목회했으며, 이 가운데 10년은 해외선교에 헌신했다. 2010년에는 문선명·한학자 총재의 수행보좌관과 세계순회사로 활동했고, 문선명 총재로부터 ‘세계선교사 교육 책임자’로 임명받았다. 다음은 허 교구장과의 일문일답.
―해양특별교구는 어떻게 맡게 됐나.
“문 총재님 성화 후 유럽 순회사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스페인을 순회하고 있을 때 한 총재님께서 부르셔서 귀국해 뵈었다. 총재님께서는 거문도와 여수 청해가든을 다녀오신 뒤 ‘해양섭리를 제외하고는 아버님(문선명 총재)의 섭리를 논할 수 없다. 해양 유업을 반드시 계승하고 완성해 바다의 무한한 자원으로 인류에게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어 ‘네가 아버님을 오래 수행하며 해양섭리를 잘 알고 있으니, 청해가든을 중심으로 신설한 해양특별교구를 맡아 달라’고 당부하셨다. 이후 청해가든에서 창립예배와 교구장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문선명·한학자 총재에게 여수는 어떤 곳이었나.
“두 분은 여수의 자연을 무척 사랑하셨다. 디오션리조트와 호텔 등 숙박시설에 투자하며 지역 발전에도 힘을 쏟았다. 이러한 기반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와 여수가 해양관광도시로 성장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본다.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해 여수 시민들의 존경을 받았고, 당시 강동석 여수엑스포 조직위원장도 총재 내외를 ‘숨은 공로자’로 평가해 박람회를 앞두고 초청했다. 문 총재께서는 박람회장을 둘러보며 축복해 주셨다. 문 총재께서는 해외 인사들에게 한려수도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기 위해 여수와 거문도를 오가는 유람선도 직접 구상했다. 선박에는 침실이 마련돼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그곳에서 쉬거나 주무시지 않았다. 자신을 위한 배가 아니라 한국의 자연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배였기 때문이다.”
―여수 청해가든은 어떤 의미를 지닌 곳인가.
“청해가든은 해양특별교구의 중심이자 문선명·한학자 총재 두 분에게 매우 역사적인 장소다. 문 총재께서는 10년 가까이 이곳에서 정성을 들이며 ‘앞으로 바다를 지배하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교육하셨다. 85세 때에는 생애 85년을 탕감하는 조건을 세운다며 85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에 나가셨다. 2011년에는 23시간 30분 동안 훈독회를 인도하셨는데, 지금도 가장 긴 훈독회로 기억된다.”
―청해가든에서는 어떤 교육이 이뤄졌나.
“미국 하와이에서 4차까지 진행되던 해양지도자 교육을 2004년부터 2012년 11월까지 청해가든으로 옮겨 68차까지 이어갔다. 이를 통해 모두 7200여 명의 해양지도자를 배출했다. 교육생들은 40일 동안 통일원리를 배우고 선박 운항 실습도 받았다. 경찰관 입회 아래 선박운항 자격증을 취득한 인원만 3000명이 넘는다. 총재님은 ‘물을 이용할 줄 모르는 민족은 궁핍하게 살 수밖에 없다’, ‘바다는 인류 식량과 무한한 자원의 보고이며, 바다를 개척하지 않으면 미래의 희망도 없다’고 강조하셨다. 특히 일본인 교육생들에게는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익혀 한일관계를 풀고 화합과 평화의 다리가 돼 달라’고 당부하셨다.”
―총재님을 오랫동안 수행했는데, 후버댐 낚시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달라.
“총재님은 미국 라스베이거스를 ‘지옥의 밑창’이라고 부르셨지만, 그만큼 반드시 회복하고 살려야 할 도시라는 뜻을 자주 강조하셨다. 이를 위해 라스베이거스에 동양의과대학을 세워 시민과 교민의 치유를 돕고자 했고, 후버댐에는 국제해양수련소 건립도 구상하셨다. 그리고 보트 다섯 척을 마련해 직접 낚시 정성을 들이셨으며, 폭염 속에서도 거의 매일 후버댐을 찾으셨다. 그때 총재님은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생각하며 이 황무지 라스베이거스를 개척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문선명 총재의 말씀이 있다면.
“총재님은 하루 서너 시간밖에 주무시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식사 중 잠시 졸다가도 이내 깨어나면 늘 미안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면서 ‘나는 서른 살까지 배부르게 살아본 적이 없다. 늘 죄인처럼 살았다. 하늘 앞에 책임을 다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편히 잘 수 있겠느냐. 감옥에서도 그랬고, 평생 긴장과 초조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그날만 바라보며 새우잠을 잤다’고 말씀하셨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때마다 눈물 외에는 달리 위로할 방법이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