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카카오뱅크 주택담보대출 신청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앱 앞에 줄을 선다. 접수는 오전 6시에 열린다. 공식 마감은 오후 11시지만 의미가 없다. 최근엔 접수 시작 1분 안에 하루 한도가 소진되는 날도 나온다.
카카오뱅크는 하루 접수량을 제한한다. 접수 물량이 차면 원하는 날짜의 서류 접수가 조기에 끝날 수 있다고 안내한다. ‘주담대 오픈런’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예전에는 어느 은행 금리가 싼지 따졌다. 지금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창구부터 찾는다.
◆6월 은행 대출 7.6조 늘었다
은행들이 문을 좁히는 배경에는 다시 불어난 가계대출이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6년 6월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 6월 예금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한 달 새 7조6000억원 늘었다. 2024년 8월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이다.
5월 증가액 6조9000억원보다 7000억원 많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증가액도 5월 3조2000억원에서 6월 4조3000억원으로 커졌다.
대출 수요가 꺾이지 않자 은행들은 자체 한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10일부터 수도권과 규제지역의 주택구입자금 대출 최대한도를 기존 6억원에서 3억원으로 축소했다.
비규제지역도 최대 3억원을 적용했다. 25억원을 넘는 주택은 기존 최대 2억원 한도가 유지된다. 이주비·중도금·잔금 등 집단대출은 이번 제한에서 제외됐다.
우리은행은 같은 달 16일부터 영업점별 주택 관련 대출 한도를 월 3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췄다.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을 모두 포함한 한도다.
SC제일은행의 조치는 더 진행됐다. 15일부터 비대면 주담대 접수와 모기지신용보험(MCI) 신규 가입을 제한하더니, 20일부터는 전 영업점에서 일반 주담대 신규 접수를 사실상 중단했다. 잔금일 기준 10월 말 실행분까지다.
지역본부별로 배정된 한도가 소진되면 접수를 멈추고, 기존 대출 상환으로 여력이 생기면 다시 받는 방식이다. 시중은행의 ‘마지노선’으로 불리던 SC마저 문을 닫으면서 실수요자들의 선택지는 더 좁아졌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자리 싸움’
그 틈으로 인터넷은행에 시선이 쏠린다. 카카오뱅크 주담대는 오전 6시부터 신청할 수 있다. 하루 접수량이 정해져 있는 게 문제다.
카카오뱅크는 구체적인 일일 한도를 공개하지 않는다. 공식 상품안내에는 “1일 접수량을 제한하고 있다”며 서류 접수가 조기에 마감될 수 있다고만 안내한다. 은행 측은 하루 배정 물량 자체를 줄이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접수 시작 후 10분, 심하면 1분 만에 마감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빨리 접속하는 요령을 공유하는 글까지 올라온다.
상품상 주담대 한도는 최대 10억원이다. 실제 적용 한도는 지역과 주택가격, 대출 목적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수도권·규제지역 주택구입 목적 대출은 최대 6억원이다. 주택가격이 15억원을 초과하고 25억원 이하이면 최대 4억원, 25억원을 넘으면 최대 2억원이다.
인터넷은행도 대출 규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중은행이 자체 총량 관리에 들어가면서 아직 신청 창구가 열려 있는 곳으로 차주들이 몰린다. 금리 몇십bp를 비교하기 전에 당장 필요한 날짜에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22억 분양했는데 39억, 잔금 앞둔 3064가구
긴장감이 가장 높은 곳은 입주일이 다가오는 신축 아파트다. 매매계약과 달리 잔금 날짜를 미루기 어려워, 대출 여건이 바뀌면 자금 계획 전체가 꼬일 수 있다.
오는 9월 입주가 예정된 서울 서초구 ‘디에이치방배’가 대표적이다. 총 3064가구 대단지다. 이 단지 전용 84㎡의 최고 분양가는 22억4450만원이었다. 이후 가격은 크게 뛰었다. 전용 84.98㎡ 입주권은 지난 7월 16일 17층이 39억3000만원에 거래됐다.
분양 당시보다 시장가격이 크게 올랐다고 해서 잔금 마련까지 쉬워지는 건 아니다. 실제 대출 가능액은 LTV·DSR 규제와 주택가격, 소득, 기존 부채, 은행별 심사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디에이치방배의 잔금대출 기준을 둘러싸고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자 금융당국이 직접 해명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말 담보가치를 시세가 아닌 최초 분양가로 산정하도록 특정 단지에 지침을 내린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하반기 입주단지 상황을 토대로 향후 집단대출 관리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은행권, 3000억 잔금대출 공급으로 물꼬
이후 상황은 빠르게 움직였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은행권 여신 담당 임원들을 소집해 하반기 입주 예정 약 7만가구에 잔금대출을 원활히 공급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달 들어 신한은행에 이어 KB국민은행, 하나은행이 디에이치방배에 각각 1000억원씩, 총 3000억원 규모의 잔금대출 한도를 배정했다.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도 비슷한 규모 공급을 검토하고 있다.
은행별로 대출 한도 산정 기준은 갈린다. 신한은행은 분양가의 60%와 감정가의 50% 가운데 낮은 금액을 한도로 정했다.
이 단지 전용 84㎡ 기준으로는 분양가의 60%인 약 13억원이 사실상의 한도가 된다.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감정가 중심 산정을 검토 중이며 최종 기준은 확정하지 않았다.
잔금대출을 가계대출 총량 관리에서 별도로 취급하는 방안도 하반기 부동산 금융 대책에 포함될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아직 최종 확정된 내용은 없다.
새벽부터 대출 신청 버튼을 눌러야 하는 풍경 뒤에는 은행 창구 하나하나가 좁아진 사정이 있다. 서울의 대출 시장에서는 지금 얼마에 빌릴지보다 빌릴 수 있는지가 먼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