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기고] 그 재정, 청년에게 물었는가

입력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교육부가 이르면 내년부터 지방국립대 신입생에게 등록금 전액을 국가장학금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사실상의 무상교육이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는 정책의 기준을 설립 유형이 아니라 학생과 지역에 두라고 요구했다. 타당한 지적이다. 다만 한 걸음 더 나아간 질문을 던지고 싶다. 국립대 무상교육의 근거는 무엇인가.

 

설립 형태가 국립이라는 사실은 근거가 될 수 없다.

 

국립이든 사립이든 학생은 동일한 국민이며 졸업 후 동일한 노동시장에 나선다. 이 정책은 국립대의 요구가 아니라 정부의 판단에서 출발했다. 그렇다면 판단의 기준도 국가가 국민 개개인에게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에 있어야 한다.

김영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동의과학대학교 총장
김영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동의과학대학교 총장

이미 국립대 학생은 상당한 혜택을 받고 있다. 지난해 비수도권 국·공립대 등록금은 사립대의 약 54% 수준이었고, 등록금 대비 1인당 장학금 비율은 사립대 58.6%, 국·공립대 79.1%였다.

 

재정 투입의 방향은 더 분명하다. 올해 거점국립대 집중 육성 예산은 8855억원으로 한 해 만에 두 배 이상이 됐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로 선정된 3개 거점국립대는 2030년까지 5년간 교당 연 1000억 원 내외를 추가로 받는다. 반면 사립대학과 전문대학을 함께 지원하는 ‘대학 특성화 지원’은 1190억원 신설에 그쳤다. 3개 대학에 들어가는 돈과 나머지 300여 개 대학이 나눠 갖는 돈의 크기가 이렇다. 그 위에 다시 전액 장학금을 얹겠다고 한다.

 

나는 묻고 싶다. 왜 국립대인가. 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정작 당사자인 청년들의 의견을 물어보기는 했는가.

 

이 발표를 접하며 여러 의구심이 든다. 이 정책은 누구의 요구에서 출발했는가. 국립대가 요구했는가, 그 학생들이 요구했는가. 모든 대학에 물어보았는가. 고등교육의 균형 발전을 위한 설계인가, 특정 집단을 향한 선심성 지원인가. 등록금을 면제하면 학생이 지역 국립대에 남는다는 전제는 타당한가. 남는다 해도 졸업 후의 지역 정주로 이어지는가. 오늘 청년이 안고 있는 문제 가운데 이것이 최우선 순위인가. 재정이 어려워지면 되돌릴 수 있는가, 아니면 한번 시작하면 거두기 어려운 약속인가. 나 스스로 답을 찾기 어렵다. 학생에게 혜택을 주는 선한 제도라 여겨서인지 정부의 설명도 없다. 정책 결정의 형식은 달라졌지만, 결정 단계에서는 여전히 구태한 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청년이 주저하는 이유는 등록금 하나가 아니다.

 

고향에 남으면 일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나가면 이번에는 그 일자리 가까이에 살 수가 없어 값싼 방을 찾아 외곽으로 밀려난다. 그렇게 밀려나다 보면 자기 집을 갖는 일은 꿈꾸기조차 어려워지고, 결혼과 출산은 자신과는 먼 이야기가 되고 만다. 대학 4년의 등록금보다 졸업 이후 수십 년의 주거비가 삶을 더 오래 짓누른다. 이 벽 앞에 선 청년에게 국립대 신입생의 등록금 고지서 0원이 얼마나 절실한 답인가. 제한된 재정은 가장 절박한 곳에 먼저 가야 한다. 같은 돈이라면 청년 주거 지원과 지역 일자리 연계에 투입하는 편이 훨씬 많은 청년의 삶을 실제로 움직인다.

 

또 하나의 자리는 새로운 삶을 찾고자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중장년 학습자다.

 

학령인구는 줄지만 인생 2막을 준비하는 4050세대의 재교육 수요는 늘고 있다. 오랜 기간 세금을 내며 경제를 떠받쳐 온 이들이 전직과 재도약을 위해 다시 대학의 문을 두드린다.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라는 이름에 이미 답이 있다.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2030년 일몰되는 한시적 특별회계를 항구적인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으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직업교육법을 제정해 직업교육과 성인 재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문화해야 한다.

 

셋째, 지원 기준을 설립 형태가 아니라 학습자의 생애 단계와 지역의 존속 가능성에 두고, 그 설계에 당사자를 처음부터 참여시켜야 한다.

 

국가는 국립대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모든 국민을 위한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나라의 살림은 해마다 커졌지만 그만큼 나라의 빚도 늘었다. 그 빚을 갚아야 할 사람은 지금의 청년이다. 예산이 커진 만큼 청년의 내일도 커졌는가, 아니면 청구서만 커졌는가. 나는 모든 청년이 걱정보다 희망을 먼저 이야기하는 나라를 보고 싶다. 국가가 먼저 물어야 할 사람은 언제나 그 정책의 결과를 떠안을 사람이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물었는가.

 

김영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동의과학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