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5만원에 산 구호가 강남 빌딩으로…숭구리당당 김정렬의 반전 재테크

입력 :
수정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하루 녹음 대가로 1억원을 거머쥔 개그맨, 화려한 전성기를 넘어 건물주로 거듭난 치밀한 자산 관리 노하우

1980년대 대한민국을 뒤흔든 개그맨 김정렬의 행보는 가벼운 유행어의 히트를 넘어선다. 다리를 흐느적거리며 “숭구리당당 숭당당, 수구수구당당 숭당당”을 외치던 그의 모습은 전국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00년대 초반, 전성기 시절 그가 손에 쥔 수천만원을 웃도는 거액의 수입은 일시적인 인기의 지표를 넘어 철저한 재테크의 시드머니가 되었다. 대중의 기억 속에서 개그맨으로 남아 있는 그가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 부촌의 건물주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 그 이면에 숨겨진 반전의 재테크 노하우를 추적한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전설의 숭구리당당 동작을 재현하는 김정렬. 세계일보 자료사진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전설의 숭구리당당 동작을 재현하는 김정렬. 세계일보 자료사진

김정렬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숭구리당당’은 처음부터 그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1987년 MBC ‘청춘만만세’ 코너 출연을 앞두고 도사 캐릭터의 멘트를 고민하던 그는, 동료 개그맨 조정현이 축구 경기 응원구호로 쓰던 구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조정현에게 5만원을 건네고 해당 구호의 사용권을 사들인 일화는 유명하다.

 

그 시절의 물가를 고려할 때 결코 적지 않은 액수였지만, 그 5만원짜리 투자는 김정렬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었다. 구호를 사들인 것에 그치지 않고, 나이트클럽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남자의 동작을 관찰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슬랩스틱 춤으로 재탄생시켰다. 하체에 아령을 매달고 피나는 연습을 거듭한 끝에 완성된 이 동작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온 국민이 따라 하는 메가 히트 개그로 등극했다. 한 시대의 아이콘이 된 이 춤은 이후 그에게 평생을 지탱할 수 있는 강력한 경제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숭구리당당’으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김정렬에게 또 한 번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사회적으로 큰 유행을 끌었던 자동응답시스템(ARS) 유료 전화 운세 서비스 업체가 그에게 점을 보는 책의 내용을 목소리로 녹음해 달라고 제안했다.

 

김정렬은 ‘정렬도사’ 캐릭터 특유의 어조를 살려 1월부터 12월까지 띠별, 월별 운세를 차례로 녹음했다. 단 하루 만에 끝난 이 작업의 대가는 무려 1억원이었다.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막대한 금액이 통장으로 들어온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일확천금을 거머쥔 스타의 방만한 생활을 떠올리겠지만, 김정렬의 선택은 달랐다. 그가 수령한 1억원의 거액은 곧바로 부동산이라는 단단한 실물 자산으로 향했다.

당시 방송가와 대중문화 전반에 거대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음성 콘텐츠 제작 현장. Pixabay
당시 방송가와 대중문화 전반에 거대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음성 콘텐츠 제작 현장. Pixabay

돈이 생기는 족족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이 그의 원칙이었다. 초기에는 전답과 임야, 잡종지 등 전국의 토지를 조금씩 사 모으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토지 투자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직시했다. 땅값은 꾸준히 우상향했지만, 매달 통장에 찍히는 고정적인 월세 수익이 없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현금 흐름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과감하게 토지를 처분하고 서울 신월동에 첫 번째 건물을 매입했다. 이때부터 그의 자산 증식 방식은 크게 진화했다. 건물을 매입해 임대 수익을 창출하는 동시에, 가치가 오른 건물을 매각하고 그 대금을 더 우수한 입지의 자산에 재투자하는 방식을 반복했다. 건물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겪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치밀한 분석을 거듭한 결과, 마침내 대한민국 부의 중심지인 서울 강남에 건물을 보유한 건물주 반열에 올랐다. 단순히 운으로 벌어들인 돈을 지킨 것이 아니라, 시장의 흐름을 읽고 자산의 체급을 순차적으로 끌어올린 성과였다.

 

김정렬이 부동산 시장에서 이처럼 탁월한 안목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엄격한 자기관리와 공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과거 방송 활동 중에도 미국 텍사스주의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해 화제를 모았다. 영어 회화 능력은 물론이고, 까다롭고 복잡한 현지 부동산 법률 용어까지 완벽하게 소화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었다.

 

연예계 활동이라는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그는 끊임없이 경제적 본질을 공부하고 현물 자산의 구조를 연구했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철저하게 팩트와 시장의 요구에 따라 자산을 운용해 온 그의 모습은 일반적인 연예인을 넘어선 전문적인 비즈니스맨의 면모를 보여준다. 화려한 전성기를 누리고 사라져간 수많은 스타들과 달리, 그가 흔들림 없이 자산을 지켜내고 확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철저한 시장 분석과 현물 자산 중심의 투자 전략이 결실을 맺은 상업용 빌딩 밀집 지역. 셔터스톡
철저한 시장 분석과 현물 자산 중심의 투자 전략이 결실을 맺은 상업용 빌딩 밀집 지역. 셔터스톡

무대 위에서 늘 웃음을 주던 그는 최근 동료 개그맨들의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애도하는 독창적인 퍼포먼스로 큰 울림을 주었다. 고(故) 서세원과 전유성의 영결식에서 생전 고인들이 좋아했던 ‘숭구리당당’ 춤을 추며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 것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 기뻐하듯, 갈 때도 웃음을 주며 즐겁게 갔으면 좋겠다”는 그의 진심 어린 고백은 일개 웃음꾼을 넘어 진정한 희극인의 철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아버지를 여읜 어린 시절의 아픔과 군 복무 중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친형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수십 년간 외로운 싸움을 견뎌낸 시간들은 그에게 남다른 무게감을 안겨주었다. 시련 속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가족을 건사해 온 삶의 궤적은 그의 해학적인 춤사위 이면에 감춰진 단단한 내면을 증명한다.

 

1981년 데뷔해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중의 곁을 지켜온 김정렬. 하루 녹음으로 1억원을 벌었던 과거의 영광은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 아니었다. 5만원을 주고 구호를 사들인 감각적인 안목, 토지의 한계를 깨닫고 상업용 건물로 눈을 돌린 전략적 유연성, 그리고 텍사스 공인중개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며 자산을 지켜낸 치열함이 모여 오늘날의 강남 건물주를 완성했다.

대중의 환호 뒤에서 끊임없는 자기단련과 면밀한 생존 전략으로 일궈낸 묵묵한 삶의 흔적. 세계일보 자료사진
대중의 환호 뒤에서 끊임없는 자기단련과 면밀한 생존 전략으로 일궈낸 묵묵한 삶의 흔적. 세계일보 자료사진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의 판도를 개척한 그의 행보는, 시대를 앞서간 현명한 자산가이자 천생 희극인의 저력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