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치인, 고위 공직자들의 인사검증 때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가 ‘미국 원정 출산’ 유무였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며느리의 하와이 원정 출산 의혹으로 집중포화를 받은 게 대표적이다. 같은 해 미국 LA타임스는 한국 신생아의 1%인 5000명이 미국에서 태어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당시 원정 출산이 유행했던 건 남자아이라면 한국 국적을 포기함으로써 병역의무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5년 외국 출생자도 병역을 이행하지 않고는 국적을 이탈할 수 없도록 한 법이 만들어지자 원정 출산 붐은 시들해졌다.
미국은 자국 내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시민권(국적)을 보장하고 있다. 속지주의를 따른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1868년 수정헌법 제14조를 통해 ‘미국에서 출생하거나 귀화한 사람, 행정 관할권 내에 있는 모든 사람은 미국 시민’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에서 태어나도 국적을 인정받지 못하던 흑인 노예에게 인권을 부여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원래 의도와 달리 세계 각국 임산부들이 아기에게 ‘초강대국 국적’을 만들어 주려고 국경을 넘고 있다. 그 규모가 연간 2만∼3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요즘 미국 언론이 다루는 원정 출산 기사는 대부분 중국인 산모들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12월 중국 부유층이 아이 한 명당 최대 20만 달러를 내고 미국인 대리모를 통해 자녀를 미국 시민권자로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년 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1인당 4만∼8만 달러를 받고 중국인 산모 8000명에게 원정 출산 패키지 상품을 판 조직이 적발됐다. 그만큼 중국인에게 미국 국적은 인기가 높다. 중남미 국가 출신 산모들의 원정 출산도 끊이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유학, 교환, 임시 취업, 관광 등 비(非)이민 비자를 받은 뒤 미국에서 출산하는 행위를 차단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지난 6월 출생시민권 제한 조치가 연방대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자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그는 첫 대선에 출마한 2016년부터 줄곧 출생시민권에 대해 “말도 안 되게 웃기는 제도”라고 날을 세웠다. 트럼프가 이번에는 말폭탄이 아니라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