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쿠릴 열도에 속한 이투루프 섬을 방문했다. 러시아 행정구역상 극동 사할린주(州)의 일부인 쿠릴 열도는 러시아·일본 간에 영유권 분쟁이 있는 곳으로 일본은 이투루프, 일본어로는 ‘에토로후토’(択捉島)를 비롯한 4개 섬이 자국의 북방 영토라고 주장한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이 즉각 러시아를 강력히 규탄하고 나섬에 따라 양국 간 외교 갈등이 첨예화할 전망이다.
13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 타스 통신에 따르면 푸틴은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에 본부를 둔 러시아 해군 태평양 함대의 대규모 군사 훈련을 참관한 뒤 이투루프 섬에 들렀다. 통신은 푸틴이 섬 안에 있는 물고기 가공 공장을 찾아 어부들이 잡아 올린 참치, 넙치 등 어류의 손질 과정을 지켜봤다. 푸틴은 직접 물고기 알을 맛보기도 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쿠릴 열도는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와 일본의 홋카이도 사이에 길게 늘어선 섬들을 뜻한다. 일본은 그 가운데 쿠릴 열도 남쪽에 있는 4개 섬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투루프를 비롯해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니 군도가 그것이다. 일본어로는 에토로후토, 쿠나시리토(国後島), 시코탄토(色丹島), 하보마이군토(歯舞群島)로 각각 불린다.
이들 섬의 원주인은 일본의 소수 민족인 아이누였다. 18세기 들어 러시아와 일본 간에 영유권 다툼이 본격화했다. 1855년 양국은 조약을 맺고 이투루프 등 4개 섬은 일본이 갖는 대신 그보다 북쪽의 섬들 관할권은 러시아에 있는 것으로 정리했다. 20세기 초반 러시아와 일본 간에 러일전쟁이 터졌다. 여기서 승리한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 체결에 따라 쿠릴 열도 외에 사할린 섬까지 차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기간 군국주의 일본은 나치 독일과 손잡고 추축국에 가담해 아시아의 이웃 나라들을 침공했다. 당시 공산주의 소련(현 러시아)은 독일의 침략에 맞서 싸우느라 여념이 없었고 일본과는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그런데 2차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며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소련은 미국, 영국 등을 도와 일본을 상대로 한 전쟁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1945년 8월 들어 미군이 투하한 원자폭탄 두 발에 초토화된 일본은 결국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고, 소련은 미국의 양해 아래 사할린은 물론 쿠릴 열도도 점령했다.
일본은 소련의 일방적인 북방 4개 도서 병합을 인정하지 않고 1950년대 들어 그 반환을 강력히 요구했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출범한 러시아의 정치인들 사이에선 한동안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일본의 협력이 필요하고, 그럴러면 쿠릴 열도를 둘러싼 분쟁 해결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하나 2000년 ‘강한 러시아 재건’을 앞세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취임 후 이는 없던 일이 되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일본은 다른 주요 7개국(G7) 정부와 보조를 맞춰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 및 우크라이나 원조에 나섰다. 푸틴은 이를 빌미로 “쿠릴 열도 문제와 관련해 일본과의 모든 협상을 중단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오늘날 일본 외무성이 펴내는 ‘외교청서(青書)’는 쿠릴 열도에 대해 “러시아의 불법 점거 지역”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