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아들 범죄 증거 없앤 경찰 아버지 ‘불송치’… 법적 특례 뒤에 남은 씁쓸한 질문 [사건수첩]

“처벌 못 한다”와 “잘못이 없다”는 엄연한 차이
경찰 가족 잇단 비위, 공정 수사 국민 불신 커져

현직 경찰관이 불법 촬영을 시도한 10대 아들의 휴대전화를 부숴 버린 사건에 대해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친족 간 특례 규정에 따라 단순 증거인멸 혐의를 처벌하기 어렵다는 법률적 판단이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 법질서 수호를 책무로 하는 경찰관이 자기 아들이 범죄 혐의를 받는 상황에서 증거가 될 수 있는 휴대전화를 직접 없앤 행위까지 법적 특례라는 이유로 사실상 종결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논란은 여전히 남는다.

 

현직 경찰관이 불법 촬영을 시도한 10대 아들의 휴대전화를 부숴 버린 사건에 대해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전북경찰청 청사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현직 경찰관이 불법 촬영을 시도한 10대 아들의 휴대전화를 부숴 버린 사건에 대해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사진은 전북경찰청 청사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증거인멸’ 처벌 불가…경찰관 아버지 불송치

 

전북경찰청은 13일 A경감의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경찰은 “친족 특례에 따라 증거인멸 혐의를 처벌할 수 없다”며 “증거인멸 교사 시도가 있었는지도 폭넓게 수사했으나, 관련 정황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A경감은 지난 5월 아들 B군이 담임교사의 신체 일부를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하려 한 사실을 알게 된 뒤 아들의 휴대전화를 부숴 버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문제는 이 휴대전화가 단순한 개인 물품이 아니라 범죄 혐의를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증거였다는 점이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휴대전화가 사라졌지만, 경찰은 피해 교사의 진술 등을 토대로 B군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미수 혐의로 송치했다.

 

A경감에 대한 수사는 이후 경찰 가족 사건 전수조사를 계기로 본격화됐다. 특히 경찰관 가족의 범죄 및 비위 사건이 잇따르면서 경찰 조직 내부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이 사건 역시 엄정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다.

 

경찰은 A경감의 휴대전화와 사내 메신저, 수사팀 통화 기록 등을 확인한 결과 다른 경찰관이 증거인멸을 돕거나 A경감이 가족 등에게 증거를 없애도록 조언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법적으로는 친족 간 특례가 작동한다. 형법상 친족이 본인을 위해 증거를 인멸한 경우 일정한 조건에서는 처벌하지 않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 역시 이 규정을 근거로 A경감의 단순 증거인멸 혐의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사적 보호 본응과 공적 책무 출동땐 어떤 기준을…

 

그러나 ‘처벌할 수 없다’는 것과 ‘정당한 행위였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구나 A경감은 일반 시민이 아니라 경찰관이다. 법을 집행하고 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공직자가 아들의 범죄 혐의를 인지한 뒤 증거가 될 수 있는 휴대전화를 직접 파손해 버렸다는 사실만으로도 공직자로서의 윤리와 책임에 대한 엄정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찰 스스로도 이를 인정했다. 전북경찰청 관계자는 “아들의 휴대전화를 내다 버린 것은 경찰공무원 신분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행위이고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엄중한 징계를 예고했다.

 

결국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단순히 ‘친족 특례를 적용할 수 있느냐’에 머물지 않는다. 경찰관이라는 신분을 가진 부모가 가족의 범죄 혐의를 알게 됐을 때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공직자의 사적 보호 본능과 공적 책무가 충돌할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특히 경찰관 가족과 관련된 사건에서 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수사의 공정성과 독립성이다. 경찰관 본인이나 가족이 사건의 당사자가 됐을 때 일반 시민과 동일한 잣대가 적용되는지, 조직 내부에서 사건이 축소되거나 빠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이 반복된다면 아무리 법적으로 정당한 수사 결과라 해도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이번 결정 역시 경찰이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수사했다”고 강조했지만, 국민으로서는 오히려 ‘경찰관 가족 사건이기 때문에 더 엄격한 기준과 더 투명한 설명이 필요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친족 특례, 공직윤리까지 면책 수단 전락 안돼

 

친족 특례는 가족 구성원이 가족을 보호하려는 행위를 일률적으로 형사 처벌하는 데 따른 폐해를 막기 위한 법적 장치다. 그러나 이를 경찰관의 공직 윤리까지 면책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경찰은 이번 사건을 형사처벌 여부만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A경감이 왜 증거를 없앴는지, 경찰관으로서 수사와 증거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음에도 어떤 판단을 했는지, 향후 경찰관 가족 사건에서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까지 조직 차원의 성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법률의 특례가 형사처벌의 문턱을 낮출 수는 있어도 공직자의 책임까지 지워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찰이 이번 사건에 대해 예고한 징계가 단순한 형식적 처분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잇따르는 경찰관 가족 비위 사건 속에서 국민이 경찰에 요구하는 것은 ‘경찰관 가족이어서 더 가혹하게 처벌하라’는 것이 아닐 게다. 오히려 경찰관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더 느슨한 잣대가 적용됐다는 의심조차 들지 않도록 스스로 더 높은 기준을 적용하라는 요구일 것이다.

 

이번 불송치 결정이 법적으로는 종결됐더라도, 경찰 조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이제부터가 과제다. 경찰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징계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느냐에 따라 ‘법적 특례에 따른 불송치’가 국민에게 이해할 만한 결론으로 남을지, 아니면 또 하나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으로 남을지가 갈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