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에 출품하지 않겠다는 BTS의 결정을 국내의 극소수 평론가들은 노이즈 마케팅이나 영리한 전술 정도로 축소하기도 했지만, 이 사건은 이미 국경을 넘어 생산적인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필리핀 언론 인콰이어러의 칼럼 “BTS, 승인을 넘어”(8월6일자)는 이번 결정을 식민지 근성으로부터의 탈피로 읽었다. 아시안 팝 부문 신설 소식을 환영하는 일부 아시아계 독자들에게 이 글은 오히려 그 반가움 자체가 식민지 근성이 아니냐고 되묻는다. 식민지 근성이란 서구적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우월하게 여기고 자신의 것을 열등하게 취급하는 것, 즉 내면화된 억압이다. 서구 승인을 손쉽게 얻는 길이 열렸다는 사실에 반사적으로 반색하는 태도가 바로 그 억압의 증상이며, 그로부터의 탈출구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승인하는 것이다.
2018년, BTS 멤버 RM은 유엔에서 성 정체성, 피부색, 국가 등 누군가를 침묵시키는 범주를 하나씩 거론하며 “스스로에 대해 말하라”고 촉구했다. 침묵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이로써 자기 자신을 스스로 승인해 나가자는 그 제안을 이번에는 아시안을 또 하나의 주변으로 남겨두려는 시도 앞에서 다시 불러내었다. 최근 발매된 앨범에는 “가, 나부터 배워라”, “신발은 벗어놔”라는 가사를 담은 ‘Aliens’라는 곡이 있다. 비서구 아티스트들은 오랫동안 ‘영어’로 가사를 쓰고 서구의 인정을 받아야만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문화 권력에 적응할 의무를 요구받아 왔다. 이 가사들은 그 의무가 결코 완수될 수 없다는 현실 인식 안에서 그것을 전복시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이 결정의 예고편이었다.
BTS의 이번 결정은 음악 산업과 시상식이라는 권위 안에서 평가의 대상이었던 비서구가 오히려 그 권위에 질문하는 장면이었다. 인정을 구하는 자에서 조건을 제시하는 자로의 전복은 평가의 주체와 대상을 결정해 온 식민주의의 배치 자체를 재편하고 있다. 식민주의는 주어진 자리에서 잘 견디고 인정받는 것만을 성공이라 믿게끔 만들어 왔다. 하지만 문화적 헤게모니가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승인을 거부하는 움직임의 가능성을 보고 있다. 언어, 지역, 피부색을 통한 분리 정책이 만천하에 드러난 그래미는 ‘음악’ 시상식으로서의 가치를 심문당하고 있다.
차별로 예술을 횡령하는 이들과 공범들, 그들의 느린 몰락을 우리는 오랫동안 목격해 왔다. 권위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직접 정당성을 증명하라. 아 참, 신발은 벗어 두시고.
이지영 한국외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