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곁에 남지 않았다. 피터 파커(톰 홀랜드)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MJ(젠데이아)와 네드(제이컵 바털론)도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마블 히어로 중에서 생계형 근로자에 가장 가까웠던 스파이더맨은 아이언맨의 영향과 유산을 경유해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더 고독하고, 더 처절하게. 작품마다 설정은 조금씩 다를지언정 피터 파커를 히어로로 각성하게 한 ‘큰 힘에는 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브랜드 뉴 데이)에서 선보이는 스파이더맨의 활약은 인생의 막다른 길에 내몰린 자가 행하는 업무의 일환처럼 묘사된다. 우연히 얻게 된 초능력에는 의무가 뒤따른다. 여기에 ‘하지 않음’의 선택지는 없다. 스파이더맨에게 있어 막중한 책임은 영웅으로서의 윤리이자 피터 파커가 평범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행복을 침식하는 조건이다.
샘 레이미가 연출하고 토비 맥과이어가 주연을 맡은 세 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제외하면 피터 파커는 피자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사소하게 곤경에 처한 시민을 돕는다. 늘 연민을 자극하는 히어로답게 이전의 스파이더맨은 많은 것을 지키려다가 사적인 삶의 부분들―직장, 가족, 친구, 연인―을 잃거나 잃을 위험에 처한다. 그러나 ‘브랜드 뉴 데이’에서 성인이 된 스파이더맨에게는 이전과 달리 잃어버릴 사적인 삶이 없다. 전편에서 이미 하나뿐인 가족을 잃었고 MJ와 네드는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었다는 사실을, 절친한 친구였다는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데스틴 크리턴 감독의 ‘브랜드 뉴 데이’에서는 스파이더맨의 활약이 근로자의 면면처럼 그려지는 경향이 더욱 짙게 드러난다. 크고 작게 사회에 기여하는 스파이더맨의 활약상이 담긴 몽타주 시퀀스에서 그는 아이언맨에게서 받은 최첨단 메탈 소재의 히어로 수트 대신 스판덱스에 겨울용 패딩 조끼를 입고 악당과 대치한다.
이제 잃어버릴 사적인 삶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브랜드 뉴 데이’의 피터 파커는 그래서 더욱 히어로의 의무에 매달린다. 우리의 친절한 이웃은 이제 지독한 워커홀릭처럼 스파이더맨의 가면을 쓰고 이전처럼 철저한 익명성 아래에 숨어 묵묵히 자신의 의무를 수행한다. 뉴욕시의 빌딩 숲을 웹 스윙으로 가로지르는 스파이더맨의 클로즈업에는 액션의 역동만큼이나 피터 파커가 내몰려 있는 상실과 고독의 정서가 함께 보인다. 피터 파커/스파이더맨의 운명은 늘 마지막에 끝내 지켜낼 수 없는 것을 지키려고 애쓴다는 데 있다. 더 이상 지켜야 할 개인적인 삶이 남아 있지 않은 스파이더맨에게 이제 지켜야 할 것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웃들,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도시 그 자체다. 피터 파커를 붙드는 건 그가 한때 가진 적 있던 관계가 아니라 그를 알았던 사람들조차 이제는 증언해 줄 수 없는, 그의 진짜 모습이 한때 존재했다는 흔적뿐이다.
유선아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