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제주의 말 농장에서 불법 도축이 확인됐다. 그곳에는 은퇴한 지 불과 20여일 된 경주마 ‘천행챗’이 있었다. 다섯 살, 40차례 경주에 출전해 약 1억4600만원의 상금을 벌어들인 말이다. 서류상으로는 ‘승용마’로 전환됐지만 실제 도착한 곳은 냉동된 말고기와 도축 흔적이 남은 농장이었다. 2024년 공주시 한 농장에서도 굶주린 퇴역마들과 말 사체들이 함께 발견됐다. 당시 확인된 말들 상당수는 정부 포털의 소유자·소재지 정보가 실제와 달랐고, 살아 있는 말이 이미 폐사로 기록된 경우도 있었다. 경주가 끝난 뒤 말이 어디로 가는지 제대로 추적하지 못하는 구조가 같은 비극을 반복시키고 있다.
현행 ‘말산업 육성법’에는 모든 말에 대한 보편적 등록 의무가 없다. 경주마는 출전을 위해 등록되지만, 그 밖의 말은 임의등록이고, 퇴역 뒤 소유자·소재지·용도가 바뀌어도 이를 끝까지 추적할 강제력이 부족하다. 정부는 지난해 등록 의무화를 약속했고, 한국마사회도 올해 7월 ‘경주퇴역마 이력관리 종합계획’을 발표해 의무신고제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승용 전환’이라는 신고가 있더라도 그것이 말의 실제 삶을 보증하지 못하는 만큼, 신고 의무화는 물론 그 정확성을 담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질적인 말 복지의 출발점은 모든 말의 전 생애를 기록하는 것이다. 소유자·소재지·용도·폐사 등 현황 및 변동 사항을 신고하게 해야 한다. 마이크로칩과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출생부터 죽음까지 이력을 잇고, 신고만 믿지 말고 정기적인 현장 확인과 시정명령도 뒤따라야 한다.
퇴역마 보호 역시 별도의 법적 의무가 되어야 한다. 퇴역 뒤에도 적정한 사육·관리 책임을 지우고, 자격을 갖춘 곳으로의 입양을 지원하며, 상업적 도살은 제한할 필요가 있다. 말을 구조·보호할 지원센터와 안정적인 재원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진정한 말 복지 수준은 경주가 끝난 뒤 그 말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의 필요로 달리게 했다면, 그 역할을 마친 뒤의 삶까지 책임지는 것이 최소한의 의무다.
박주연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