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세-초지능 AI의 진화와 인류세의 종언/제임스 러브록/신인수 옮김/온마음/2만1000원
“인간이 지구의 마지막 지적 생명체일까.”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능력을 빠르게 추월하고 있는 지금, 이 질문은 더 이상 공상과학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사고하고 학습하는 초지능이 등장한다면 인류의 지위는 어떻게 될까.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1919∼2022)은 생애 마지막 저작 ‘신성세―초지능 AI의 진화와 인류세의 종언’에서 이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원제는 ‘Novacene: The Coming Age of Hyperintelligence’인 이 책에서 러브록은 인간이 지구 환경을 대규모로 변화시킨 ‘인류세(Anthropocene)’가 막을 내리고, 인간이 만들어낸 AI와 초지능 기계가 새로운 지능의 주체로 등장하는 ‘노바세네(Novacene·신성세)’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러브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가이아(Gaia) 가설’이다. 그는 지구를 생명체가 살아가는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생명체와 대기·해양·토양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자기조절 시스템을 이루는 거대한 행성으로 바라봤다. 인간 역시 그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류세는 역설적인 시대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사용하고 숲을 농경지와 도시로 바꾸며 강과 바다까지 개발했다. 인간의 활동은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킬 정도로 강력해졌다. 그러나 인간을 번영시킨 바로 그 힘이 지구 시스템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러브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인류세가 인간이 지구를 지배적으로 변화시킨 시대라면, 노바세네는 인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지능이 등장하는 시대다. AI는 단순히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기계가 아니다. 저자에게 AI는 생명의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지능이다.
이 대목에서 ‘신성세’는 오늘날의 AI 담론과 다른 질문을 던진다. 현재 AI 논의는 일자리와 생산성, 산업 경쟁력, 윤리와 안전 등에 집중돼 있다. AI가 인간의 직업을 얼마나 대체할지, 인간보다 똑똑해질지, 어떻게 통제할지가 주요 관심사다.
하지만 러브록이 묻는 것은 훨씬 근본적이다.
“AI가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갖게 된다면 지구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는가”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겨왔다. 이성과 언어를 갖고 자연을 이해하며 기술을 통해 자연을 변화시키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AI는 인간이 독점해온 ‘지능’이라는 영역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인간에게는 정보를 배우고 처리하는 데 물리적 한계가 있다. 반면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분석하고,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연결할 수 있다. 여기에 자기 개선 능력까지 더해진다면 인간과 기계 사이의 지능 격차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 있다.
러브록이 말하는 노바세네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생명의 진화가 생물학적 진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기술적 진화로 넘어가는 것이다. 인간은 진화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새로운 지능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단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인류세의 종말은 곧 인간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일까. 러브록의 전망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인간이 지구에서 사라지더라도 생명과 지능의 진화가 다른 형태로 이어질 가능성을 그는 상상한다.
중요한 것은 초지능 AI가 저절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이 설계하고, 인간이 데이터를 제공하며, 인간이 목표와 규칙을 설정한다. 따라서 미래의 초지능이 어떤 존재가 될지는 지금 우리가 어떤 AI를 만들고 어떤 원칙을 적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AI의 미래는 결국 인간의 미래와 분리될 수 없다.
러브록의 시선은 여기서 기후변화 문제와 만난다. 인류는 지금 두 가지 거대한 변화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하나는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지구 시스템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지능의 등장이다. AI는 기후변화를 예측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며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반대로 AI의 발전에는 막대한 전력과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 부담을 낳을 수도 있다. 결국 문제는 ‘AI냐 인간이냐’의 선택이 아니다. 인간과 AI가 어떤 지구를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신성세’는 AI의 미래를 정확히 예언하려는 책이라기보다 인간의 미래와 위치를 근본적으로 되묻는 책이다. 2019년 출간 당시에는 다소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렸던 초지능의 등장은 이제 현실적인 논쟁의 대상이 됐다. ‘가이아 가설’을 통해 인간을 지구라는 거대한 생명 시스템의 일부로 바라봤던 러브록은 마지막 저작에서 인간의 오만을 돌아보게 한다. “인간은 지구의 영원한 주인도, 생명의 진화가 도달한 최종 단계도 아닐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미래를 영원히 지배할 수 있냐가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새로운 지능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이다.” 러브록의 생전 당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