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도널드 트럼프(사진) 미국 대통령은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귀국하면서 이란의 암살 위협을 이유로 대통령 전용기(에어포스원)에서 미군 수송기로 갈아탄 ‘기만 작전’의 전말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수송기에 측근들만 데리고 탔다는 점, 각료들과 동행기자단은 미끼로 이용했다는 점 등이 알려지며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12일(현지시간) 미 언론을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앙카라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를 마무리하고 카타르가 선물한 신형 에어포스원을 미리 영국의 공군기지로 출발시킨 뒤 구형 에어포스원에 탑승했다.
구형 에어포스원에는 당시 100명이 넘는 고위 참모진, 행정부 당국자, 동행기자단이 타고 있었다. 취재진에겐 창문 덮개를 내리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그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반대편 문으로 몰래 내려 기내식 운반차량에 숨은 뒤 근처에 있던 C-32A 수송기에 탑승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이 작전엔 댄 스캐비노 백악관 부비서실장과 나탈리 하프 보좌관, 월트 노타 국장 등이 동행했다.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1기 퇴임 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재선을 준비할 때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측근들이다. 행정 서열 1, 2위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에어포스원에 남아있었다. 루비오 장관은 이 작전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C-32A를 타고 영국 밀든홀 공군기지에 도착한 뒤 다시 구형 에어포스원에 몰래 올라탔고, 마치 에어포스원을 타고 온 것처럼 계단을 내려왔다.
기만 작전은 대통령 암살 첩보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미 당국은 이란이 공항에서 약 800m 떨어진 곳에 잠복해 있다가 휴대용 견착식 지대공 미사일을 출발하는 에어포스원을 향해 발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이 첩보에 대해 회의적이라는 평가를 달아 트럼프 행정부에 전달했다고 WP가 전했다. 한 당국자는 WP에 해당 정보가 “이스라엘에서 나온 것이지 미국이 생산한 게 아니며, 신뢰도가 낮은(low confidence) 것으로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미 비밀경호국(USSS)은 CIA의 평가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비행기를 바꿔 타도록 강력히 요구했다. 공중에서 에어포스원이 전투기 호위를 받기 전 이륙 시 취약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한 달간 전혀 알려지지 않다가 최근 WP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전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그들(비밀경호국과 군 관계자들)은 내가 다른 항공편, 다른 비행기를 타기를 원했다. 안전성은 똑같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했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대로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대통령 경호 작전을 위해 각료와 기자 등 100여명을 혹시 모를 이란의 테러 위협에 ‘미끼’로 내준 것이라는 비판은 민주당, 미국 언론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2000년 인도·파키스탄 순방 중이던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신변 안전을 위해 ‘미끼 항공기’로 관심을 유도하고 실제 탑승 항공기를 한동안 숨긴 전례가 있으나, 당시에는 백악관 측이 출입기자단 간사 등에게 사전에 이를 알리고 엠바고(보도 유예)를 유지한 채 안전조치를 상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CIA 정보관을 지낸 스티븐 캐시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트럼프 대통령의 위험을 줄이려는 명목으로 이란에 100여명을 대신 죽이도록 내주는 것과 다름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당시 취재진이 탄 에어포스원을 호위하기 위해 전투기를 긴급 출격시켰다”고 해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