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아이누’라는 소수 민족이 있다. 훗카이도를 비롯한 북부 지역에 주로 거주했다. 지금은 러시아 영토가 된 사할린과 쿠릴 열도에도 아이누족이 널리 퍼져 살았다. 일본이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 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아이누는 멸시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인들은 아이누족을 진화가 덜 돼 시대에 뒤떨어진 야만인이란 뜻에서 ‘구토인’(舊土人)이라고 불렀다. 1899년 제정된 ‘훗카이도 구토인 보호법’은 보호라는 어휘가 무색하게 아이누족의 고유 풍습을 금지하고 일본어 사용을 강제하며 성(姓)와 이름도 일본식으로 고치게끔 하는 내용이었다.
일본과 제정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는 사할린 섬과 쿠릴 열도는 오랫동안 두 나라 간 영유권 다툼의 대상이었다. 양국은 1855년 조약을 체결하고 쿠릴 열도에 속한 섬들 가운데 일본과 가까운 이투루프(에토로후·択捉島), 쿠나시르(쿠나시리·国後島), 시코탄(시코탄·色丹), 하보마이(하보마이·歯舞) 4개 도서를 일본 영토로 인정했다. 대신 일본은 사할린에 대한 러시아의 영유권을 인정했다. 20세기 들어 터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포츠머스 조약(1905)에 따라 사할린 남부까지 차지했다. 러시아 황실과 군부는 이를 치욕스럽게 여기며 복수를 다짐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당시 공산주의 소련(현 러시아)은 미국, 영국 등과 함께 연합국을 이뤘다. 나치 독일이 패망한 뒤 군국주의 일본과의 전쟁에도 뛰어든 소련은 1945년 8월 과거 제정 러시아가 일본에 빼앗긴 사할린은 물론 쿠릴 열도의 일본령 4개 도서까지 모두 점령했다. 일본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두 나라는 전후 80년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2차대전을 끝내는 종전 협정을 맺지 못하고 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일본은 미국 등 서방의 대러 제재에 동참했다. 그러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방 4개 도서 처리 등 일본과의 평화 조약 체결을 위한 모든 형태의 협상 중단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그 푸틴이 13일 쿠릴 열도의 이투루프 섬을 전격 방문했다. 러시아·일본 간 영유권 분쟁 지역인 이 섬을 푸틴이 찾은 것은 취임 후 처음이다. 러시아가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쿠릴 열도를 “불법 점거 지역”이라고 부르며 매년 2월7일을 ‘북방 영토의 날’로 지정해 기념해 온 일본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외무성의 규탄 성명 발표에 이어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가 직접 나서 “북방 영토는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의 고유한 영토”라며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문에 강하게 항의한다”고 밝혔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때마다 속이 뒤집히는 한국인들 심정을 일본인들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으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