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부터 한국 미술계의 달력이 빼곡해진다. 서도호·구정아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해온 한국 작가들의 대형 개인전이 잇따라 열리고, 9월 첫째 주에는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 광주비엔날레가 한꺼번에 관람객을 맞는다. 부산·제주 등에서도 비엔날레가 이어지면서 미술관과 미술시장, 국제전이 맞물리는 연중 최대 ‘가을 아트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국내외 거장전 줄줄이…미술관은 벌써 가을
가을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주요 미술관의 굵직한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는 오는 27일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개인전 ‘서도호’가 개막한다. 초기작부터 주요 작품과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까지 30여년에 걸친 작업 세계를 폭넓게 조명하는 자리다. 서도호는 자신이 살았던 집이나 통로 등을 형형색색의 반투명 천으로 실물 크기에 가깝게 재현하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주와 거주,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통해 공간과 기억, 정체성의 문제를 꾸준히 탐구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사유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다량의 드로잉이 국내에서 처음 공개된다. 경계를 넘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탐색해온 ‘브릿지프로젝트’ 등 주요 작업도 만날 수 있다.
지난 13일 세화미술관에서는 독일 신표현주의의 거장 게오르크 바젤리츠(1938~2026)의 전시가 막을 올렸다. 지난 4월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전시다. 1960~1980년대 초기작부터 평생의 동반자 엘케의 초상, 과거 자신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한 ‘리믹스’ 연작과 말년의 ‘골드 페인팅’까지 회화·조각·드로잉 46점을 통해 60여년에 걸친 작품 세계를 살펴본다.
9월1일에는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개념미술의 선구자 솔 르윗(1928~2007)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 ‘솔 르윗: 오픈 스트럭처’가 시작된다. 완성된 작품의 물리적 형태보다 이를 만들어내는 아이디어와 규칙을 중시했던 작가의 월 드로잉과 기하학적 입체 조각, 회화, 드로잉 등을 폭넓게 소개한다.
리움미술관은 9월5일부터 구정아의 개인전 ‘구정아: 우스모스’를 선보인다. 2024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참여했던 구정아는 향과 자력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요소를 작업에 끌어들여 공간과 감각, 인식의 관계를 탐구해왔다. 이번에는 작품이 전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로비와 벽 뒤, 고미술품 사이 등 미술관 곳곳에 자리하며 공간 전체로 확장된다.
이미 막을 올린 한국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전시도 가을까지 이어진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는 지난 6일 개막한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가 11월8일까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처음 마련된 이대원 회고전으로 작품 120여점과 아카이브 100여점을 통해 ‘과수원’ 등으로 대표되는 독창적인 색채와 풍경의 형성 과정을 되짚는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는 유영국 탄생 110주년을 기념한 ‘유영국: 산은 내 안에 있다’가 10월25일까지 이어진다. 작품과 드로잉, 자료 등 170여점을 통해 산을 점과 선, 면과 색으로 재구성하며 한국 추상미술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작가의 궤적을 보여준다.
◆9월 미술시장 절정…전국선 비엔날레 릴레이
미술관에서 달아오른 열기는 9월 초 미술시장으로 옮겨간다. 국내 최대 규모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이 9월2일 서울 코엑스에서 나란히 막을 올린다. 올해 5회째인 프리즈 서울에는 30개국에서 125곳 이상의 갤러리가 참여한다. 에스더 쉬퍼, 글래드스톤, 리만 머핀, 타데우스 로팍, 화이트 큐브 등 해외 유력 갤러리를 비롯해 국제갤러리와 갤러리현대 등 국내 대표 화랑들이 작품을 선보인다.
아트페어의 열기는 코엑스 밖으로도 번진다. 프리즈 위크 기간에는 공공미술과 영화, 토크, 음악을 비롯한 프로그램이 서울 곳곳에서 펼쳐진다. 을지로와 한남, 청담, 삼청 등 주요 갤러리 밀집 지역에서는 야간 프로그램도 이어져 서울 도심 전체가 미술축제의 무대가 된다. 프리즈 측은 올해 라이언 갠더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부산비엔날레와 연계한 영화 상영 등도 마련했다.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하는 키아프 서울은 9월6일까지 이어진다. 18개국 175개 갤러리가 참여하며 올해 25주년을 맞아 ‘공존(Coexistence)’을 주제로 내걸었다. 디자이너 정구호가 총괄 디렉터를 맡아 전시 공간과 관람 동선 등에도 변화를 준다. 프리즈와 키아프가 동시에 열리는 기간에는 국내외 미술계 관계자와 컬렉터들이 서울을 찾는 만큼 미술관과 갤러리의 주요 전시와 행사도 집중된다. 올해 키아프는 9월2일부터 6일까지 열린다.
서울에서 미술시장이 달아오르는 동안 지역에서는 비엔날레가 잇따라 열린다. 제주비엔날레가 오는 25일 개막하고, 29일에는 2026 부산비엔날레가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을 주제로 막을 올린다. 에블린 사이먼스와 아말 칼라프가 전시감독을 맡은 부산비엔날레에는 22개국 46명·팀(49명)이 참여한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지지 않으면서도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음악과 안무,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예술 언어를 통해 탐색한다.
제16회 광주비엔날레는 9월5일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You must change your life)’를 주제로 관람객을 맞는다. 호추니엔 예술감독과 박가희·브라이언 쿠안 우드·최경화 큐레이터가 22개국 작가 43명(팀)을 초청했다. 다양한 세대와 지역의 작가들이 개인과 공동체가 마주한 갈등과 어려움을 저마다의 시각으로 풀어낸다. 이어 경기도자비엔날레가 9월18일, 창원조각비엔날레가 30일 각각 개막하며 지역으로 미술축제의 열기를 이어간다. 정부도 9월 한 달간 주요 아트페어와 비엔날레, 미술관, 화랑을 연계하는 ‘2026 대한민국 미술축제’를 진행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