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포테토칩인데 어느 편의점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CU에서는 버터 맛, GS25에서는 매콤한 까르보나라 맛을 사고 세븐일레븐에 가면 버터갈릭새우맛, 이마트24에서는 크림치즈소시지맛을 만날 수 있다.
식품업계가 편의점을 신제품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편의점마다 다른 제품을 심는 방식으로 판매 전략을 바꾸고 있다. 특정 편의점에서만 살 수 있는 단독 상품으로 고객을 끌어들이려는 편의점과, 1~2인 가구와 젊은 소비자 접점을 넓히려는 식품업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농심은 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 편의점 4사와 손잡고 포테토칩 신제품 4종을 동시에 출시했다.
제품은 CU ‘고메포테토 솔티버터맛’, GS25 ‘포테토칩 매콤까르보맛’, 세븐일레븐 ‘포테토칩 버터갈릭새우맛’, 이마트24 ‘포테토칩 크림치즈소시지맛’이다.
한 제조사가 같은 브랜드의 신제품을 편의점별로 각각 다른 맛으로 동시에 내놓는 방식이다.
각 제품에는 최근 스낵 시장에서 강해진 ‘미식형 과자’ 콘셉트가 반영됐다.
CU에서 판매하는 고메포테토 솔티버터맛은 이즈니버터를 활용해 고소하면서 짭짤한 풍미를 강조했다. GS25의 포테토칩 매콤까르보맛은 까르보나라 특유의 고소함에 매운맛을 더했다.
세븐일레븐의 버터갈릭새우맛은 갈릭·버터·새우를 결합했고, 이마트24의 크림치즈소시지맛은 크림치즈와 소시지를 섞어 단맛과 짠맛을 함께 살렸다.
눈에 띄는 부분은 판매 방식이다.
통상 식품업체가 편의점 한 곳과 손잡고 단독 상품을 출시했다면 이번에는 농심이 편의점 4곳 모두에 각각 다른 제품을 배치했다. 편의점끼리 상품 차별화를 유지하면서 농심 입장에서는 포테토칩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동시에 노출할 수 있다.
소비자가 다른 맛을 먹기 위해 다른 편의점을 찾게 만드는 효과도 노렸다.
농심이 신제품 4종을 모두 구매해 인증하는 ‘편의점 도장깨기’ 이벤트와 가장 선호하는 제품을 고르는 ‘나만의 원픽 포테토칩’ 이벤트를 함께 진행하는 이유다.
편의점 전용 과자를 둘러싼 경쟁은 이미 식품업계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오리온은 지난 7월 대표 감자스낵 ‘예감’에 초콜릿을 입힌 ‘예감 초코범벅 감자칩’을 GS25 단독 상품으로 선보였다. 55g 한 봉지 가격이 3400원으로 일반 스낵보다 높은 편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행하던 ‘감자칩+초콜릿’ 조합을 제품화해 차별화했다.
롯데웰푸드는 앞서 GS25와 손잡고 대표 스낵 ‘오잉’을 활용한 ‘오잉K불황태맛’을 단독 출시했다.
프로야구 인기를 겨냥해 야구에서 삼진을 뜻하는 ‘K’를 제품명에 넣고 황태에 청양고추와 마요네즈 풍미를 섞은 안주형 스낵으로 만들었다. GS25가 올해 1~4월 잠실야구장과 인근 점포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스낵 판매 1위는 홈런볼로, 2위 제품의 7.6배에 달했다. 편의점이 실제 점포 데이터를 상품 기획에 활용한 사례다.
세븐일레븐 역시 지난해 여름 오리온과 손잡고 ‘촉촉한멜론칩’, ‘멜론후레쉬베리’, ‘수박초코파이’, ‘초코파이하우스망고’ 등 기존 장수 브랜드에 과일 맛을 입힌 제품 4종을 편의점 단독으로 운영했다.
당시 세븐일레븐에서 메론킥·메로나 등 멜론 관련 상품 매출은 5월 1~28일 기준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1.5배 증가했다. 검증된 브랜드에 계절 트렌드를 빠르게 얹는 방식이다.
과자 밖으로 범위를 넓히면 경쟁은 더 치열하다.
GS25는 서울우유 브랜드를 활용한 디저트 5종을 유통사 단독으로 출시했다. 앞서 농심 바나나킥을 활용해 만든 디저트 시리즈는 출시 6개월 만에 누적 50만개가 팔렸다. 기존 장수 식품 브랜드가 편의점에서 디저트나 간편식으로 ‘스핀오프’되는 구조다.
매일유업의 ‘피크닉 천도복숭아’도 편의점 전용 상품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난해 3월 편의점 단독 판매로 나온 뒤 4개월 만에 판매량 200만팩을 넘어섰다. 앞서 편의점용 240mL 사과·청포도 제품도 출시 2년 만에 누적 2300만팩이 판매됐다.
식품업체들이 편의점 전용 제품을 늘리는 가장 큰 이유는 판매력이다.
닐슨아이큐(NIQ) 코리아의 ‘스낵 시장 내 채널별 판매액 비중’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스낵류 소매 매출 가운데 편의점 비중은 36.4%로 주요 소매 유통채널 중 가장 높았다.
과거 편의점이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던 과자를 작은 규격으로 옮겨 놓는 유통망에 가까웠다면 상황이 달라진 셈이다.
편의점 입장에서도 제조사의 유명 브랜드는 강력한 집객 수단이다. 자체브랜드(PB) 상품만으로 차별화하는 것보다 소비자에게 익숙한 농심 포테토칩이나 오리온 예감, 롯데웰푸드 오잉 등에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맛’을 붙이는 편이 구매 진입장벽이 낮다.
특히 SNS에서 신제품 인증과 비교 시식 콘텐츠가 빠르게 확산하면서 희소성 자체가 마케팅 수단이 되고 있다. 한 편의점에서 구입하면 끝나는 상품보다 여러 점포를 찾아다니게 만드는 제품이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만들기에도 유리하다.
농심의 이번 전략은 이 같은 편의점 단독 상품 경쟁을 한 단계 더 확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 ‘A제품은 GS25’, ‘B제품은 CU’처럼 제조사별로 특정 편의점과 협업하는 사례가 많았다면, 포테토칩은 하나의 브랜드 안에서 편의점 4사가 서로 다른 맛을 각각 가져가는 구조다.
소비자에게는 네 가지 맛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선택지가 생겼고 편의점에는 자사 점포를 찾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농심에는 네 유통망을 동시에 활용하면서도 제품별 희소성을 유지할 수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편의점은 신상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고 젊은 소비자 비중도 높아 새로운 맛이나 콘셉트를 시험하기 좋은 채널”이라며 “제조사와 편의점이 공동으로 제품을 기획하는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