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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장 격동의 근현대사, 스토리 해설로 흥미진진” [차 한잔 나누며]

‘인생 2막’ 펼치는 김창해 인천문화해설사

은퇴 뒤 주경야독으로 관광학위
과거 사료 흔적 따라 명소 소개
“해설 목적은 가르치는 것 아냐
철저한 사실 바탕, 흥미 끌어야”
“개항지와 월미도에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녹여져 있습니다. 아픈 역사의 현장이면서 동시에 격동 근대사가 펼쳐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인천 제물포구 개항장 일대를 누비며 지역 정체성을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고 있는 김창해(74) 인천문화관광해설사. 지난 14일 휴대용 마이크를 손에 쥐고 관람객과 마주한 월미공원 입구에서 김 해설사를 만났다.

인천 제물포구 개항장 일대에서 활동 중인 김창해 인천문화관광해설사.
인천 제물포구 개항장 일대에서 활동 중인 김창해 인천문화관광해설사.

그는 “옛 제물포항은 강화도조약 7년 뒤인 1883년 개항하고, 조선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다”며 “143년 전 일제가 문호를 강제 개방하면서 근대화의 성장도 동시 이뤄졌다”고 밝은 표정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이날 1시간에 걸쳐 진행된 도보 탐방은 과거 사료(史料)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스케줄이 짜였다. 먼저 한국전통정원을 둘러본 후 효종이 전쟁 시 피란을 위해 지었다는 행궁터, 러시아 석탄고 자리를 거쳐 해발 108m 정상으로 올라갔다.

월미도의 주요 명소를 2곳으로 압축한 김 해설사는 “한국이민사박물관은 2003년 미주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아 재외동포와 시민 등이 한마음으로 뭉쳐 2008년에 정식 개관했다”면서 “다음으로 대한민국 수출입 물류와 원도심 경제를 지탱해 온 공간이 인천내항”이라고 소개했다.

대구 출신인 김 해설사와 인천의 인연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서 1984년 30대 초반 이라크 중동 근로자로 해외에 나가 2년가량 일해 목돈을 벌었다. 국내로 돌아온 그는 개인사업체를 차려 운영했고, 25년 뒤 이를 정리하며 두 명의 아들과 가까이에 집을 마련한 곳이 인천이었다.

은퇴 후 김 해설사는 고민 없이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방통대에서 이미 중어중문학 학위를 취득했지만 인천의 개항 역사를 학문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낮에는 해설사로 활동하면서 주경야독으로 법학과에 이어 관광학과를 잇달아 졸업했다.

김 해설사는 “정규 교육과 면접·수습과정 뒤 2018년 9월 시로부터 문화관광해설사 위촉장을 받았다”며 “한 달이면 18일쯤 배치되는 데 오전 10시 출근, 오후 5시 퇴근하는 일정으로 하루 세 차례 인천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풀어낸다”고 일과를 전했다. 그러면서 “첫 멘트 3분이 매우 중요하다. 이 3분 내에 (나의) 이미지가 온전히 평가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해설의 원칙으로 ‘그 자원에 대한 정보가 포함돼야 한다’, ‘목적은 가르치는 게 아닌 흥미를 자극하는 것’,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여줘야 한다’ 등을 삼는다. 주관은 배제시키고, 공인된 사료와 교과서적 용어로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이 철칙이다.

특히 청중의 눈높이에 맞추는 게 핵심이라며 “아이들과 어른의 차이는 단순히 쉽게, 전문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다. 대상자가 보고 인식하는 안목 수준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해설사는 세대를 잇는 증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일례로 1885년 아펜젤러 선교사는 제물포항을 통해 인천에 들어와 머물면서 우리나라 개신교(감리교) 발상지인 내리교회를 설립했다. 관할 지자체가 이 일대 부여한 명예도로명 ‘1885아펜젤러선교길’에 지난해 9월 후손들이 찾았을 때 직접 안내한 게 대표적 순간이라고 꼽았다.

8년째 현장을 지키고 있는 그는 건강이 허락되는 범위 내에서 지역의 문화유산을 알리는 일을 지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해설사는 “옆에서 ‘자랑스럽다’며 항상 아낌없이 응원해 주는 가족들이 있어 행복한 인생 2막을 새롭게 써 내려가고 있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