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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보 걸었더니 보험료가 깎인다고?”…금융가 뒤흔든 생활체육 ‘대반전’ [권준영의 머니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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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 의료비 116조…보험업계, 질병 이후에서 예방 중심으로 무게 이동
65세 이상 진료비 52조·웨어러블 849만대…커지는 생활 데이터 시장
걷고 뛰면 보험료도 내려간다…운동 데이터에 돈 거는 보험사들
[권준영의 머니볼]은 스포츠를 경기장 안의 스코어만으로 읽지 않는다. 선수와 팬, 기업과 자본, 기술과 시장이 얽혀 움직이는 스포츠 산업의 흐름을 데이터와 수치로 들여다본다. IT·인공지능(AI) 융합부터 스포츠 금융, 생활체육, 시니어 스포츠까지 전통적인 스포츠의 경계를 넘어 커지는 새로운 시장을 좇는다. 숫자에 담긴 돈의 흐름을 따라 스포츠 산업의 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읽고, 그 변화가 만들어갈 스포츠의 ‘다음’을 짚는다.

 

아침마다 스마트워치에 찍힌 걸음 수를 확인하고, 러닝을 마친 뒤 앱에 기록된 거리와 심박수를 살펴보는 일은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 평범한 숫자들이 보험사에는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지닌 데이터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루에 얼마나 걷고 얼마나 꾸준히 움직였는지가 단순한 운동 기록을 넘어 건강 위험을 관리하고 의료비 부담을 낮추는 데 활용 가능한 ‘생활 데이터’​로 주목받고 있다.

위 사진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Open AI의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생성 이미지.
위 사진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Open AI의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생성 이미지.

보험은 그동안 사고나 질병이 발생한 뒤 경제적 손실을 보전하는 ‘사후 보상’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초고령사회 진입과 의료비 급증으로 보험업계의 관심은 ‘언제 아픈가’에서 ‘어떻게 하면 아프기 전에 위험을 낮출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병원 진단서와 건강검진 결과를 넘어 질병 발생 이전의 일상에서 쌓이는 운동과 생활습관 데이터까지 보험사가 건강관리의 새로운 자료로 활용하기 시작한 이유다.

 

변화의 규모는 의료비에서 확인된다. 지난해 건강보험 진료비는 116조2375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2014년 54조5275억원에서 10년 만에 61조7100억원 증가하며 2.1배로 커졌다. 특히 65세 이상 진료비는 52조1935억원으로 전체의 44.9%를 차지했다. 건강보험 적용 인구에서 65세 이상 비중은 약 19% 수준이지만 의료비 지출은 절반에 육박한다. 65세 이상 노인의 1인당 연평균 진료비도 550만8000원으로 전체 평균 226만1000원보다 약 2.4배 많았다.

 

고령층의 의료비 부담이 커질수록 보험산업이 질병 발생 이후의 ‘결과’만 바라보기는 어려워진다. 가입자가 병원에 간 뒤 지급할 보험금뿐 아니라 그 이전에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생활습관까지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걷기는 보험업계가 활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생활 데이터로 부상했다.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고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기기로 측정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가 고혈압 환자 3만6192명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하루 걸음 수가 1000보 증가할 때 주요 심혈관 사건 위험이 17.1%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걸음 수만으로 개인의 건강 위험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신체활동과 질병 위험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연구가 축적되면서 걸음 수는 일상 속 신체활동을 객관적으로 수치화하는 대표 지표로 자리 잡고 있다.

 

스포츠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걸음 수는 가장 단순한 운동 데이터다. 걷기·달리기처럼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생활체육과 바로 연결된다는 점도 강점이다. 보험업계가 생활체육을 단순한 건강관리 활동을 넘어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영역’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웨어러블 시장의 흐름도 주목할 만하다. 국내 웨어러블 기기 출하량은 2024년 849만대를 기록했다. 다만 시장 자체는 3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기기 판매량만 놓고 보면 성장세가 주춤한 것처럼 보이지만, 스포츠산업의 관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이미 보급된 기기에서 매일 쌓이는 데이터다.

 

스마트워치는 시간을 확인하는 기기를 넘어 심박수·활동량·수면시간·운동 강도 등을 측정하는 개인 건강관리 플랫폼이자 ‘손목 위의 스포츠 데이터 센터’​로 진화하고 있다. 기기 시장이 주춤해도 사람이 차고 움직이는 순간 데이터는 계속 쌓인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웨어러블 센서를 통해 개인에게서 하루 25만개 이상 수준의 생체 데이터가 생성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과거 보험사가 병원 방문과 건강검진을 통해 확보한 정보가 질병 발생 이후의 ‘결과 데이터’였다면, 이제는 일상에서 실시간으로 축적되는 데이터가 건강 위험을 예측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재료로 떠오르고 있다.

위 사진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Open AI의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생성 이미지.
위 사진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생성된 가상의 이미지입니다. Open AI의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 생성 이미지.

여기서 생활체육의 가치가 달라진다. 과거에는 걷고 뛰는 행위 자체가 건강을 위한 활동이었다면, 이제는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데이터까지 하나의 경제적 자산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운동하는 가입자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보험상품이 등장한 것도 이런 변화와 맞닿아 있다. 건강관리를 통해 일부 질병의 발생 위험을 낮출 수 있다면 보험사 입장에서도 장기적인 보험금 지급 부담을 관리할 여지가 생긴다. 실제 금융당국이 마련한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가이드라인에는 걷기·달리기 등 운동량을 측정하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스마트워치·웨어러블 기기와 연계해 보험료 할인이나 포인트 등을 제공하는 방식이 포함돼 있다.

 

국내 보험사들도 운동 데이터를 보험 혜택과 잇달아 연결하고 있다. 한화생명은 월 8000보 이상을 20일 넘게 달성하면 보험료를 7% 할인하는 건강증진형 보험료 할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KB손해보험은 걸음 수에 따라 개인용 자동차보험료를 최대 7.9% 할인하는 특약을 선보였고, 삼성화재는 걸음 데이터를 활용해 포인트를 제공하는 건강관리 서비스를 운영한다. 보험사별로 걸음 수를 측정하는 방식과 보상 수준은 다르지만, 걷기라는 일상적인 생활체육 활동이 보험료 할인과 포인트 등 구체적인 금융 혜택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 유인도 뚜렷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생활습관 개선 프로그램이 제2형 당뇨병 발생 위험을 약 58% 낮출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예방에 투입되는 비용보다 질병 발생 이후의 비용이 크다면 건강 데이터와 건강관리 서비스에 투자할 경제적 유인이 생긴다.

 

해외에서는 이미 건강 데이터를 보험과 연결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보험사 디스커버리의 ‘바이탈리티(Vitality)’는 건강검진과 운동, 생활습관 데이터를 점수화해 보험 혜택과 연계한다. 미국에서도 운동 데이터를 활용한 보험료 할인과 건강관리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보험이 ‘아픈 뒤 보상하는 상품’에서 ‘건강할 때 관리하는 상품’으로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