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물병 쥐면 체온 뚝 떨어진다고?”
폭염 속에서 갑자기 어지럽고 얼굴이 달아오를 때, 차가운 생수병을 양손에 쥐면 도움이 될까. ‘손바닥 냉각’의 원리엔 과학적 근거가 있다.
그런데 “목이나 겨드랑이보다 손바닥부터 식혀야 한다”, “차가운 생수병만 쥐고 있으면 체온을 빠르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말이 어눌해지거나 의식이 흐려지는 열사병 단계에서 손바닥만 식히면, 정작 필요한 응급조치가 늦어진다.
폭염 피해는 계속 불어난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따르면 지난 5월 15일부터 8월 13일까지 신고된 온열질환자는 누적 3408명이다. 누적 사망자는 31명으로, 지난해 한 해 전체 사망자(29명)를 이미 넘어섰다.
8월 초 하루 200명을 웃돌던 신규 환자는 폭염이 다소 누그러지며 8월 중순 들어 20명 안팎으로 줄었지만, 누적 피해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손바닥은 몸의 ‘열교환 통로’
손바닥과 발바닥처럼 털이 없는 피부에는 ‘동정맥문합(AVA)’이라는 특수 혈관이 많이 분포한다. 작은 동맥과 정맥을 직접 연결하는 혈관이다. 열을 조절할 때 피부 쪽으로 흐르는 혈액량을 크게 바꾼다.
더운 환경에서는 이 부위 혈류가 늘면서 피부 표면에서 열을 주고받기 쉬워진다. 손바닥 냉각이 체온 조절 연구에 꾸준히 등장하는 배경이다.
의식이 뚜렷하고 가벼운 더위나 어지럼증을 느끼는 정도라면, 먼저 그늘이나 냉방 공간으로 이동한다. 그다음 차가운 생수병이나 캔을 손에 쥐는 것도 방법이다.
손바닥 냉각은 여러 냉각 방법 중 하나다. 목과 겨드랑이보다 먼저 식혀야 하는 것도, 손만 차갑게 하면 충분한 것도 아니다.
◆조건에 따라 갈리는 효과
손바닥 냉각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연구들은 대체로 특수 장비를 전제로 한다. 한 실험에서는 더운 환경에서 운동하는 참가자의 손바닥에 열교환 장치를 대고 음압을 걸어 혈류를 끌어올렸다.
이 조건에서 심부체온 상승 속도가 낮아지고 운동 지속시간도 늘었다. 음압 없이 손만 냉각했을 때는 효과가 훨씬 제한적이었다.
일반적인 손바닥 냉각이 아무 소용 없다는 뜻은 아니다. 더운 환경에서 운동한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다른 실험에서는 손바닥을 일정 시간 냉각하자 심부체온이 낮아졌다는 결과도 있다.
반대로 손바닥 냉각 장치를 써도 심부체온 상승 속도나 운동수행 능력에 변화가 없었다는 연구, 체온 지표엔 차이가 없지만 더위·불쾌감만 줄었다는 연구도 있다.
손바닥은 열교환에 유리한 부위다. 하지만 손바닥 냉각만으로 심부체온이 얼마나 떨어지는지는 냉각 온도와 시간, 운동 여부, 주변 온도, 장비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말 어눌해지고 비틀거리면 ‘손바닥’ 따질 때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온열질환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느냐다. 두통, 어지럼증, 메스꺼움, 심한 갈증과 땀이 나타나는 열탈진 단계에서는 즉시 더운 장소에서 벗어난다. 옷을 느슨하게 풀고 몸을 식힌다. 의식이 또렷하고 물을 삼킬 수 있다면 시원한 물을 조금씩 마신다.
의식에 변화가 생기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헛소리를 하거나 평소와 달리 혼란스러워한다. 말이 어눌해지거나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지 못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열사병을 의심해야 한다. 실신이나 경련도 위험신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열사병을 가장 심각한 온열질환으로 규정한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응급의료체계에 도움을 요청하도록 권고한다.
흔히 ‘체온 40도’를 열사병의 경계선처럼 생각한다. 숫자 하나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 체온을 정확하게 재기 어려운 야외 상황에서는 중추신경계 이상 증상을 함께 살펴야 한다.
이 단계에서는 생수병 하나를 손에 쥐여주는 정도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119에 신고한다. 환자를 그늘이나 냉방 공간으로 옮기고 겉옷을 벗긴다. 가능한 한 빨리 몸 전체를 식힌다.
CDC는 찬물이나 얼음물로 빠르게 냉각하라고 안내한다. 여의치 않으면 피부나 옷을 찬물로 적신 뒤 바람을 일으켜 식힌다. 머리와 목, 겨드랑이, 사타구니에 차가운 수건이나 얼음을 대는 방법도 제시한다.
운동성 열사병 분야에서 미국선수트레이너협회(NATA)는 전신 냉수 침수를 가장 효과적인 냉각 방법으로 꼽는다. 운동선수 등의 운동성 열사병을 전제로 한 지침이라는 점은 구분해야 한다.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 더위를 식힐 때 차가운 생수병을 손에 쥐는 것은 간편한 보조 방법이 될 수 있다. 열사병이 의심되는 상황이라면 다르다. 우선순위는 손바닥이 아니라 119 신고와 신속한 전신 냉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