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현관을 나서면서 스마트폰을 꺼내 조명과 난방을 끄고, 엘리베이터를 부른다. 집 밖에서는 세탁 종료 시간을 확인하고 에어컨을 미리 켠다. 그동안 서로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열어야 했던 기능을 하나의 앱으로 묶는 경쟁이 건설업계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아파트의 상품 경쟁이 평면과 마감재에서 가전과 홈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스마트홈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가전업체와 건설사, 홈네트워크 업체들이 잇따라 손을 잡으면서 아파트 자체 앱과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이 하나로 연결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반도건설도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LG전자와 현대HT, HT비욘드와 손잡고 조명·난방·환기 등 아파트 홈네트워크에 LG전자 가전까지 연결하는 통합형 서비스를 개발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반도건설은 LG전자·현대HT·HT비욘드와 ‘가전 연동형 스마트 홈 서비스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핵심은 LG전자 가전을 반도건설 유보라의 사물인터넷(IoT) 시스템과 연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아파트 홈네트워크와 가전제품을 각각 다른 앱이나 리모컨으로 제어했다면 이를 하나의 서비스로 묶겠다는 구상이다.
서비스가 완성되면 입주민은 조명과 난방, 환기 등 주택 설비뿐 아니라 연동된 LG전자 가전도 하나의 앱에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현대HT는 아파트 월패드와 홈네트워크 분야를 맡고, HT비욘드는 기존 유보라·카이브 유보라 스마트홈 구축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에 참여한다.
반도건설은 기술 개발이 끝나면 경기 고양 장항지구에 공급한 ‘고양 장항 카이브 유보라’에 해당 서비스를 처음 적용할 계획이다.
반도건설이 처음 시작하는 시장은 아니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이미 가전과 홈네트워크를 하나의 앱으로 연결하는 서비스가 실제 입주 단지에서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산 연산 롯데캐슬 골드포레다.
이 단지는 LG전자의 ‘ThinQ Home’ 솔루션을 적용했다. 단지 전용 스마트홈 앱에서 난방·가스·조명과 엘리베이터 등 기존 홈네트워크 기능에 LG전자 가전을 함께 제어할 수 있도록 했다.
에어컨 설정 온도나 세탁 종료까지 남은 시간을 확인할 수 있고 전력 사용량도 조회할 수 있다. 천장형 에어컨과 광파오븐을 비롯해 냉장고·김치냉장고·세탁기·TV 등 LG ThinQ를 지원하는 가전을 추가로 연동할 수 있는 구조다.
LG전자는 ThinQ Home을 가전뿐 아니라 홈네트워크, 단지 특화 서비스까지 연결하는 주거 통합 솔루션으로 확대하고 있다. 냉장고나 에어컨을 스마트폰으로 켜고 끄는 수준을 넘어 아파트 자체 시스템을 가전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더 일찍 아파트와 가전의 경계를 허물었다.
삼성전자는 2020년 11월 서울 서초구 ‘래미안 리더스원’에 스마트싱스를 처음 적용했다. 이후 포스코건설과 대우건설, 현대건설, 삼성물산, 코오롱글로벌 등과 협력하며 2022년 10월 기준 18개 건설사, 112개 단지로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당시 적용 세대만 10만 가구를 넘어섰다.
스마트싱스가 아파트와 연결되면 스마트폰에서 냉·난방과 환기, 조명, 전동 블라인드 등을 제어하는 것은 물론 엘리베이터 호출이나 가스밸브 상태 확인, 주차 정보, 부재중 방문자, 무인택배, 관리비 등 단지 기능까지 관리할 수 있다.
포스코건설의 부산 ‘남천 더샵 프레스티지’에는 스마트싱스 에너지 서비스도 적용됐다. 아파트 스마트 전력량계와 앱을 연결해 가구 전체의 전력 사용량과 예상 요금을 확인하고, 사용량에 따라 가전을 절전 모드로 전환하는 식이다.
가전회사의 앱이 ‘가전 리모컨’에서 ‘아파트 리모컨’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건설사가 직접 스마트홈 플랫폼을 키운 사례도 있다.
현대건설은 2016년 자체 스마트홈 시스템 ‘하이오티(Hi-oT)’를 개발했고, 2018년 현대오토에버와 플랫폼을 구축했다.
하이오티는 조명과 냉·난방뿐 아니라 냉장고, 세탁기, 공기청정기 등 가전과 엘리베이터, 공동현관까지 연결한다. 스마트폰 앱이나 음성으로 집 안 주요 기기를 제어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자동차와 집도 연결했다. 카투홈 기능을 지원하는 차량에서는 차 안에서 아파트 조명이나 냉·난방, 콘센트, 가스밸브 등을 조작할 수 있다.
결국 스마트홈 경쟁의 핵심은 ‘무엇을 하나 더 설치하느냐’보다 서로 다른 기기를 얼마나 많이 하나의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느냐로 바뀌고 있다.
경쟁 무대도 신축 아파트에서 기존 아파트로 넓어지고 있다.
LG전자는 현대HT를 비롯해 코콤·코맥스·HDC랩스·경동나비엔 등 홈네트워크 사업자와 플랫폼 연결을 확대하고 있다. 기존 아파트에 이미 설치된 월패드와 LG전자의 씽큐 플랫폼을 연결해 가전 제어와 관리비 조회, 주차 위치 확인 등을 한 앱에서 제공하려는 전략이다.
지난 5월 공개된 LG전자 측 현황에 따르면 ‘우리 단지 연결’ 서비스 적용 세대는 올해 1분기 30만 가구를 넘어섰다. LG전자는 현대HT 월패드가 적용된 아파트를 기반으로 향후 연결 가능한 범위를 넓히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신축 아파트를 지을 때부터 가전과 홈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미 지어진 아파트까지 스마트홈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스마트홈이 새로운 주택 상품 차별화 수단이 되고 있다.
전용면적이 같고 비슷한 마감재를 사용하는 아파트가 늘어날수록 입주 뒤 매일 사용하는 앱과 홈네트워크의 편리성이 실제 주거 만족도를 좌우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가전업체에도 아파트는 놓치기 어려운 시장이다. 특정 스마트홈 플랫폼이 아파트에 처음부터 적용되면 입주민이 이후 냉장고나 세탁기, 에어컨을 교체할 때도 해당 플랫폼과 잘 연결되는 제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업계의 경쟁은 이미 ‘스마트한 가전 한 대’를 파는 단계를 지나 ‘집 전체를 어느 플랫폼으로 묶을 것인가’로 이동하고 있다.
앞으로 아파트를 고를 때 역세권과 평면, 커뮤니티 시설뿐 아니라 “우리 집은 어떤 앱으로 움직이는가”까지 따져보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