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익숙함을 뒤집다 [남겨진 것들]

입력 :
수정 :
폰트 크게 폰트 작게
독일 현대미술 거장 바젤리츠

‘나뉜 소 두 마리’부터 ‘에켈리’까지
유년기의 전쟁과 분단 기억 안은 채
풍경 토막내고 인간·동물을 거꾸로
뮤즈인 아내 엘케마저 낯설게 변주
말년엔 캔버스에 자신을 그리기도

그가 영면에 들기 3주 전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여든여덟의 노화가 게오르그 바젤리츠(1938∼2026)는 카메라를 앞에 두고 여전히 ‘새로운 작품’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류에 몸을 담으면 제가 할 말이 없어지고 결국 길을 잃게 될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무언가를 해야만 했지요. 모든 면에서 새로운 것을요. 그건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낯설고 주관적이며 심지어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것이어야 했어요. 지금도 저는 이런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요.”

‘나뉜 소 두 마리 I’(1966). 캔버스를 분할하고 대상을 절단해 익숙한 시각 질서를 전복한 작품이다. 나치가 악용한 목가적 이미지를 해체하며 전쟁의 폭력을 은유하는 동시에, 회화를 이데올로기에서 해방하고 재료의 물질성과 형식적 가능성을 탐구한 바젤리츠 초기 대표작이다. 세화미술관 제공
‘나뉜 소 두 마리 I’(1966). 캔버스를 분할하고 대상을 절단해 익숙한 시각 질서를 전복한 작품이다. 나치가 악용한 목가적 이미지를 해체하며 전쟁의 폭력을 은유하는 동시에, 회화를 이데올로기에서 해방하고 재료의 물질성과 형식적 가능성을 탐구한 바젤리츠 초기 대표작이다. 세화미술관 제공

13일 서울 종로구 세화미술관에서 개막한 ‘게오르그 바젤리츠’는 애초 작가와 함께 준비한 전시였다. 그러나 지난 4월30일 바젤리츠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유작전이자 사후 첫 미술관 회고전이 됐고, 당시 촬영한 영상은 그가 스스로의 예술 여정을 되돌아본 마지막 인터뷰로 남았다. 전시장에 놓인 1966년 초기작부터 타계 직전의 ‘골드 페인팅’까지 이어지는 회화와 드로잉, 조각 46점에는 60여년에 걸친 바젤리츠의 예술적 변화가 압축돼 있다. 이 가운데 39점은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전시는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늘어놓는 대신, 그가 평생 변주해온 형상과 조형적 실험을 따라간다.

 

◆익숙한 세계를 뒤집다

 

바젤리츠에게 세상은 처음부터 온전한 모습으로 주어진 적이 없었다. 1938년 독일 작센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격했고, 전후에는 분단된 독일에서 성장했다. 1956년 동베를린 미술대학에 입학했지만 이듬해 퇴폐 미술로 분류되던 피카소의 그림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제명됐다. 서베를린으로 건너간 뒤에는 동독의 사회주의 사실주의와 서구 추상미술 사이에서 자신의 회화가 어디에 설 것인지 찾아야 했다.

 

독일의 역사는 이후에도 그의 작업을 따라다녔다. 1980년 안젤름 키퍼와 함께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 작가로 나선 그는 거칠게 깎아 만든 목조 인물상 ‘조각을 위한 모델’을 선보였다. 한쪽 팔을 치켜든 형상이 나치식 경례를 연상시킨다는 논란이 일었다. 그는 생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독일, 그리고 독일인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쟁과 분단의 기억은 그의 작업의 중요한 배경이었지만, 이를 전쟁터나 폐허의 모습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대신 인간과 동물, 풍경처럼 익숙한 대상을 자르고 뒤집고 일그러뜨렸다. 전시장 초입에서 만나는 ‘나뉜 소 두 마리 I’(1966)는 그 출발점에 놓인 작품이다. 바젤리츠가 1960년대 중반 시도한 ‘절편 회화(Fracture Paintings)’의 대표작으로, 목가적인 풍경 속 두 마리 소의 형상이 화면과 함께 토막 난 듯 분절돼 있다. 익숙한 풍경은 남아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던 질서는 무너져 있다.

 

이러한 실험은 결국 바젤리츠를 상징하는 ‘거꾸로 그리기’로 이어졌다. 위와 아래, 오른쪽과 왼쪽이라는 회화의 오래된 질서를 흐트러뜨려 익숙한 대상을 낯선 이미지로 돌려놓았다. 관습적인 시선을 벗겨내고 색과 선, 붓질과 화면 자체를 다시 보게 하려는 시도였다. 이 같은 전복은 독일의 국가적 상징인 독수리에도 향했다. ‘나중에 구두가 발견되었다’(2023)에서 독수리는 위엄 있게 날아오르는 대신 거꾸로 뒤집힌 채 추락하듯 그려졌다. 1969년 시작한 도상 뒤집기는 이후 그의 가장 잘 알려진 회화적 언어가 됐다.

‘프랑스에서의 엘케 II’(2019). 아내 엘케를 반추상적 형태와 절제된 색채로 담아낸 초상화다. 왜곡된 신체와 희미한 형상은 시간의 흐름과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암시하며, 재현의 한계를 넘어 초상화의 본질과 작가의 주관적 시선을 탐구한 작품이다. 세화미술관 제공
‘프랑스에서의 엘케 II’(2019). 아내 엘케를 반추상적 형태와 절제된 색채로 담아낸 초상화다. 왜곡된 신체와 희미한 형상은 시간의 흐름과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암시하며, 재현의 한계를 넘어 초상화의 본질과 작가의 주관적 시선을 탐구한 작품이다. 세화미술관 제공

평생의 동반자이자 뮤즈인 엘케 역시 뒤집힌 채로 그의 화면에 수없이 등장했다. 전시장에 걸린 ‘프랑스에서의 엘케Ⅱ’(2019)에서 아내의 몸은 거꾸로 희미하게 떠 있다. 젖은 화면을 다른 캔버스에 찍어내는 전사 기법까지 더해져 형상은 또렷해지기보다 흐려진다. 60여년간 아내를 숱하게 그렸지만 화면 속 엘케는 늘 다른 모습이었다. 바젤리츠는 가장 익숙한 존재마저 매번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다.

 

앞선 작품들도 바젤리츠에게는 새로운 작업을 위한 영감이 됐다. 바젤리츠는 에드바르 뭉크와 빌럼 드 쿠닝 등 앞선 예술가들의 작품과 기법을 거리낌 없이 끌어들인 뒤 자신의 방식으로 뒤틀고 변주했다. 미술관 야외에 설치된 조각 ‘1965’(2024)도 과거의 이미지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A.R. 펭크가 1965년 그린 ‘무제(친구들의 모임)’ 속 네 인물 가운데 가장 오른쪽에 서 있는 이는 젊은 시절의 바젤리츠다. 바젤리츠는 약 60년이 흐른 뒤 펭크의 그림 속 자신의 모습을 다시 불러내 조각 ‘1965’를 만들었다.

‘1965’(2024). A.R. 펭크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으로, 사슬톱과 도끼로 깎은 나무를 청동으로 주조하고 검은 파티나로 마감해 재료의 물성과 제작 과정의 흔적을 드러낸다. 인간 형상에 대한 바젤리츠의 원초적 탐구와 두 작가의 예술적 교감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세화미술관 제공
‘1965’(2024). A.R. 펭크의 회화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으로, 사슬톱과 도끼로 깎은 나무를 청동으로 주조하고 검은 파티나로 마감해 재료의 물성과 제작 과정의 흔적을 드러낸다. 인간 형상에 대한 바젤리츠의 원초적 탐구와 두 작가의 예술적 교감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세화미술관 제공

자신의 과거 작품마저 다시 꺼내 그린 ‘리믹스(Remix)’ 연작도 같은 맥락이다. ‘리믹스’ 연작에서 바젤리츠는 수십년 전 자신이 그렸던 주요 작품을 다시 그렸다. 전시장에 나온 ‘도약(리믹스)’(2007) 역시 젊은 시절의 이미지를 다시 불러낸 작품이다. 과거의 그림을 충실히 복원하려 한 것이 아니라, 이미 한 번 완성했던 자신의 작품마저 새로운 그림을 위한 재료로 삼았다.

 

◆캔버스 위에 남은 휠체어 자국

 

바젤리츠의 작품 사이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발이다. 서구 미술에서 머리가 이성과 정신, 인간의 정체성을 담는 중심으로 여겨져 왔다면 바젤리츠는 발을 화면의 중요한 모티프로 끌어올렸다. 몸을 지탱하는 발은 동시에 인간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신체이기도 하다. 땅에 닿아 있으면서도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발의 양면성은 그의 여러 작품에서 반복해서 드러난다.

‘에켈리’(2004). 에드바르 뭉크가 만년을 보낸 자택 ‘에켈리(Ekely)’에서 1943년 촬영된 한 사진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바젤리츠는 사진 속 뭉크의 자세를 직접 취해본 뒤, 상체가 잘려 나간 하반신과 신발만을 화면에 배치했다. 구두를 신은 다리 아래로 길게 뻗은 뒤집힌 숲의 풍경은 작가의 유년 시절 상상력의 원천이자 독일의 문화적 기억이 깃든 모티프이기도 하다. 세화미술관 제공
‘에켈리’(2004). 에드바르 뭉크가 만년을 보낸 자택 ‘에켈리(Ekely)’에서 1943년 촬영된 한 사진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바젤리츠는 사진 속 뭉크의 자세를 직접 취해본 뒤, 상체가 잘려 나간 하반신과 신발만을 화면에 배치했다. 구두를 신은 다리 아래로 길게 뻗은 뒤집힌 숲의 풍경은 작가의 유년 시절 상상력의 원천이자 독일의 문화적 기억이 깃든 모티프이기도 하다. 세화미술관 제공

‘에켈리’(2004)는 이러한 발의 의미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바젤리츠는 에드바르 뭉크가 말년에 작업실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사진 밖으로 잘려나간 무릎 아래를 상상했다. 보이지 않던 다리와 발, 신발을 그려 넣었고, 그 아래로는 거꾸로 선 나무들이 이어진다. 한곳에 뿌리내린 나무와 이동하는 인간의 발이 한 화면 안에서 묘하게 대비된다. 바젤리츠는 생전 자신의 작업을 두고 “내 손은 하늘이 아니라 땅을 향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년에 이르러 그는 두 발 대신 휠체어와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야 했지만 특유의 거대한 캔버스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토착 예술’ 연작에서 바젤리츠는 바닥에 펼친 캔버스 위를 휠체어로 오갔다. 물감 위를 지나간 바퀴 자국은 붓질과는 다른 선으로 화면에 남아 자신을 회화의 일부로 불러들였다.

‘도약(리믹스)’(2007). 1965년 대표작 ‘슈페쿨라티우스(Spekulatius)’를 45년 만에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프리다 칼로의 의족을 연상시키는 여성용 신발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며, 바젤리츠가 오랫동안 이어온 신발 모티프의 상징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세화미술관 제공
‘도약(리믹스)’(2007). 1965년 대표작 ‘슈페쿨라티우스(Spekulatius)’를 45년 만에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프리다 칼로의 의족을 연상시키는 여성용 신발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며, 바젤리츠가 오랫동안 이어온 신발 모티프의 상징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세화미술관 제공

◆거꾸로 세운 세계 끝에서 만난 ‘금빛’

 

그의 몸은 전시 마지막 공간의 금빛 화면 위에 다시 나타난다. 바젤리츠가 생의 마지막까지 몰두했던 ‘골드 페인팅’이다. 어두운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그보다 더’(2026)에는 황금빛 화면 위로 자신과 엘케의 늙은 몸이 가느다란 선으로 떠 있다. 초기 작품의 두껍고 거친 물감과 육중한 신체는 사라지고, 몸은 금세라도 지워질 듯 희미해졌다. 가장 화려하고 영원해 보이는 색 위에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오히려 늙고 연약한 인간의 몸이었다. “검은색은 미학적 의도의 시작이고, 금색은 그 과정의 끝”이라는 그의 말처럼 말년의 화면은 초기의 어둡고 거친 질감과는 전혀 다른 곳에 닿아 있었다.

 

그렇다고 금빛을 죽음의 색으로 읽기는 어렵다. 금색 역시 그에게는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도였다. 생의 마지막을 장엄하게 장식하기보다 끝까지 자신의 회화에 없던 것을 시험한 결과에 가깝다. 실제 전시를 준비하면서 바젤리츠 스튜디오 측 역시 마지막 공간이 지나치게 죽음이나 추모를 상징하는 방식으로 읽히지 않기를 바랐다고 한다.

 

바젤리츠는 몇 년 전 대규모 회고전을 앞두고도 자신의 시간이 “그저 다해가는 시간이 아닌, 나아가는 시간”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초기의 검고 거친 화면에서 출발해 수십년 동안 형상을 자르고 뒤집고 다시 그린 화가는 노년에 이르러 이전에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았던 화려한 색을 화면 전체에 펼쳤다. 자신의 과거를 반복하기보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전의 자신에게 없었던 화면을 만들려 했다.

‘그보다 더’(2026). 바젤리츠의 대표 연작인 ‘골드 페인팅’의 최신작으로, 금빛 바탕 위에 인물을 간결한 선과 푸른색 물감으로 표현했다. 자신과 아내 엘케를 소재로 삶과 기억,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작품으로, 노년기 회화 세계의 정수를 보여준다. 세화미술관 제공
‘그보다 더’(2026). 바젤리츠의 대표 연작인 ‘골드 페인팅’의 최신작으로, 금빛 바탕 위에 인물을 간결한 선과 푸른색 물감으로 표현했다. 자신과 아내 엘케를 소재로 삶과 기억,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담아낸 작품으로, 노년기 회화 세계의 정수를 보여준다. 세화미술관 제공

그는 마지막 인터뷰에서 자신의 긴 예술 생애를 이렇게 돌아봤다. “나의 과거는 미술사이며 내가 살아온 시간은 한 예술가의 시간이다. 이제 나는 매우 나이가 들었고 넓은 조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전에 내가 사용하던 전략과는 더 이상 관계가 없습니다. 이제는 예술이 내 곁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한국 관객과의 만남을 앞둔 그의 마지막 말에도 특유의 태도가 묻어났다. 자신의 작업과 한국 사이의 문화적 거리가 오히려 흥미롭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이 제 작업에 놀라거나 흥미를 느낄지 무척 궁금하네요. 제 작업이 아시아 문화와는 꽤 거리가 있을 테니까요. 어찌 보면 멀면 멀수록 더 좋은 법이죠. 여러 난관이 있겠지만 제 뜻이 온전히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전시는 12월27일까지.